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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20년 오늘은 강우규 지사 순국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5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단두대 위에 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斷頭臺上 猶在春風 有身無國 豈無感想)

 

이는 1920년 오늘(11월 2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강우규 애국지사가 사형당하기 전 남긴 짤막한 시입니다. 강우규 지사는 거사 당일인 9월 2일 남대문역에 도착한 신임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마차를 향해 겨레의 분노와 독립의 염원이 담긴 한발의 폭탄을 힘껏 던졌습니다. 천지를 진동하듯 터진 폭탄은 비록 사이토를 처단하지는 못했지만, 일제 식민통치자들과 세계만방에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달하기에는 충분한 것이었지요.

 

 

강 지사는 사형이 확정된 뒤 옥바라지를 하던 아들 중건이 슬퍼하는 기색을 보이자 다음과 같이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조금도 어쩌지 말라. 내 평생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 것도 없음이 도리어 부끄럽다. 내가 자나 깨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우리 청년들의 교육이다. 내가 죽어서 청년들의 가슴에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내가 소원하는 일이다. 언제든지 눈을 감으면 쾌활하고 용감히 살려는 전국 방방곡곡의 청년들이 눈앞에 선하다. (중간 줄임) 너는 나의 이 유언을 전국의 학교와 교회에 널리 알리도록 하여라.”

 

강우규 지사의 사이토 총독 폭살 의거는 3ㆍ1만세운동 이후 독립운동의 한 방략으로 정립된 첫 의열투쟁이라고 합니다. 또 의열투쟁의 뜻이 그것을 통해 조국독립의 뜻을 일제와 세계에 전달하려는데 있다고 하지요. 그래서 총독을 처단했느냐는 여부는 그 중심이 아니라 곁딸린 것으로 강 지사의 의거와 그 뒤 재판 과정을 통해 우리 겨레는 물론 일제와 국제사회에 충분한 울림을 전달했다고 보아 의거는 실패가 아니라 성공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열투쟁은 이후 김원봉의 의열단과 김구의 한인애국단 등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