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재 소녀 명창이란 칭찬을 들었으며, 열일곱 살 어린 나이인 1930년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장원을 했고 오케ㆍ포리돌ㆍ빅타레코드사와 계약한 다음, 〈흥보가〉ㆍ〈춘향가〉ㆍ〈심청가〉등을 취입하여 큰 성공을 거둔 박초월 명창을 아십니까? 박초월 명창은 박록주, 김소희와 함께 3대명창으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한 누리꾼은 국보급 명창인 박초월 선생이 한국의 마리아 카라스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은 106년 전인 박초월 명창이 태어난 날입니다.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젊은 시절 박초월 명창의 학원에서 선생의 사랑을 받으며, 판소리 공부를 할 때 학원 창문 밖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단성사> 영화관의 화려한 영화 간판과 네온사인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십오 년쯤 뒤에 자신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한 「서편제」의 간판이 그 곳에 걸릴 줄은 물론 판소리가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에 오를 줄 상상도 못했다고 털어놓으며 박초월 명창과의 인연을 얘기합니다.
박초월 명창은 김정문ㆍ송만갑ㆍ임방울ㆍ정광수 명창에게서 판소리를 배웠고, 1964년 10월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의 보유자로 지정을 받았으며, 1973년 11월에는 「수궁가」의 보유자로도 지정을 받았습니다. 박 명창은 조통달ㆍ남해성ㆍ김수연ㆍ김정민 등의 후계자를 냈지요. 39살에 박귀희, 김소희 명창과 국악예술학교(현재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창설해 국악교육 발전에 힘썼으며, 초대 한국국악협회 이사장과 1974년엔 판소리보존회 이사장을 지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