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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과 세종을 맨 앞에 둔 K문화가 필요하다

한갈이 만난 배달겨레 3 ‘김광옥 명예교수’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우리 신문에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를 연재중인 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는 새해를 맞아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여주의 영릉을 찾았다. 새해를 맞아 김광옥 명예교수와 ‘세종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편집자말)

 

- 최근에 《세종 이도의 철학》이라는 책을 펴냈는데 그 내용은 무엇인가요?

 

“현재 세종 연구는 논문과 책 합쳐 대략 2,000여 편인데 ‘철학’이 들어간 글은 8편 정도다. 그리고 세종 연구에는 나름으로의 흐름이 있는데 정치철학이고 세종사상이라 할 철학서는 없다. 이번에 세종의 사상을 철학적 차원에서 보려고 세종이 말씀하신 용어 곧 개념어가 될 만한 말들을 전부 찾아 정리해 보았다. 그 결과 ‘생생의 길’이 드러나게 되었다. 사람은 늘 자기 하는 일에 업의식 곧 사명감을 가지고 새로워지는 변화를 가져야만 한다. 사람은 거듭나야 참사람이 되는 생민이고, 사물은 새로 나야 변역(變易)이 된다.

 

한 비유를 들면 유교 정치철학에서 왕과 백성 사이의 관계를 군주제에서는 신민(臣民, 신하와 백성)관계가 된다. 백성은 신하이거나 평민이다. 이후 사회가 발전하고 정치가 안정되면서 친민(親民) 사상이 나온다. 친민은 군주가 어버이의 마음으로 백성을 품어 안는다는 것이다. 이후 성리학이 고려 말부터 들어오며 신민(新民) 사상이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이 배움과 자각을 통해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정신은 세종의 경우 생민정신으로 나타난다. 생민(生民)은 사람이 자기가 하는 일을 업(業)으로 여겨 새로운 삶의 기쁨을 느낄 줄 아는 산/참사람을 일컫는다. 업(業)은 ‘사위미성(事爲未成, 《치평요람》 제8집, 16권)으로 일이 진행되고는 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업은 일생 노력해 추구해 가야할 원리로서의 가치다. 따라서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변역(變易)이야말로 바로 세종의 천문 연구, 아악 정비, 훈민정음 창제 같은 혁신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한다.“

 

 

- 김 교수님께 세종대왕은 어떤 분이신가요? 세종대왕의 사상은 어떠한 것입니까?

 

“나는 두 가지 덕목 곧 살며 존경하는 인물이거나 닮고 싶은 위인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는데 세종은 이 가운데 닮아가고 싶은 분이다. 몇까지 세종의 특징을 보자. 세종은 임금으로서 첫째는 생각하는 정치인이다. 세종은 사람이 새로워질 수 있다(자신지리,自新之理)고 믿는데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생민정신이다. 이는 유교의 정신이기도 하다. 둘째는 사유를 실천으로 옮겨 행도(行道)로 나타난다. 셋째는 창제하는 개혁가로 변역인(變易人)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인간과 경제(물질)에서 관습의 틀을 깨고 새로워져야 하는 정신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겠는가?”

 

- 오늘날 우리는 세종대왕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세종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정신은 현장과 현실에서 실천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로서 세종의 정신은 600년 전의 정신이 아니라 오늘날 4차 산업시대에도 부응하고 있다. 곧 21세기 열린사회의 인재상은 예전 산업시대에 견주어 첫째 문제 해결형에서 문제 창조형으로 바뀌어 있고 둘째 전문지식인에서 창의적 융복합형의 시대로 그리고 셋째 개인 노력형에서 관계중심형이어야 하는데 바로 이를 세종에 비추어 보면 세종의 시대에 이런 정신을 가지고 변역을 이루어 낸 것이다.

 

음악, 천문, 시계, 언어, 활자, 측우기, 활자, 농사기술, 수레, 수차, 화포, 무기 등에서 계속 개량하고 새롭게 만들어내고, 인재 중심으로 변역해가려 했고 그리고 집현전으로 나타나는 집단 연구를 수행해 갔던 일도 들 수 있다. 당시의 과학기술은 지금 돌이켜 봐도 그 시대 전 세계에서 우위에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집단이나 조직은 발전적이어야 한다. 발전하지 않으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종은 백성과 사대부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여러 정책을 썼고 그 방법은 현대에도 유효하다.

 

세종은 천지인에서 하늘의 시간, 땅의 음악, 인간의 문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모두에게 나누었다. 한마디로 대가 없이 무상으로 사대부나 백성에게 다 나눈 것이다. 이는 바로 나라의 총체적 자산이 되는 것이다. 세종의 함께 잘 살기 정신은 현대에도 절실히 요구된다.“

 

 

- 이 시대에 세종임금이 살아 있다면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한마디로 한 마음으로 힘을 합쳐서 함께 태평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실 것이다. 다른 말로는 ‘공향승평-共享昇平’(《조선왕조실록》 22년 7월 21일)정신이다. 이는 여진족인 오도리의 마좌화ㆍ마구음파 등이 토산물을 바치자 하신 말씀이다. 당시 세종은 여진족이나 왜인들을 끌어안는 정책을 꾸준히 폈다. 오늘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이웃 타민족과 더불어 사회취약 계층의 백성과 함께 다 같이 잘사는 ‘공향승평’ 정신은 이 시대에 필요한 정신이다. ‘공향승평’은 《조선왕조실록》 전체 10 회중 세종 때만 4회가 나온다.”

 

- 앞으로 어떻게 하면 세종 정신을 문화적으로 높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우선은 세종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 외국의 예를 보면 미국 워싱턴에 링컨기념관이 있다. 가 본 일이 있는데 건물 자체가 기념물이 되어 있다. 타이페이의 국립중정기념당(현재는 타이완민주기념관)도 참고할 만하다. 더불어 지속적인 연구 센터가 있어야 한다. 아직 세종학조차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세종의 집은 3곳인데 태어난 서울 통인동, 일하던 곳인 경복궁 그리고 영원히 머무는 곳 영릉이다. 우선은 태어난 곳인 준수방을 되살려 내야한다.

 

그리고 한 예이지만 여주 영릉에서 해마다 세종대왕 탄신일 행사가 있다. 이때 관계자들만 간략히 먼저 제사를 치루고 나머지 시간에는 잔치를 해야 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일이 있다. 영릉은 제사 지내는 곳이고 축제를 할 수 없는 곳인가?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가면 그 안에 영국역사를 빛낸 수많은 사람들이 묻혀 있고 동상이 많다. 왕가의 결혼식 그리고 영연방의 중요행사 등이 이곳에서 진행되고 오케스트라 연주에 노래하고 찬양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릉에서도 마음껏 노래하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 능은 무덤만이 아니라 영원의 집이다.

 

더불어 서울이나, 여주, 세종시 등에서는 장기적인 ‘세종관련 거리 축제’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어간다면서 온 시민이 한데 어울리는 시민참여의 거리 잔치 등이 턱없이 부족하다. 외국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것은 K팝이 아니라 K문화라고 본다. K문화의 맨 앞에 한글과 세종임금이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김광옥 명예교수는 세종철학의 전도사다.  그는 '생생의 길', '변역(變易)', '생민(生民)', '자신지리(自新之理)' 같은 말을 제시하고 있다. 또 세종의   ‘공향승평-共享昇平’(《조선왕조실록》 22년 7월 21일)정신을 이 시대에 되살리자고 외친다. 그러면서  K문화의 맨 앞에 한글과 세종임금이 자리잡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세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영릉(英陵)을 찾은 김 교수의 뜻을 가슴에 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