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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향(眞香)과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정운복의 아침시평 35]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훌륭한 수행자는 큰 깨달음을 얻지만 겉으로 그것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중간 수행자는 처음에는 부지런히 정진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급 수행자는 수행도 하지 못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은 듯 큰 소리로 으스댑니다.

 

‘진수무향(眞水無香) 진광불휘(眞光不輝)’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된 물은 향기가 없고 참된 빛은 반짝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가장 문제를 많이 일으키고 사소한 시비에 휘말리는 부류는 태권도 1단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조그만 능력을 자랑하지 못해 안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권도 4,5단이 되면 좀처럼 싸움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그 깊은 능력을 사소한데 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진정한 능력자는 큰 성공을 거둔 이후라도 자신의 신념을 바꾸지 않으며

겸손함으로 평상심을 유지합니다.

야단스럽게 남 앞에 나서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잊지 않으며

칭찬에 호들갑이 없고 남을 대할 때 가식이 없습니다.

 

남에게 보이기위함보다 자신에게 늘 충실하고

화려한 횃불보다는 은은한 촛불로 참된 삶을 살아갑니다.

 

 

진수무향에서 두 글자를 따서 진향(眞香)이라고 이름한 기생이 있습니다.

그는 시인 백석을 사랑했고, 평생 모은 1,000억대가 넘는 돈을 길상사에 기증합니다.

진향은 24세 때 25세의 백석을 연회에서 만나 열정적인 사랑에 빠집니다.

백석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가지 이별은 없을 것"이란 맹세를 하지요.

 

문제는 백석의 집안에서 기생과의 만남을 반대하여 급하게 다른 여자와 결혼을 서두릅니다.

백석은 결혼식 날 도망쳐 나와 진향에게 만주로 달아날 것을 제안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백석을 사랑한 진향은 자신이 백석에게 짐이 될까 염려하여 곁을 떠납니다.

그 후 그리움을 안고 살았지만 이승에서는 만나지 못했지요.

 

 

그 때 백석이 지은 시가 있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그것이지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마가리 : 오두막의 방언(평북, 함남)

   * 나타샤 : 진향을 지칭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