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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독립투쟁의 등불 대종교 창시자 나철 선생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399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을유년 8월 15일에 일본이 망하고, 소련과 미국이 나라를 남북으로 분단한다. 공산주의와 외래 종교가 민족과 나라를 망치고 공산 민주의 핵전쟁이 세계를 파멸한다. 백두산에 단군의 광명대도가 하늘 높이 떠올라 공산 민주의 핵전쟁을 막고 천국의 이화세계를 이루리라.” 이는 이 땅의 독립운동에 하나의 거름이 된 대종교 창시자 홍암(弘巖) 나철(羅喆) 선생이 한 예언입니다.

 

110년(1909년) 전 오늘(1월 15일)은 나철 선생이 서울 재동(齋洞) 취운정(翠雲亭)에서 제천(祭天)의식을 갖춘 다음 “국조(國祖)를 받들어 민족정기를 세우고 민족독립을 지키기 위한 나라의 정신으로 삼아야 한다.”라면서 뒷날 대종교가 된 단군교를 공식 종교로 공표한 날입니다. 이후 선생은 새로운 투쟁의 전환을 위해 단군교를 창시한 뒤 이어 대종교(大倧敎)로 이름을 바꾸고 서일(徐一), 여준(呂準), 조성환, 신규식 등 많은 민족지사들을 모았지요. 그러자 일제는 대종교에 갖가지 탄압을 가해왔으며, 집회를 금하는 것은 물론 자금 출처를 조사하기도 했고, 회원의 동정을 엄중히 감시했습니다.

 

이런 마당에 선생은 결단을 내리고 단군의 유적이 있는 구월산으로 들어가 제자들에게 독립투쟁에 헌신할 것을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한가위, 달도 휘영청 밝은 밤에 선술(仙術)의 비법으로 호흡을 조절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뒤 선생의 주검은 유언대로 북간도 청파호 옆으로 옮겨졌고 동시에 대종교 본부도 삭풍이 몰아치는 남 나라 땅 만주 북간도로 옮겨졌지요.

 

 

그러나 선생의 죽음과 대종교 본부의 이전은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가 되었습니다. 대종교 회원을 중심으로 한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를 만들었으며, 이를 통한 독립운동을 펼쳤나갔습니다. 또 1918년 대종교의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3·1운동 이전에 처음으로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도 했고, 1920년 대종교도(大倧敎徒) 김좌진, 이범석 등이 청산리전투에서 큰 승리를 거두기도 했지요. 이후 대종교 지도자인 신규식ㆍ박은식ㆍ신채호ㆍ김구ㆍ조소앙 등이 줄기차게 독립투쟁을 펼쳤습니다. 이처럼 나철 선생의 대종교 창시는 우리나라 독립투쟁에 큰 등불이 되었는데 정부는 1962년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