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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거문고가 정가ㆍ춤과 하나 된 이선희의 ‘금가(琴歌)’

국립국악원 우면당서 펼쳐진 진한 거문고 세레나데

[우리문화신문=이진경 기자]  1610년(광해군 2년) 양덕수(梁德壽)라는 사람이 펴낸 《양금신보(梁琴新譜)》에서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이므로 군자가 마땅히 거느려서 바른길로 나가게 하는 것(琴者樂之統也故君子所當御也).”이라고 한 거문고, 그 거문고의 선율이 지난 11월 30일(금) 밤 8시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펼쳐졌다. 2018 금요공감 공모작으로 이선희의 거문고 세레나데 “이선희의 금가(琴歌)“가 그것이다.

 

1부 “악가무(樂歌舞)를 위한 금가(琴歌)는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객원교수인 자레드 레드몬드(Jared Redmond) 작곡가의 곡들이다. 먼저 이선희의 거문고 독주곡 여백(餘白, he Space Between)으로 시작한다. 서정적이지만 다양한 연주기법으로 화련한 연주를 선보인다. 이어지는 연주는 ”첫새(First Birds)“다. 이선희의 거문고 독주에 맞춰 이기쁨 가객이 정가를 이야기를 하듯 노래한다. 음악을 통솔하는 악기의 음색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부르는 노래를 듣는다. 어쩌면 정가와 거문고는 지극히 어울리는 음악이라는 느낌에 청중들은 침잠된다.

 

 

 

 

1부의 마지막으로 이선희와 거문고 4중주 앙상블 ‘라미(藍人)’ 그리고 유선후의 춤이 하나가 되는 “초월(超越, Transcend)”이다. 거문고 음악은 굉장히 빠른곡이지만 춤은 관절을 이용하여 느린 듯 눈과 몸짓으로 관객들과 이야기 하듯 춤을 춘다. 이런 기 막히는 조합에 청중들은 한 없이 빨려 들어가는 듯 하다.

 

이어서 시작되는 2부는 2018년 위촉 초연으로 서울대학교 최우정 교수 작곡, 이선희 독주의 “살인자의 언덕”이다. 최우정 작곡가는 말한다. “이 이야기는 배신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에 접했던 이 이야기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실감이 난다. ‘무엇을 얻기 위해 무엇을 배신하는가’라는 물음에서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소중한 것을 팔아넘긴 댓가는 결국 죽음이 아닐까? 결국 그것은 자신을 배신한 것이 아닐까?

 

혹시 나는 지금 죽은 상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 이야기가 음악을 통해 그대로 전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음악은 음악 나름대로, 이와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의 다른 한편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살인자의 추억은” 프롤로그(Prologue)로 시작해서 ‘해가 지고(After Sunset)’, ‘식사 중에(During the Meal)’ ‘바로 오늘 밤에(This Very Night)’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동틀 무렵(In the First Light)’이 이어지며 마지막 ‘에필로그 (Epilogue)’로 장식한다. 성서의 유다이야기를 통해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배신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곡으로 구성한 것으로 조금은 소화하기 어렵지만 역시 거문고라는 악기에는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의 주인공 거문고 연주자 이선희는 국립국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석사,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제도를 통해 한국음악의 정통적 기반을 쌓아왔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는 조선왕실의 궁중음악과 실내악(줄풍류, 정가)을 연행하는 국립국악원 전악단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2004년부터 미래 전통음악을 위한 창작악단의 거문고 수석과 악장으로 활동하였다.

 

현재거문고 앙상블 이사, 한양대학교 국악과 염임교수, 거문고 앙상블 ‘라미“ 대표,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지도잔원이다. 16회의 독주회와 KBS국악관현악단,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청주시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을 통하여 거장적 면모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독주회 연주로는 정악, 민속악, 창작음악, 다원예술에 걸쳐 다양하게 발표하였고, 이는 절차탁마한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국음악 연주곡의 외연을 넓히는데 주력하고 있는 연주자다.

 

깊이 있는 거문고 연주를 하는 연주자라는 얘기를 듣고 공연을 보러 왔다는 서울 목동의 한정희(47, 교사) 씨는 “일부는 소화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었지만 역시 ‘군자가 마땅히 거느려서 바른길로 나가게 하는 악기’라고 일컫는다는 거문고의 진수를 보여준 연주라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거문과 음악에 춤이 하나된 ‘초월’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첫새‘ 연주는 거문고가 청아하고 느린 음악 정가와도 잘 어울린다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라고 말했다.

 

깊어가는 가을 밤 청중들은 이선희와 라미의 거문고 연주를 들으면서 자신을 다스린 한바탕 꿈을 꾸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