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한글 그리고 우리말

'주보따리' 주시경 선생님께 -이건범-

[100년 편지]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오늘은 선생님 보따리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한글문화연대 대표 이건범이 주시경 선생님께 올립니다. ‘주보따리’ 주시경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한글문화연대라는 시민단체의 대표 이건범입니다.

 

‘한글’, 선생님께서 지으신 이름이죠? 1908년에 만든 <국어연구학회>의 이름을 1911년에 <배달말글몯음>으로, 1913년에 <한글모>로 바꾸셨던 걸로 압니다. 1910년 경술국치 뒤로 ‘국어’란 곧 일본어였으니 ‘국어’라는 말을 더 이상 사용할 수는 없었겠지요. 그때 처음 사용하신 ‘한글’이라는 말이 세종대왕께서 만든 훈민정음의 새 이름으로 자리를 잡은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선생님 돌아가신 뒤 제자들이 꾸려간 <조선어학회>에서 1933년에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안하고 ‘조선말 큰 사전’ 편찬에 적용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1920년대 이래 ‘한글’이라는 이름은 학계와 민간에서 두루 쓰였습니다. 1926년에 처음 기린 한글날은 그 이름이 ‘가갸날’이었지만, 1928년부터는 ‘한글날’로 바뀌었고, 조선어학회의 동인지 이름도 <한글>이었습니다. 그 이름을 지금 저희가 쓰고 있답니다.

 

얼마 전엔 ‘조선어학회 사건’을 다룬 <말모이>라는 영화가 나와 국민들의 눈시울을 붉히고, 가슴에 우리말과 한글 사랑의 불을 지폈습니다. 얼핏 들으면 당근이나 건초처럼 말이 먹는 모이를 말하는 건가 오해할 사람도 있겠지만, ‘말모이’란 말을 모아 놓았다는, 곧 우리말 사전을 가리키는 말이죠. 역시 선생님께서 지으신. ‘사전’이라는 한자말 대신 이렇게 우리 토박이말로 새로운 이름을 지으려면 용기와 지식이 필요하다는 걸 요즘 자주 느낍니다. 사람들이 낯설게 여길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벗어던지는 용기, 우리말을 새로 만드는 방법에 관한 지식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렇게 큰 사건이 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하셨겠죠? 선생님 제자 33명이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질게 고문당하고, 그 가운데 이윤재, 한징 두 분은 고문 후유증으로 옥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치가 떨립니다. 이극로, 최현배, 이희승 등 여섯 분은 해방될 때까지 3년 넘게 감옥살이를 했고요. 우리말 사전 만든 게 민족의식을 고취한 일이라고 일본 경찰이 몰아갔던 1942년의 ‘조선어학회 사건’은 고문 조작으로 시작되었지만, 사건의 전개는 당시 일본 제국주의의 악랄한 식민지 통치 상황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말과 한글을 못 쓰게 하고 기어이 말살하려던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죠. 어쩌면 그러기 위해 이 사건을 키웠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식민지에서 제 말을 지키고 가꾸겠다는 생각은 언제든 탄압받을 위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말은 곧 그 나라 그 겨레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1910년에 ‘한나라말’이라는 글에서 말씀하신 민족 독립의 사상이 제국주의자에겐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불온한 사상 아니었겠습니까? 그 글은 이렇게 시작했죠. “말은 사람과 사람의 뜻을 통하는 것이라. 한 말을 쓰는 사람끼리는 그 뜻을 통하여 살기를 서로 도와주므로 그 사람들이 절로 한 덩이가 지고, 그 덩이가 점점 늘어 큰 덩이를 이루나니, 사람의 제일 큰 덩이는 나라라. 그러하므로 말은 나라를 이루는 것인데,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러하므로 나라마다 그 말을 힘쓰지 아니할 수 없는 바니라.”

 

 

말이 겨레의 정체성이요, 독립 번영의 연장이라는 통찰이 번뜩이는 글입니다.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 이 대목을 쓰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이 일본 식민지로 강제 병합되었으니, 나라가 주저앉는 시점에서 말을 올려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셨겠지요. 저는 한때 이 글을 다 읽지 못한 상태에서 한두 문장만 보고 선생님 뜻을 곡해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대목입니다.

 

“말이 거칠면 그 말을 적는 글도 거칠어지고, 글이 거칠면 그 글로 쓰는 말도 거칠어지나니라. 말과 글이 거칠면 그 나라 사람들의 뜻과 일이 다 거칠어지고, 말과 글이 다스리어지면 그 나라 사람들의 뜻과 일도 다스리어지나니라.”

 

이 글을 읽고는 ‘아, 고운 말을 써야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말이로구나’라고 생각했던 거죠. ‘거칠다’와 ‘다스리다’의 말뜻을 잘 몰라서 일으킨 오해였습니다. ‘거칠다’를 ‘막되다, 사납다’ 등의 뜻으로만 이해했고, ‘다스리다’ 역시 정치 행위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청소년 욕설이 날로 늘어나고 인터넷에는 혐오표현이 흘러 넘쳐서, 이른바 ‘거친 말’을 이와 같은 욕설이나 혐오표현으로 지레 짐작했죠. 그러니 반대로 ‘말을 다스린다’는 문장도 아름다운 말을 쓰도록 이끈다는 식으로 오해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어느 날인가 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사전을 찾아보고서 무릎을 탁 쳤답니다. ‘거칠다’에는 ‘일을 하는 태도나 솜씨가 찬찬하거나 야무지지 못하다. 음식이 맛과 영양이 적고 부드럽지 아니하여 험하다.’라는 뜻이 있고, ‘다스리다’에는 ‘사물을 일정한 목적에 따라 잘 다듬어 정리하거나 처리하다.’라는 뜻이 있더군요. 말이 지역마다 계층마다 달라 서로 통하기 어렵고 말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 잎이 정리되지 않은 채 엉망진창인 상태를 ‘거칠다’라고 표현하였던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곧 말과 글을 표준화하고 정보화하고 고급화하느냐 그렇게 못하느냐의 문제였던 것이죠.

 

그 시절에 말과 글을 다스리는 첫걸음이 아마도 문법을 정리하고 맞춤법을 정하고 표준어를 정하여 국어사전을 만드는 일 아니었겠나 싶더군요. 그래야 더 이상 말이 헝클어지지 않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제 몫을 하여 나라가 발전하는 데에 훤하고 탄탄한 길 구실을 하겠죠. 조선어학회 제자들이 바로 우리말과 글을 다스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말과 글이야말로 독립의 가장 중요한 힘이라는 점을 이 글 마지막에 밝히셨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 나중에 조선어학회 제자들이 조선말 큰 사전 작업에 목숨까지 걸게 된 말글 민족주의의 뿌리가 아니었을까 헤아려봅니다.

 

“또 그 나라 말과 그 나라 글은 그 나라, 곧 그 사람들이 무리진 덩이가 천연으로 이 땅덩이 위에 홀로 서는 나라가 됨의 특별한 빛이라. 이 빛을 밝히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밝아지고, 이 빛을 어둡게 하면 그 나라의 홀로 서는 일도 어두워 가나니라. 우리나라의 뜻있는 이들이여, 우리나라 말과 글을 다스리어 주시기를 바라노라.”

 

그래서 선생님께선 우리말 말본(문법)을 연구하시는 한편으로 국어강습소를 차려 청소년들을 가르치셨죠. 앉은 자리가 따뜻해질 틈도 없이 책 보따리 싸들고 바쁘게 이 학교 저 학교 돌아다니며 국어와 역사, 지리를 가르치신 덕에 선생님 별명이 ‘주보따리’가 된 거고요. 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된 뒤로는 말모이 편찬까지 시작하셨으니, 서른일곱이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돌아가신 게 참으로 안타깝고 한스럽습니다.

 

우리 겨레 모두가 선생님의 뜻을 잘 받든 덕에 조국 광복을 맞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선어학회 제자들처럼 우리말과 글을 다스리고자 애쓴 분들이 있었기에 해방 뒤 국어를 정비하는 일이 그나마 수월했습니다. 일본에게 빼앗겼던 우리말을 도로 찾으려는 운동을 벌이고, 한글을 배우려는 열광적인 요구에 발맞춰 문맹 퇴치에 나섰으며, 교과서와 공문서에 한글을 전용하려는 노력도 빼먹지 않았습니다. 전쟁통에 늦어지긴 했지만 1957년에는 ‘큰 사전’ 마지막 권인 제6권을 내서 우리말 정비 작업의 첫걸음을 마무리했습니다. 문맹은 빠른 속도로 사라졌고, 산업화와 민주화에도 한글은 큰 몫을 했습니다.

 

물론 모든 일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닙니다. 대개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이 나라 지식인 1세대와 그 제자들은 한글전용에 반대하면서 국한문혼용을 고집하였습니다. 모든 일간신문에서 한글전용을 도입한 1990년대 말에서야 국민 주도의 문자혁명이 마무리되었죠. 글자 표기는 그렇다치고, 일본에서 번역한 근대 서구 학문과 문물을 수입하여 쓴 탓에 새로운 개념과 현상의 이름은 대개 일본식 한자어 차지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위장된 국가주의를 내건 박정희 정권이 민족주의를 내세우고자 교과서에 한글전용을 확립하고 일본어 찌꺼기를 쓸어내며 외국어 남용을 줄인 시절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는 정치적인 부작용을 낳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에 반대하던 사람들이 국가가 제멋대로 펼친 국어순화정책 또한 권위주의의 한 자락이라고 지목했던 것이죠. 충분히 그럴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권위주의적 언어 정책에 대한 반발은 ‘내 멋대로 말하면 어떠냐’는, 이른바 ‘언어 자유화’의 태도로 이어졌고, 이것은 1990년대에 세계를 휩쓸고 간 무한경쟁, 약육강식 풍조와 어울려 사회적으로 경쟁에 이긴 강자에게만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세계의 강자 언어인 영어를 떠받드는 세태가 강해지고, 차별과 배제를 서슴지 않는 갑질 언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회 전반에 스며듭니다. 민족 국가를 세웠고 언어 주권도 확립한 이 나라에서 새로운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스튜어드십 코드, 커뮤니티 케어, 배리어 프리, 제로페이, 규제 샌드 박스, AI 알고리즘……. 이런 말이 최근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용하는 정책 용어입니다. 방송에선 비주얼, 뷰, 콜라보, 레시피, 워라벨, 워킹맘, 리액션 등 우리 삶의 모습을 외국어로 표현해 조금이라도 더 튀려는 경쟁이 치열합니다. 저는 ‘된장녀, 깽깽이, 맘충’과 같이 국민들 사이에서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말에도 맞서고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정부와 언론에서 주로 퍼뜨리는 어려운 공공언어에 맞서 싸우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개 영어 낱말입니다.

 

세계화, 정보화 시대에 영어 좀 사용하는 게 무어 그리 큰 문제냐고 시답잖게 여기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게 우리 생활에는 없었던 ‘컴퓨터, 인터넷, 디지털’과 같은 말이라면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우리말로도 충분히 쓸 수 있는 것을 영어로 표현하려는 심리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있어 보이려는, 튀어 보이려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런 마음이 일반 국민 위에 군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나날이 천박해지는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그리고 정부 공무원의 외국어 남용은 쓸데없는 민원을 일으켜 정책의 효율을 떨어뜨릴뿐더러, 외국어 능력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를 차별할 위험이 높습니다.

 

선생님~ 민족국가를 세우고 겨레의 언어를 국어로 정비해야 했던 선생님 시대의 과제는 해결되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문제가 우리 언어 환경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정부 공무원과 정치인들의 어려운 말 때문에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위협받는 일반 국민, 존엄하고 서로 균등하게 살아야 할 사람들이 혐오 표현과 차별어 때문에 상처받는 시대. 그래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언어 문제는 인권의 문제요, 민주주의의 문제입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가장 밑바닥에 두고 국어 정책을 펼쳐야 국민의 우리말 사랑이 다시 불붙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행복한 세상을 꾸려갈 힘이라고 믿습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의 총칼에 무릎꿇지 않고 만세를 불렀던 기미만세운동 1백돌,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백돌인 오늘, 제가 나라의 안위보다도 국민의 인권을 내걸고 우리말 문제를 걱정하는 까닭을 선생님께서도 이해하시겠지요? 살아 돌아오신다면 오늘 선생님의 보따리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을까 헤아려봅니다.

 

선생님, 어이없는 일이지만, 옛날처럼 나라와 말을 빼앗기고 말살당할 상황이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우리말과 한글에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은 약한 편입니다. 할 일은 많은데 일손은 딸립니다. 좀 괜찮다 싶은 사람들 입에서 어이없는 말이 나와 실망하는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국어운동을 밀고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힘이 빠질 때마다 선생님을 생각합니다. 제가 겪는 어려움이 어찌 선생님께서 느끼셨던 어려움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분수에 넘친 투정이라고 받아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안녕히 계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