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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98년 전 오늘 최수봉 의사 경찰서에 폭탄 던져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79]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가 그때 정말 목적을 달성했으면 즉시 자결했을 것이고 그랬으면 네놈들에게 욕을 보지도 않을 텐데, 일이 그렇게 안 되어버렸으니 어찌 운명이라 하지 않겠는가? 세계 대세나 동양 대국상(大局上) 조선의 독립은 가능할 뿐 아니라, 이러한 행동은 조선 국민 된 자의 당연한 의무다.” 이렇게 일제 재판정에서 외친 이는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뒤 체포되어 순국한 27살 청년 최수봉(崔壽鳳) 의사였습니다.

 

 

1920년 12월 27일 아침 경남 밀양경찰서에는 최수봉 의사가 폭탄을 던져 요란한 폭발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최수봉 의사는 폭탄을 던진 직후 달아나다가 한 가정집 부엌에서 칼을 들고 나와 자신의 목에 칼을 꽂았습니다. 이때 최 의사는 많은 피를 흘리고 쓰러졌지만 일제는 최 의사를 살린 다음 재판에 붙였고, 3심에서 살인미수죄와 폭탄사용죄를 적용하여 사형을 확정 지었습니다. 최 의사는 확정판결 한 달 보름만인 7월 8일, 대구감옥에서 사형이 집행되어 순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최수봉 의사의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사건은 석 달 전인 9월 14일 일어난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과 함께 일제 경찰이 폭탄거사가 언제 또 터질지 몰라 불안감에 떨며 노상 전전긍긍하게 하였습니다.

 

의열단 김원봉 단장에 따르면 최 지사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본인 교사가 조선사를 가르치던 중에 단군은 자기네 대화족(大和族)의 시조로 추앙되는 스사노오노미코토(素盞鳴尊)의 아우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이때 두 인물의 생존연대만 보더라도 이치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최수봉 지사는 학기말의 구두시험 때 “소잔명존(스사노오노미코토)이는 우리 단군의 중현손(重玄孫, 9대손에 해당)이오.”라고 서슴없이 답했고, 그 때문에 최 의사는 퇴학당했다는 것입니다. 정부는 최수봉 의사의 드높은 독립운동 공적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