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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운동

100년전 오늘, 도쿄 2.8독립선언을 만천하에 선포한 날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청년독립단(朝鮮靑年獨立團)은 우리 이천만 겨레를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와 승리를 얻은 세계 여러 나라 앞에 우리가 독립할 것임을 선언하노라.”

 

100년전 오늘은 1919년 2월 8일 일본 동경에서 유학생 중심으로 독립선언서를 전 세계에 당당히 알린 날이다. 그날의 함성으로부터 어느새 100년의 시간이 흘렀다. 해마다 이곳에서는 재일본 한국YMCA와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의 공동주최로 ‘2.8 독립기념식’을 열고 있는데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특별히 그 의미가 깊다. 

 

 

기념식이 열리는 재일본 한국YMCA 건물 입구에는 2.8 독립선언 돌 기념비가 서있다. 2·8 독립선언(二八獨立宣言) 기념비는 1919년 2월 8일 일본 도쿄 재일 유학생이 중심이 되어 적지에서 불굴의 의지를 만천하에 선포한 장한 행동을 기리고자 1982년 세웠다. 동경 유학생들이 주축으로 일어난 2.8 독립선언 선포식은 삽시간에 절망에 빠져있는 고국에 전해졌고 급기야 3.1운동의 활화산을 뿜어내게 한 원동력이 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919년 1월 유학생들은 “동경조선유학생학우회”를 중심으로 동경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웅변대회를 열었다. 이때 독립을 위한 구체적인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결의하고, 실행위원으로 최팔용·김도연·백관수 등 11명을 뽑았으며 실행위원들은 “조선청년독립단”을 결성하고 <민족대회 소집청원서>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었다.

 

그리고 2월 8일 선언서와 청원서를 각국 대사관, 공사관과 일본정부, 일본국회 등에 발송한 다음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유학생대회를 열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에 의해  9명의 실행위원을 포함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실행위원 전원이 검거되는 상황 속에서도 2.8 독립선언은 그 위력을 발휘하여 당일 체포되지 않은 참가자들이 조선에 잠입하여 3.1 만세운동에 불을 지폈고 이는 중국인들의 가슴에도 불을 질러 5.4운동에까지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경 유학생이 중심이 된 '2·8 독립선언서'는 '3·1 독립선언서'보다 훨씬 강경하게 일제의 침략을 고발하고 독립을 위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투쟁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따라서 2.8 독립선언은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인 3.1 독립선언을 이끌어낸 위대한 실천이며 민족 자주의 초석인 것이다.

 

또 이 선언은 일제에 대항하여 그들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고 일제가 불법으로 조선을 침략, 강제 병합하여 우리 민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한 죄악상을 폭로하는 한편 민족의 생존을 위해 자유의 행동을 취함으로써 독립을 달성할 것을 세계만방에 외친 우국충정에 불타는 우리 젊은 청년들의 정의로운 외침이었으며 절규였다. 오늘은 100년전 적국의 심장부에서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2.8독립선언이 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