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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박사가 노래하는 ‘생명찬가’

《생명의 이름》, 권오길, 사이언스북스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올 1월에도 어김없이 고교친구들은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고교 1학년에서 또 3학년에서 권오길 선생님을 담임으로 모셨던 친구들이 매년 1월이면 선생님을 모시고 세배를 드립니다. 이번에도 선생님은 제자들에게 주기 위하여 새로 낸 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한 권, 한 권 정성스레 제자들 이름을 쓰시고, 그 무거운 책을 춘천에서부터 들고 오셨네요.

 

이번에 내신 책 이름은 《생명의 이름》입니다. 부제는 ‘달팽이 박사의 생명 찬가’, 선생님은 달팽이로 박사학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책을 두르는 테두리 종이에는 ‘호기심은 동심이요, 동심은 시심(詩心)이며, 시심은 과학심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선생님은 지금도 나이보다 젊어보이시는데, 선생님의 호기심이 선생님을 동심으로 이끌기에 젊게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피부만 보면 환갑 넘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고 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 저 또한 선생님을 닮아 호기심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요?

 

책을 받으면서 선생님께 “벌써 내신 책이 40권 넘지요?” 했더니, 50권이 넘는다고 하시네요!!! 그야말로 생물 수필의 달인이십니다. 30년 넘게 생물 수필을 써오신 선생님! 선생님은 머리말에서 그 사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뭔가 하니, 예전에는 글을 정확히 쓰기 위해 ⌜이희승 국어대사전⌟을 한 장 한 장 들춰나가면서 그 사이 사전 세 권을 말아먹으셨는데, 요즘에는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 탁 치면 턱 뜨니 얼마나 편리하고 빠른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전에는 원고지에 일일이 손으로 써 넣었고 고쳐 다듬느라 원고지 위에 거미줄이 이리저리 엉키곤 했는데, 요즘엔 컴퓨터로 쳐서 끼워 넣고, 빼고 바꾸는 것이 누워서 떡 먹기가 되었다면서 활자 문명의 혁명이라고 하십니다.

 

예! 저도 글을 많이 쓰는 편이니 선생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저도 글을 쓰면서 ‘인터넷이 없으면 자료 찾기 위해 도서관을 들락날락 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며, 선생님처럼 참 편한 세상 되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쓰려면 정확하지 않은 기억을 다듬기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인터넷 검색으로 빠르게 다듬을 수 있으니까 좋은 세상이 되었음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1988년인가 89년에 처음 아래 ᄒᆞᆫ글 프로그램을 사용하면서, “와! 세상에 이런 것도 있구나!”하며 연신 감탄하던 생각도 납니다.

 

 

차례를 보니 선생님은 책을 1부 – 넓은 벌 동쪽 끝, 2부 – 엣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 3부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4부 –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5부 –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지붕, 이렇게 5부로 나누어 배치하였습니다. 각 부의 제목이 낯이 익지요? 선생님은 책을 내면서 정지용 시인의 <향수> 노랫말을 따라 부를 나누어, 생명이 숨겨 온 비밀의 문을 열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길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하고자 했다고 하십니다. 이제 총설은 그만 하고 책 내용에 대해서도 좀 얘기해야겠네요.

 

먼저 제 눈에 띄는 것이 나비 이야기입니다. 빨강, 파랑의 영롱한 나비 날개를 쓱 문지르면 손에는 무색의 가루만 묻어나는 경험을 하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꽃잎의 경우에는 손가락으로 꽃잎을 으깨어도 손에 색소가 묻어나는데, 나비 날개는 왜 그런 걸까요? 나비 날개는 본연의 색소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노 구조의 날개에 빛이 반사되면서 영롱한 색깔이 나는 것이랍니다. 그래서 나비 날개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나노 구조가 파괴되어 무색이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 유전자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려는 나비의 술수가 재미있네요. 애호랑나비와 모시나비는 짝짓기를 하면 암놈 자궁에 자신의 정자와 함께 큼직한 영양 덩어리를 슬며시 삽입한다네요. 그런데 이 영양덩어리는 단순한 영양덩어리가 아니라 성욕 억제제가 들어 있습니다.

 

하여 이를 자궁에 받은 암컷은 수컷이 와서 지분거려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영양덩어리는 점점 딱딱하게 굳어져 자궁 입구를 틀어막아버리기에, 다른 수컷이 강제로 암컷을 범하려고 하여도 자기 유전자를 암컷 자궁에 넣을 수가 없답니다. 하하! 하여튼 미물들도 종족 보전을 위하여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합니다그려.

 

 

낙타가 사막에 최적화 되어 있는 동물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겠지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 최적화 되어 있느냐에 대해서는 저도 대충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선생님 책을 보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선 눈은 기다란 속눈썹으로 센 빛을 가릴 뿐만 아니라 사막의 모래바람을 가려 시야를 확보합니다. 그럼 사막의 모래바람에 콧구멍과 귓구멍은 어떻게 하지요? 낙타는 코를 맘대로 여닫을 수 있고, 귀에는 털이 수북이 나 있어 날아드는 모래를 막는답니다. 그리고 발바닥은 스폰지처럼 푹신하고 넓적해서 발이 모래에 빠지지 않고, 또한 다리가 길어서 뜨거운 지열을 덜 받으며 두터운 털은 열의 전도를 차단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막에는 먹을 것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낙타는 목이 길어져 큰키나무 잎을 따 먹을 수 있고, 또 혀와 입술이 두꺼워서 억센 가시식물도 먹습니다. 가시식물 얘기를 읽으니, 예전에 시리아에서 사막 여행을 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 사막에 풀이 난 것을 보고 신기하여 이를 만지는데 가시가 많고 너무 억세어 놀랜 기억이 나는데, 낙타는 이런 식물도 먹는군요.

 

그리고 낙타도 소처럼 되새김위를 가지고 있는데, 첫째 위는 물통으로 쓴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낙타의 혹등에 물이 들어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는 지방덩어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지면 낙타는 이 지방을 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하는데, 이 과정에서 지방 1그램당 물 1그램이 생긴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사막에서는 물을 아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낙타는 땀을 적게 흘리고, 콩팥요세관의 물 재흡수가 아주 세서 소변이 걸쭉한 시럽 같다고 합니다. 당연히 대변도 물기 하나 없이 땡글땡글하고요. 이뿐만 아니라 낙타는 날숨 때의 습기를 긴 콧구멍에 가뒀다가 들숨 때 허파로 되넣는다고 하네요. 정말 낙타는 사막에 최적화된 동물임을 다시금 실감하겠습니다.

 

 

뭐~ 책에 나오는 신기하고 재미있는 생물 이야기를 하려면 한이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개구리밥’이라는 식물 이야기만 짧게 하지요. 이 식물의 이름을 개구리밥으로 지은 사람은 이 식물이 개구리가 먹는다고 생각하여 지었을 텐데, 사실 개구리는 육식성이라 개구리밥을 먹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개구리밥이라고 이름 짓게 된 것을 이렇게 짐작하십니다.

 

여름날 연못에 가면 개구리밥이 연못을 뒤덮다시피 하며 둥둥 떠 있지요? 그렇기에 물속에 있던 개구리가 물 밖으로 나오다보면 아무래도 얼굴에 개구리밥을 묻히는 경우가 생길 것입니다. 선생님은 처음 개구리밥이라고 이름을 지은 사람은 이걸 보고 개구리가 먹다가 얼굴에 붙였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말이지요. 참고로 서양에서는 개구리밥을 오리가 즐겨 먹는 풀이라고 하여 ‘오리풀(duck weed)’라고 한다네요.

 

참! 생물과 무관한 이야기 하나 더 하고 마쳐야겠네요. 선생님은 멍게 이야기를 하면서 경기고등학교 선생님 때 얘기를 하나 하십니다. 수업시간에 멍게 이야기를 열심히 했더니, 그 반에 여드름투성이의 한 학생 별명이 단방에 ‘멍게’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선생님은 그 제자의 이름은 까먹었지만 얼굴은 생생히 기억나신다고 하시는데, 그 멍게는 제 고교 동창입니다. 지금 변호사를 하고 있는 그 동창을 만나면, 친구들이 지금도 학교 다닐 때 생각이 나서, ‘멍게’라는 별명을 부르곤 했었지요.

 

선생님! 이번에도 주옥같은 생물 수필집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생물 수필 50권을 훌쩍 넘기신 선생님! 앞으로도 계속 호기심으로 동심과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계속 후학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생물 이야기 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