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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게 먹는 의사, 국보가 된 세한도

[서평] 《발로 철학하기》, - 수석회 수필집 53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발로 철학하기》 - 수석회 수필집 53권의 제목입니다. 수석회는 문학을 하는 의사들의 모임입니다. 저랑 같이 서울고등법원 조정위원을 하는 유석희 박사가 얼마 전에 이 수필집을 보내주셨네요. 그 전부터 유 박사님이 글을 잘 쓰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제 봤더니 수석회 회장이셨군요.

 

수필집 이름을 참 멋지게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펼쳐 목차를 보니, 이성낙 선생의 수필 제목을 수필집 전체의 제목으로 정한 것이네요. 수석회 회장인 유 박사님은 ‘나와 하숙 생활’과 ‘후지산의 일출을 보며’ 두 글을 올리셨습니다. ‘나의 하숙생활’에서는 1966년 서울의대 예과 1학년 때부터 시작하여 그 후 13번이나 이어진 하숙생활을 추억하며 쓴 글이고, ‘후지산의 일출을 보며’는 5년 전에 후지산 등산하면서 특히 후지산 일출을 본 장엄한 느낌을 쓴 산행기입니다.

 

수필집에는 모두 18분의 의사 선생님들이 글을 실었습니다. 그 중에 정지태 선생은 모임에서 경품으로 드론을 타서, 드론을 띄우고 능숙하게 조정하기까지의 고생담을 ‘나도 드론 띄우는 사람입니다’라는 글로 맛깔스럽게 표현하셨습니다.

 

음악 애호가인 오재원 선생은 이번에는 음반을 감싸고 있는 음반 재킷에 초점을 맞추어, 음반 재킷에 쓰인 독일 화가 카스파르 프리드리히에 대해 썼습니다. 저도 카스파르 프리드리히(1774~1840) 그림을 좋아하기에 이 글에 눈길이 가더군요. 특히 저는 프리드리히의 그림 가운데서도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를 참 좋아하는데, 글을 보면서 이 그림이 감싸고 있던 슈베르트의 ‘방랑자 환상곡’도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현 선생이 쓴 ‘나의 건강법’ 글은 기존 건강 생활에 대한 통념을 의사가 깨뜨리니 눈길을 끕니다. 매일 매일 호흡과 명상을 실천하고 있는 나 선생은 아침은 거르고 식사 전후 1시간 이내에는 물을 안 먹고, 식사 중에도 물은 물론 국물 음식도 잘 안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통 꼭꼭 씹어 먹으라고 하는데, 나 선생은 대충 씹어 먹는답니다. 대충 씹어야 위도 일하고 위장이 튼튼해진다나요?

 

또 음식을 싱겁게 먹으라고 하던데, 나 선생은 매우 짜게 먹는다네요. 술에도 소금을 타서 마시고요. 이 대목에서 갸우뚱 하실 분이 많을 것 같은데, 나 선생은 오히려 짜게 먹으면서 모든 혈액 검사 수치가 최정상으로 되었고, 무엇보다 영(靈)이 밝아졌다고 하네요. 뿐만 아니라 물도 줄였다고 합니다. 노인 냄새가 물 썩는 냄새라며, 자신은 물을 줄이고부터는 달고 살던 감기를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술은 마신다고 하네요. 술을 마시다가 신이 되어서 곤란할 때가 있긴 하지만, 술보다 좋은 물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네요. 허~ 참~ 의사가 이렇게 말하고 자신이 또 효험을 봤다고 하니 안 믿을 수도 없고... 뭐~ 사람마다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건강법이란 것은 획일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얼마 전에 탈북 병사의 복부 총상을 수술하던 중, 수십 마리의 회충이 나와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김인호 선생은 ‘기생충 세대의 추억’이란 글에서 기생충 세대인 자신이 어렸을 때의 추억을 얘기합니다. 김 선생은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속이 매스꺼워지면서 왈칵 토했는데, 기생충이 입 밖으로 나오더라나요. 어린 아이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김 선생은 똥을 눌 때 항문으로 기생충이 나올까봐 기생충 약도 안 먹다가, 그러면 또 입으로 나올 거라는 말에 억지로 먹었답니다.

 

그리고 화장실 – 그 당시에는 변소라고 했지요 – 가서는 똥을 누고 밑을 보지 않고 냅다 도망쳤다네요. 이런 김 선생은 의과대학에서 기생충학을 수강하며 회충의 일생을 배우는데, 어렸을 때 생각하며 눈물이 고이더랍니다. 저 또한 김 선생의 글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저도 어렸을 때 기생충 약을 먹고 변소에 갔을 때 제 항문으로 기생충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하며 놀랐던 기억이 있거든요. 대한민국 백성들의 뱃속을 점령하고 있던 기생충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권성원 선생의 ‘기부미학’이란 글에서는 제가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개성상인 석포 손세기 선생은 해방 후 공산당의 탄압이 심해지자, 체포되기 직전 현금과 패물만 싸 들고 간신히 탈출합니다. 몸은 무사히 탈출했으나, 선생은 비밀 창고에 감추어 두고 온 엄청난 양의 잘 말린 인삼, 어렵게 수집한 고려청자, 고서화들이 눈에 밟혀 몸살을 합니다.

 

하여 개성 주둔군 – 38선으로 개성이 남북으로 갈렸습니다. – 부대장을 찾아갑니다. 고귀한 문화재에 대한 선생의 걱정에 공감한 부대장은 특공대를 조직하여 밤에 몰래 38선을 넘어가 무사히 창고 속에 숨죽이고 있던 문화재와 인삼을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선생은 이 때 반출한 인삼 뭉치를 종자돈으로 하여 세창물산이라는 광산회사를 차려 큰 성공을 거둡니다. 그리고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고미술품 수집에 쏟아 붓습니다.

 

1973년 선생은 애지중지 하던 209점의 문화재를 대학에 기증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예고도 없이 대학을 찾아가 기증 의사를 밝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들이 선생을 그냥 시골 촌로로 생각하고 건성건성 대합니다. 그런데 서강대의 파란 눈의 총장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총장은 선생의 두 손을 잡으면서 대학의 명예를 걸고 주시는 작품을 잘 모시겠다고 연신 머리를 조아립니다.

 

그리고 총장은 작품 원물을 보지도 않고 선생이 주신 작품 목록만 보고 미국의 고미술 전문보험회사에 보험 가입을 합니다. 그리고 선생의 소장품을 기본으로 박물관도 세우겠다고 하고요. 이러니 선생이 아파트 몇 십 채 값어치가 나가는 작품들을 흔쾌히 서강대에 기증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자신의 자식과 같던 고미술품이 서강대로 이사 가는 날, 석양을 바라보던 선생의 눈가는 붉게 물들었답니다.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해방 전 손재형 선생이 동경으로 후지츠카 츠카시 선생을 몇 번이고 찾아가 세한도를 돌려달라고 간청하여, 선생의 간청에 감동한 츠카시 교수가 세한도를 돌려주었다는 얘기가 유명하지 않습니까? 세한도를 돌려주고 난 얼마 후 세한도를 보관하던 츠카시 교수의 집이 폭격으로 불탔다고 하고요. 손재형 선생이 정치에 빠져 파산을 하면서 세한도는 어느 기업가에게 넘어가지요. 그런데 이 기업가도 4.19 무렵 망합니다.

 

그리고 이 기업가는 자신과 동향인 선생을 찾아옵니다. 세한도를 선생에게 넘기고 싶다는 것인데, 이 기업가도 선생과 같은 사람이 세한도를 맡아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세한도를 보는 순간 선생은 이상한 기운을 느끼면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더랍니다. 그리고 작품값만 쳐준 것이 아니라 이 기업가가 재기할 수 있는 사업자금을 다 대줍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진정한 거상(巨商)이네요. 특히 인삼으로 성공했다고 하니까, 조선의 거상 임상옥 생각도 납니다. 세한도는 선생의 신청으로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선생은 세한도를 아예 팔 수도 살 수도 없게 대못을 치고 싶어서 국보 지정 신청을 하였답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고, 아들 손창근 선생도 아버지처럼 전문가 이상으로 고미술을 연구하였는데, 2011년 세한도를 아예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을 하였습니다. 세한도를 혼자서만 감상할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볼 수 있게 한 것이지요. 그리고 손창근 선생은 2012년 용인시 시궁산 일대의 어마어마한 임야를 산림청에 기부합니다. 이 아름다운 숲을 영구 보전해달라는 조건으로요. 그야말로 권선생이 글 제목을 <기부미학>으로 붙일 만합니다.

 

유 박사님 덕분에 의사 선생님들의 문학세계와 의사 선생들의 고뇌와 기쁨을 같이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수석회 회원들이 앞으로도 발로 철학하면서 계속 좋은 글을 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수석회 수필집이 앞으로도 54권, 55권, 100권으로 이어져나가기 바랍니다. 아니 영원히 빛이 나는 수필집으로 계속 이어나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