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해당화가 많이 피었던 당산동 부군당의 당제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34]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서울 영등포 당산동 부군당에서 행하는 당제는 해마다 두 차례 행해진다. 간단한 치성으로 모시는 음력 7월 초하루 치성과 큰굿으로 행하는 10월 초하루에 당굿이 그것이다. 당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이곳 마을 사람들로 조직된 당산향우회가 토박이를 대상으로 제주와 소임 그리고 총무 및 재무를 뽑는다. 먼 곳으로 이사를 떠난 사람들도 당제에 참여한다.

 

2001년 당굿에서는 제주 황인균, 총무 김혁구, 재무 염창학이며 소임으로는 송문수, 박수원, 심춘수, 송승성, 박윤웅, 김정택, 김영석, 류영득, 김택기, 임순성, 장석자가 뽑혔고, 5년 뒤인 2006년에는 제주, 송승성, 총무 김혁구, 재무 염창학이었으며 소임으로는 염창수, 신일길, 김영석, 송문수, 예재은, 김정택, 유영득, 신충현이 선정되었다.

 

선정된 제주와 소임은 당제 일주일 전부터 부정한 일이 없어야 하고 내외간 동침도 금하여야 한다. 상갓집이나 흉사에도 가지 않고 근신해야 하면서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정성 들여 지낸 당제 효험을 본다고 믿는다. 당 주변에는 붉은 황토를 깔아 부정한 인간이나 동물들의 칩임을 막고 출입구에도 금줄을 쳐서 좋지 못한 해로운 액을 미리 막아 낸다.

 

 

 

 

예전에는 당제를 지내게 되면 약 300여 호 정도가 추렴하여 제물장만도 거하게 하였지만, 요즘은 토박이가 줄어들고 부군당굿에 관심 두는 사람도 줄어 재정적 어려움이 많다. 구청에서 약간의 도움을 받는 형편이다.

 

당주무녀는 ‘영등포 말집’이라는 별호를 가진 서정자 만신이다. 서정자 만신의 아버지는 말을 키우면서 마차를 운영하였기에 말집이라는 별호가 생긴 것이다. 당산동 부군당굿 당주무녀를 3대째 대물림하고 있는 서정자 만신은 원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거주하였는데 지금은 동작구 상도동으로 이주하여 외딸과 함께 살고 있다. 2006년 부군당굿의 경우, 서정자 만신을 비롯한 후배 문이숙 만신, 신딸 김순애과 이미숙 만신 그리고 피리 최형근(잽이당주), 대금 최승운, 해금 박문수가 함께하였다.

 

2006년의 당굿은 아침 10시 무렵 시작되어 저녁 4시 무렵 마무리되었는데 그 차례는 다음과 같다.

 

1) 주당물림(징과 장구 소리를 내어 굿 시작을 알리고 굿청을 정화함), 2) 유교식 제례(제주와 소임들이 유교식으로 제례를 지냄), 3) 앉은청배(만신이 앉아서 장구를 치며 부정한 것을 물리치고, 당굿에 모셔질 신령을 청하여 모심), 4) 진적(신에게 맑은 술을 올리고 절을 함), 5) 가망굿(가망 즉, 단군을 모시고 일대 대동에 공수를 내림), 6) 산맞이(산신을 모심), 7) 불사(불사님을 모심), 8) 댄주(단군을 위시하여 장군, 별상, 신장, 나라님대감, 군웅대감, 남녀은행나무당산대감, 텃대감을 모심), 9) 성주(성주신을 모시고 놀린 후 좌정시킴), 10) 대내림(신대를 잡고 축원하여 신내림을 함), 11) 소머리 사슬(소머리를 삼치장에 꽂아 신에게 받침), 12) 군웅(동서남북 4방향에 활을 쏘아 좋지 못한 해로운 액을 물리침), 13) 창부(창부와 광대신을 모시고 놀림), 14) 뒷전(굿을 마무리하고 밖에 나도는 잡귀 잡신을 풀어먹여 보냄) 등이다.

 

 

 

영등포구청 누리집(http://www.ydp.go.kr/main/main.do)에 보면 당산동(堂山洞)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두 개의 설이 소개되어 있다. 첫째, 옛날 이 지역에 늦은 봄이 되면 해당화(海棠花)가 많이 피었다. 그래서 이 지역 이름을 해당화 ‘당(棠)’ 자를 붙여 당산동이라 하였다. 둘째, 이 지역에는 혼자 우뚝 솟아 있는 단산(單山)이 있는데, 이곳에서 당제(堂祭)를 지내게 되면서 당산(堂山)이라고 하였다.

 

과거 이 당산 지역을 형성하고 있는 세 곳의 자연부락은 웃당산, 원당산, 벌당산이었다. 웃당산에는 수령 500여 년이나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곳은 당산동 110번지 언덕 일대다. 현재 당(堂)집이 있는 곳은 원당산이다. 그리고 이 지역에 벌판이 있었는데 그것이 벌당산(또는 안당산)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지역개발로 인해 아파트가 들어서 옛 모습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렇지만 과거 이곳은 한강 변의 아름다운 자연 마을이었다. 1757년부터 1765년 사이, 전국 읍지를 모아 책으로 펴낸 《여지도서(輿地圖書》 〈금천현(衿川縣)〉에는 이곳이 당산리(棠山里)라고 표기되어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당산리 한강변에는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중국 사신이 이곳을 왕래할 때 배를 멈추고 구경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1789년에 펴낸 《호구총수(戶口總數)》 때부터는 이곳이 당산리(堂山里) 표기되었다.

 

당산동(堂山洞)은 1413년 태종 때 한반도를 여덟 개의 도로 분할되면서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895년 23부제를 시행하면서는 인천부에 속해졌는데, 다시 1896년 13도제로 개편되면서 경기도로 속하게 되었다. 이후, 1936년 조선충독부령과 경기도고시에 의해 경성부로 편입되었고, 1946년 서울시 헌장과 미군정법령에 따라 일제식 동명을 우리 동명으로 바꿀 때 당산동이 된 것이다.

 

당산동 부군당 당집은 대지 약 15평 위에 8평 정도의 목조기와 집이다. 당 내부에는 부군님을 비롯한 대신할머니, 용궁애기씨, 삼불제석, 칠성, 산신, 장군(최영장군), 별상, 도사할아버지 모두 9분의 신도(神圖)를 모시고 있다. 현재의 당집은 1950년 4월 8일에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주민들은 그 이전에 존재했던 것을 새롭게 다시 지은 것이라 말한다. 당집에 1974년 4월 15일 조성된 부군당 비석이 있는데, 여기에 이곳 부군당은 1450년 4월 8일에 만들어졌다고 되어 있다.

 

한편, 이곳 당산동 부군당 배경 설화라고 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이 채록되어져 전해지고 있다.

 

“당산동 부근에 선유봉(仙遊峰)이란 곳이 있었다. 지금은 양화대교가 놓여 허물어졌지만, 예전에는 한강가의 경치가 좋던 바위산이었다. 이곳 선유봉(仙遊峰) 처녀나 강화도(江華島) 처녀와는 예부터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것은 그곳의 처녀들이 새별산이란 신, 일명 손각시귀신을 믿기 때문이다. 새별산신은 노랑종이 다홍치마를 입고 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손씨(孫氏) 집에 규중처녀가 있었는데 출가하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따라서 그 원혼을 모셔 놓고 신봉하는 가정이 많게 되었다. 그런 가정에서는 젊은 처녀가 있으면 출가시키기에 앞서 무녀를 초청하여 여탐(豫探)굿을 하여 손각시귀의 원(怨)을 풀어주고 출가시켰다. 손각시옷을 만들 때는 비단필의 머리부분을 끊어 처녀를 만들고 신상(神箱, 신과 관련된 물건을 넣어두는 상자) 속에 넣는다. 집안에 새로운 음식이 생기면 손각시 신상(神象)에 먼저 바친 후에 먹게 된다.”(서울특별시, 《서울민속대관》 1. 민간신앙편 〈당산동 부군당〉1990년 7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