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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비문 309개를 완전히 익혔던 추사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22]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완당노인네 추사의 글씨는 어려서 늙을 때까지 서법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는 오직 동기창에 뜻을 두었고 24살에 북경에 다녀온 후부터는 옹방강을 좇아 노닐면서 열심히 그의 글씨를 본받았다. 그래서 이 무렵 추사의 글씨는 너무 기름지고 획이 두껍고 골기(骨氣)가 적었다는 흠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소동파, 미불, 이북해, 구양순 등 여러 고전들을 다 섭렵을 하게 되고 만년에 제주도로 귀양살이를 하러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남에게 구속받고 본뜨는 경우가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일법(一法)을 이루게 되니 신(神)이 오는 듯, 기(氣)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 하였다.”

 

 

이는 추사의 후배 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쓴 《박규수전집》 가운데 “유요선이 소장한 추사유묵에 부쳐”라는 글입니다. 유홍준 교수는 “추사체가 변천해 가는 과정을 아주 다섯 줄 밖에 안 되는 이 글 속에 다 들어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추사의 글씨는 추사 개인의 창의력뿐만 아니라, 중국 서예사, 동양 서예사의 큰 줄거리에서 봤을 때 맨 마지막에 있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추사는 친구 권돈인에게 ‘나는 70평생에 벼루 10개를 밑창 냈고 붓 1천 자루을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또 모름지기 팔뚝 아래 309개의 옛 비문을 완전히 익혀서 간직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추사는 붓 1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면서 쓰고 또 썼지만 그에 더하여 예부터 붓글씨의 본보기라고 할만한 비문 309개를 완전히 익혀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놨기에 오늘의 추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 후기 서화가 유최진은 자신의 책 《초산잡저》에서 “추사의 글씨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자들은 괴기한 글씨라 할 것이요 알긴 알아도 대충 아는 자들은 황홀하여서 그 실마리를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라며 추사는 법도를 떠나지 않으면서 또한 법도에 구속받지 않는 서예가라고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