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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고려땅을 빼앗고 세운 “단양 신라적성비”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0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충북 단양군 단성면 하방리에 가면 국보 제198호 “단양 신라적성비(新羅赤城碑)”가 있습니다. 이 비는 성재산 적성산성 안에 세워진 신라시대의 비로,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높이 93㎝, 윗너비 107㎝, 아랫너비 53㎝입니다. 윗부분은 잘려나가고 없지만 위가 넓고 두꺼우며, 아래가 좁고 얇은 모양으로 양 옆면이 거의 원형으로 남아있고, 자연석을 이용해 만든 듯 자유로운 모습이지요.

 

 

전체의 글자 수는 440자 정도로 짐작되는데, 지금 남아있는 288자는 그 크기가 2㎝ 안팎의 작고 또 얕게 오목새김으로 새긴 글씨임에도 오랫동안 땅 속에 묻혀있었던 덕분인지 거의 판독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글씨는 각 줄마다 가로줄과 세로줄을 잘 맞추고 있으며, 예서(隸書)에서 해서(楷書)로 옮겨가는 과정의 필법을 보여주고 있어 서예 연구에도 좋은 자료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비문에는 신라 이사부 장군이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을 빼앗은 뒤, 공을 세운 적성 출신의 야이차 등을 포상함과 동시에 신라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포상을 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요. 이를 통해 신라의 중앙과 지방의 통치 조직, 율령과 조세제도 등 기존 문헌 자료에 보이지 않는 신라사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이 비는 임금이 직접 돌아보고 백성을 살핀 기념으로 세우는 순수비(巡狩碑)가 아닌 영토 편입을 기려 세운 척경비(拓境碑:)라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