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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나들이

[화보] 경주 굴불사터 사면석불(四面石佛)을 찾아서

현재 사면석불은 이차돈의 순과와 관계된 백률사에서 관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에는 옛 굴불사터 사면석불이 있다. 사면석불이란 네모진 바위의 각 면에 불상을 새겼다는 것으로 자연석 육면체 바위에 각각의 방위별로 그에 합당한 의미가 있는 불상을 새긴 것이다.

 

이 사면석불의 유래는 《삼국유사》에 자세히 기록되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 경덕왕(재위742년~765년)이 현재 굴불사터 사면석불 바로 위쪽에 있는 백률사(栢栗寺)로 가기 위해 이곳에 이르렀는데, 땅속에서 염불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임금이 소리나는 곳을 파보게 하였더니 큰 바위가 나왔다. 파올린 바위에  왕명에 따라 사면에 석불상을 새기고 그곳에 절을 지어 굴불사(掘佛寺)라고 하였다. 사면석불을 새긴 까닭은 이곳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모두 불국토임을 표현한 것이다.

 

이 사면석불은 서쪽에는 아미타삼존불상을 새겼다. 삼존불은 서방정토의 아미타불과 협시불로 보이는데, 본존불과 관세음보살은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나 아미타불 오른쪽에 있는 보살은 머리부분이 없어져 무척이나 아쉬웠다. 동쪽에는 결가부좌를 한 불상이 손바닥에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약사불로 현생 중생들의 온갖 병고를 치료해준다는 의미가 있어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부처님이다. 약사불의 협시보살은 별도의 바위에 새겨 세웠을 것이나,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북쪽에는 두명의 상이 있는데, 왼쪽에는 얕은 선각의 삽일면관세음보살이 새겨져 있다. 오른쪽에는 얕게 돋을새김한 미륵보살로 짐작되는 보살상이 있다. 그리고 남쪽에는 석가삼존불을 조성했을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왼쪽 보살의 머리부분은 훼손된 상태이고, 오른쪽 보살은 별도의 바위에 새긴 보살이 있었을 것이나 사라지고 없으며, 불상만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사면석불의 불상들은 인도 굽타왕조 때의 조각상과 그 조각 기법상의 유사성을 보이며 이런 기법이 중국에 전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당나라에서 꽃을 피우고 이어 다시 신라에까지 이어졌을 것으로 보는데 굴불사터 사면석불은 당나라 전성기 양식의 영향으로 짐작된다. 현재 굴불사터 사면석불은 바로 비탈면 위에 있는 백률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백률사는 신라 불교의 공인시기에 공이 큰 '이차돈'과 깊은 관계가 있는 절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에서 이미 크게 번성하던 불교를 신라 법흥왕은 속히 받아들여 공인하고자 하였으나, 토속신앙에 빠진 신하들의 반대로 528년 전에는 공인하지 못하였다.

 

이에 이차돈은 불교 공인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를 하였다. 이차돈은 미리 법흥왕을 찾아가 의논한 뒤 자신이 왕명을 어긴 죄를 받고 순교할 것을 자청하였다. 그러면 부처님의 능력으로 큰 이변이 생길 것이며, 그 이변을 기회로 불교를 공인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약속한 뒤 이차돈은 왕명을 빙자하여 좋은 터를 닦고 절을 지으라는 뜻을 전하였다. 그러자 신하들이 궁궐로 몰려와  절짓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그리고 임금은 이차돈이 자신을 속였다고 크게 꾸짓고 그 죄값으로 이차돈에게 참수형을 명하였다.

 

이 일로 이차돈은 참수되었는데, 형장의 망나니 칼에 이차돈의 목은 떨어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그의 목에서는 흰 젖같은 피가 솟아올랐으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땅은 진동하며, 사방에서는 꽃비가 내래는 등 이적이 일어났다.

 

이런 신비스러운 이적을 본 대신들은 두려움에 떨며 어쩔 수 없이 불교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뒤 신라는 좋은 터를 찾아 절을 짓고 화려한 불교국가가 되었다. 그 때 이차돈의 순교로 칼에 잘린 목은 높이 솟아 올라 바로 현재의 백률사터에 떨어졌다고 하며, 목이 떨어진 이곳에 절을 지어 백률사가 되었다고 한다.

 

기자정보

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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