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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수의 토박이말 이야기

[오늘 토박이말]이러구러

(사)토박이말바라기와 함께하는 참우리말 토박이말 살리기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토박이말 맛보기] 이러구러/(사)토박이말바라기 이창수

 

[오늘 토박이말] 이러구러

[뜻] 이럭저럭 때새(시간)이 지나가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보기월] 이러구러 ‘말모이’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제 ‘이내’라는 토박이말을 맛보신 한 분께서 둘레에 ‘이내’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있다는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 뜻을 알고 난 뒤에 더 예쁜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제 글을 보고 더 반가우셨던가 봅니다. 다는 아니더라도 가끔 가뭄에 콩 나듯 토박이말이 예쁘다거나 곱다는 말을 들으면 기쁘고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슬픈 마음에 가슴이 쓰리기도 합니다.

 

왜 저는 가끔 기쁨과 고마운 마음 끝에 슬픔을 느끼는 것일까요?

빛그림(영화) ‘말모이’를 보고 난 뒤 느낌 또는 생각을 남기시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빠짐없이 다 읽지는 못 했지만 될 수 있으면 다 보려고 애를 쓴다고 쓰고 있지요. 많은 분들이 우리말과 우리글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는 말씀을 비슷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또 많은 분들이 마구 함부로 쓰는 들온말(외래어) 이야기를 하시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타내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말모이’가 3.1운동 100돌, 임시정부수립 100돌을 맞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말과 글을 떠올리게 했고 우리 말글살이를 돌아보게 한 아주 뜻깊은 빛그림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가신 분들이 쓰시던 말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땅 위에 살아계신 많은 어르신들의 삶속에 살아있는 말조차 다 모으지도 못했기에 ‘말모이’는 끝나지 않은 일이자 앞으로 이어져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목숨을 바쳐 모아 놓은 것을 우러러보고 고마워하면서도 그 말들을 삶속에 부려 쓰는 일에 마음을 쓰지 않는 것이 안타깝고 슬픕니다. ‘말모이’를 하는 뜻을 잘 몰랐던 판수가 “밴또든 도시락이든 배만 부르면 되죠.”라고 말한 것과 ‘한글’로 적으면 다 우리말이라고 여기는 것이 비슷하다고 봅니다.

 

엄유나 감독님께서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사전을 만들었던 조선어학회도 있지만, 그 뒤에서 함께 사전을 만들었던 사람들 이야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지금도 역사라는 게 작은 행동들이 모여 큰 걸 이루지 않나. 그래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웃음과 함께 눈물 쏟는 울림을 받은 것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을 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영화가 좀 더 나아가 나라를 되찾은 뒤 펼친 ‘우리말 도로 찾기’까지 되돌아보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렇게 피와 땀으로 모는 ‘말모이’를 바탕으로 우리말을 나날살이(일상생활)에서 도로 찾자는 ‘우리말 도로 찾기’와 함께 거의 모든 갈 갈래(학문 분야)에서 우리 갈말(학술용어) 만들기에 힘을 쏟았던 까닭까지 되새기게 했더라면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을 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그 때 ‘우리말 도로 찾기’는 ‘べんとう’를 ‘벤또’로 적자는 것이 아니었고, 배움책(교과서)에서 ‘도형’을 ‘그림꼴’, ‘대각선’을 ‘맞모금’, ‘혜성’은 ‘살별’이라 쓴 뜻을 생각해 보면 이제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길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했다면 잃었던 나라를 되찾은 지 일흔 네 해가 되었건만 여전히 일본이 뒤쳐(번역해) 만든 말을 ‘한글’로 적은 배움책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다는 것을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말모이’를 보신 모든 분들이 우리말 가운데 가장 우리말다운 참우리말인 ‘토박이말’을 살려 일으키고 북돋우는 일에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 모임인 ‘토박이말바라기’에 힘과 슬기를 보태겠다고 앞다투어 줄을 섰을 것입니다.

 

주머니에 붓만 가득 담아 놓고 있는 사람에게 지우개를 달라고 한들 지우개가 나올 것이며 지우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나무란들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서른여섯 해 넘게 나라를 잃었을 때는 일본말을 잘하는 사람이 잘 살았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는 잉글리시를 잘해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도록 가르치고 배웠습니다. 토박이말을 알뜰히 챙겨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제대로 한 적이 없는 우리입니다. 잉글리시를 잘하는 사람들을 일꾼으로 뽑아 놓았는데 그들보고 잉글리시 많이 쓴다고 나무란들 그 말이 귀에 들어갈 까닭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곱고 아름다운 우리말 토박이말을 자주 넉넉하게 보고 들을 수 있도록 해 주고 그런 토박이말을 알맞은 곳에 잘 부려 쓰도록 돕는다면 그들은 저절로 그런 어른이 될 거라 믿습니다.

 

‘말모이’를 처음 연 지 스무날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재미있는 빛그림(영화)이 나와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쏠리게 한다는 기별을 봅니다. 이러구러 ‘말모이’를 보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좀 더 오래 더 많은 사람들이 ‘말모이’를 보고 우리말과 글, 더 나아가 ‘토박이말’을 살리는 일에 힘과 슬기를 보태주기를 비손합니다.

 

‘말모이’를 하던 그 분들의 마음으로 오늘도 ‘토박이말바라기’는 또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이러구러 그들은 다리를 건너고 산을 넘어, 큰 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에 이르렀다.(표준국어대사전)

-이러구러 그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반이 다 되었네.(고려대한국어대사전)

-그들은 이러구러 몽그작거리다가 밤이 깊어서야 새끼내를 떠났다.(문순태, 타오르는 강)

 

 

4352해 한밝달 스무아흐레 두날(2019년 1월 29일 화요일) ㅂㄷㅁㅈㄱ.

 

  사)토박이말바라기 들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