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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영화 '말모이', 조선팔도의 사투리를 모은 까닭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크게 이바지한 영화
엄유나 감독의 탄탄한 연출과 각본, 유해진과 윤계상 연기 대결 볼만해

[우리문화신문=김철관 기자]  현재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우리말과 글의 소중함에 대해 느낄 것이다. 이런 의미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배우 유해진(김판수 역)과 윤계상(류정환역)의 재미와 갈등적 연기도 눈여겨볼만하다.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우리 순수한 말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사전’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조선어학회가 우리말 사전을 만들기 위해 일제 감시를 피해 전국의 우리말(사투리)를 모았던 비밀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당시 배경은 한글학자 주시경 선생이 죽은 이후, 우리말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의 이야기이다. 창씨개명 등 일제의 탄압이 극하게 달할 때,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한 조선어학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영화화했다.

 

일하던 한 경성의 극장에서 해고돼 백수가 된 김판수는 아내 없이 두 자녀를 키운 가장이다.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소매치기를 선택한다. 그와 의기투합한 사회 동료들과 경성역 대합실에서 기회를 보다 말끔한 양복을 입고 밖으로 나온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을 발견하고 그의 가방을 훔쳐 달아난다.

 

가방에는 돈이 아닌 사전을 만드는데 사용할 중요한 자료였고, 결국 김판수의 실수로 집주소를 알아낸 류정환은 그의 집을 찾아가 가방을 되 찾는다. 그리고 조선어학회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이런 해괴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 이야기를 듣던 조선어학회 동료 조갑윤(김홍파)는 과거 김판수에게 신세를 진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심부름을 할 사람으로 ‘김판수’를 채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른 동료들도 다 동의를 하지만 대표 류정환은 말도 안 된 소리라고 강변한다. 가방을 훔쳐 달아난 사람이니 그의 말이 이해될 만하다. 하지만 대표를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원하자 할 수 없이 김판수를 심부름꾼으로 채용하게 된다. 하지만 김판수는 대표 류정환과 매일매일 티격태격하고, 그러는 한편 정 또한 쌓이게 된다.

 

 

 

 

일제강점기 탄압은 조선어학회에 마수를 뻗쳤다. 우리말과 글을 포기할 수 없었던 직원들은 조선팔도 사투리를 모으고 우리말 사전을 제작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는데, 일본 순사들이 이를 알아차리면서 위기에 처한다.

 

영화를 보면서 주시경 선생이 떠올랐다. 1910년 경술국치 이전, 나라가 기울고 있던 대한제국 시절 주시경 선생은 "나라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른다."는 말로 우리 말글을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결국 1910년 한일병탄조약이 체결됐다. 이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는 한 인터넷 매체 기고를 통해 주시경 선생에 대해 밝힌 말이 있다.

 

“주시경 선생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뒤에도 그 꿈을 접지 않고 더 열심히 우리 말글 보급에 나섰다. 한글책 보따리를 들고 여러 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주보따리’였다. 일제강점기 일본말이 국어가 되니 우리말을 ‘국어’라고 부를 수 없어 ‘한말’, ‘한글’이란 이름을 지어 부른 것이 유래가 돼 지금까지 ‘한글’로 전해지고 있다. 대한제국 시절 주시경 선생은 우리말 사전 ‘말모이’를 만들었다.“

 

 

 

‘말모이’를 보면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이었던 1963년 일어난 ‘문법 파동’이 떠오른다. 문교부 국어사정위원회 주최로 전국에 다양하게 난립했던 문법 용어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표결을 함으로써 발생한 사건이다.

 

문법파와 말본파의 주장이 팽팽할 때였다. 문법파는 문법, 동사, 명사, 조사 등 일본식 한자어로 된 문법용어를 강조했고, 말본파는 말본, 움직씨, 이름씨, 토씨 등 순우리말로 된 문법 용어를 주장했다. 63년 7월 25일 표결결과 8대 7이었다. 한 표차로 문법파의 승리였다.

 

이후 표결에 진 말본파는 치열한 반대 운동을 펼친다. 이를 역사는 '문법 파동'이라고 일컫는다. 당시 말본파는 사전을 우리 순수말로 ‘말광’이라고 했다. ‘말의 창고’라는 의미다. 순수 우리말은 현재 우리 교육현장에서 완전히 사라진 아쉬움이 있다. 심부름꾼 김판수는 갈등을 빚는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에게 "사람이 없이 산다고 그렇게 막말 하는 게 아니야."라고 말한다. 이 대사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말모이’ 감독 엄유나는 “영화라 통해 꿈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지기를, 험한 세상을 가까스로 혼자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일각에선 영화 ‘말모이’를 두고 역사를 이용한 오락 상업영화라는 비판하기도 하지만, 우리말과 글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일조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