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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 사람의 흰옷 사랑과 일제의 먹물뿌리기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21]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방금 직산의 싸움터에서 돌아온 중국 병사가 ‘천안과 직산 사이에서 뜻밖에 왜적 선봉대가 모두 흰옷을 입고 들판을 덮어 오기에, 중국 병사들이 처음에는 조선인이라 생각하여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적이 먼저 포를 쏘므로 중국 병사들이 일시에 말을 달려 나가 서로 죽이며 한참 동안 교전했습니다.’고 했습니다.” 이는 《선조실록》 30년(1597) 9월 9일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보면 임진왜란 때 왜적이 흰옷을 입고 조선 사람인 척했습니다.

 

그럴 정도로 우리 겨레는 오랜 옛날부터 흰옷을 좋아했다고 하지요. 중국 위ㆍ촉ㆍ오 때부터 진이 중국을 통일한 때까지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부여(만주 쪽에 있었던 옛 우리 겨레) 전기 기록을 보면 “나라 안에 있을 때는 흰옷을 좋아한다. 흰옷에 큰 소매가 달린 두루마기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퍼시벌 로웰이 쓰고, 조경철이 뒤친 《내 기억 속의 조선, 조선 사람들(예담, 2001)》에는 “서울은 한 가지 점을 제외하면 내가 본 도시 가운데 가장 어두운 곳이다. 한 가지 예외가 있는데 사람들이 입은 흰옷이다. (중간 줄임) 멀리서 보면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흰 겉옷은 확실히 거리를 환하게 만든다.”라는 대목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일제는 우리 겨레에게 흰옷을 입지 못하게 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번진 남도아리랑에는 “떡 팔러 장에 갔다 / 베옷에 먹물탕이라 / 옷이야 검었지만 / 배알까지 검길쏘냐” 하는 대목이 있었지요. 이는 일제가 시골 장터의 들머리마다 검정물을 담은 커다란 가마솥을 놓고, 장에 오는 사람들의 흰옷에 검정물을 끼얹은 데서 나온 노래입니다. 검정물세례를 받은 떡장수까지도 배알, 곧 심지까지야 검게 할 수는 없다고 민족감정을 토해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겨레는 일제의 강압에도 흰옷에 대한 집념은 대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