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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단 하나, 본디 내 모습 《소소소(小素笑)》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10]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점심 먹고 사무실에 들어오니 책상 위에 소포가 놓여 있습니다. 형태를 보아하니 책이 들어있는 듯합니다. 보내는 사람은 윤재윤 변호사. 재윤이 형이 또 책을 내셨나? 뜯어보니 역시 예상대로 책이 들어있습니다. 《소소소(小素笑)》, 형이 2010년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을 낸 이후 두 번째 수필집을 내셨네요. 윤재윤 선배는 춘천지방법원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퇴임하고 지금은 법무법인 세종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고교 5년 선배인 재윤이 형을 보면 신부님이 연상됩니다. 항상 겸손하시면서도 남의 말을 경청하고, 진지하게 삶을 성찰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가끔 “재윤이 형이 신부님이 되셨어도 멋진 성직자가 되었겠다.”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책을 손에 들자, 형의 저번 수필집을 보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기억이 납니다. 하여 책을 받은 날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부터 곧바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형은 이번 책에 저번 수필집에 마저 못 담은 판사 시절 재판 이야기를 실었고, 또 소소한 일상에서도 깊은 성찰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인생의 의미를 길어 올립니다.

 

 

그나저나 책 이름이 왜 《소소소(小素笑)》일까요? 소(小)는 작게, 적게, 조심스레 마음먹고 행하라는 의미입니다. 소(素)는 생긴 대로 본바탕대로 꾸미지 않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나타냅니다. 머리말에서 형이 밝힌 의미이지요. 그리고 형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가 웃음이라며 소(笑)를 택했습니다. 또한 이 小,素,笑를 이으면 바람이 아주 부드럽게 부는 모양을 뜻하는 순우리말 ‘소소소’가 됩니다.

 

형은 작게, 본디 바탕대로, 웃으며 사는 모습이 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모양과 같이 않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 ‘소소소’는 이번에 책을 내면서 지은 제목이 아니네요. 원래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숙제로 가훈을 제출하라고 하여, 끙끙대며 만든 문구랍니다. 이번에 책 제목 정하느라고 또 끙끙대니 딸이 선뜻 이 문구를 내놓았다고 합니다. 딸도 아버니가 급조한(^.^) 가훈 ‘소소소’를 마음속에 잘 새겨두고 있었던 것이네요.

 

책에는 ‘小 - 작아야 날아오른다’라는 제목으로 12꼭지, ‘素 - 세상에 단 하나, 본디 내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15꼭지, ‘笑 - 웃음, 대나무 숲 바람소리’라는 제목으로 19꼭지, ‘小素笑 - 나답게 사는 기쁨’이라는 제목으로 14꼭지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형은 ‘동내마을에서 만난 평화’라는 글에서 춘천법원장 할 때 만난 한 시골 노(老) 이발사 이야기를 합니다. 형은 춘천시 동쪽 끝 부분에 있는 동내면의 작은 마을이 맘에 들어 틈이 나면 이곳을 찾았답니다. 어느 날 형이 이발사에게 비 때문에 농사를 망쳐서 걱정이 되겠다고 하면서, 이발사와 다음과 같은 대화를 이어갑니다.

 

이발사 : 망치면 망친 대로 살면 되지요. 남은 것 가지고 살면 돼요. 걱정할 것 없어요.

형 : 그래도 속은 상하시지요?

이발사 : 속상할 게 뭐 있나요. 망친 건 당초에 내 꺼가 아닌 거요. 아무리 망쳐도 굶어 죽진 않아요.

형 : 몸이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이발사 : 왜 아픈 데가 없겠어유. 오래됐으니까, 그냥 사는 거지. 심하지는 않아서 참을 만해요.

 

이어서 형은 그 마을에서 만난 할머니 얘기도 하는데, 시골 촌로(村老)들로부터 인생의 깊은 성찰이 담긴 얘기를 들으면서 형은 오랫동안 느끼지 못하였던 깊은 평화로움을 느꼈답니다. ‘겨울 숲길에서 생긴 일’에서는 형은 자신이 오해하여 분노하고 남을 증오한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연말에 아내와 함께 충주 자드락길을 걷는데, 숲속길을 어느 정도 차를 몰고 들어가 거기서부터 걸었답니다. 걸으면서 마주 오는 부부와 가볍게 목례를 하며 스쳐 지나갔고요. 그렇게 두 시간여 걷고 돌아오니, 아! 글쎄! 차체 옆에 직선으로 굵은 줄이 길게 나 있더라나요? 순간 아까 지나친 부부가 등산지팡이로 일부러 차 옆을 긁고 지나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의 소행이라 생각하니 참기 어려울 정도로 화가 치밀었답니다. 새 차에 줄이 갔으니 누구라도 화를 참기 어렵겠지요.

 

다음 날 또 차를 몰고 길을 돌다보니 전 날 길을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차에서 ‘쿵쿵’ 소리가 납니다. 내려서 확인해보니, 길가에 삐죽 나와 있는 나뭇가지가 차체에 부딪친 것입니다. 순간 형의 머리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어제 그 굵은 줄 자국도 나뭇가지에 긁힌 것 아닐까?” 전 날도 ‘쿵’소리를 들었는데, 그 때는 길바닥에 떨어진 나뭇가지를 차바퀴가 밟는 소리로 생각했다는군요. 휴가에서 돌아와 전문가에게 확인하니 역시 예상대로 등산지팡이로 난 자국은 아니랍니다. 그러면서 형이 탄식하며 하는 얘기.

 

“아! 사람은 얼마나 쉽게 오해하는가. 얼마나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둘째 날 그 길을 다시 가지 않았다면 나는 내내 그 부부를 비난하며 우리 사회의 저급함을 한탄하였을 것이다……. 우리가 판단하고 행동한 것 중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얼마나 많을까? 오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다른 사람에게 섭섭해 하고 비난하는 것이 불행과 다툼의 원인 중 하나 아닐까. 겨울 숲길에서 들었던 작은 소리가 나의 굳은 사고방식을 새롭게 점검해보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소소소(小素笑)》에 들어있는 표지와 삽화 그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화가 최원석씨가 그린 그림입니다. 화가 소개에 ‘오랫동안 인물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천착했으며, 수묵회화 기법으로 더불어 살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평범한 인물들의 꾸밈없는 표정을 압축적으로 잡아냈다.’고 하는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이 되네요.

 

소소한 삶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끄집어내는 수필가 윤재윤의 글, 그에 걸맞은 우리에게 더불어 살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화가 최원석의 그림, 그 둘이 만난 <《소소소(小素笑)》, 한 번 만나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