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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을사늑약 논의한 태화관서 3.1독립선언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2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내일은 3.1만세운동 100돌이 되는 날입니다. 1919년 3월 1일 낮 2시 민족대표들은 조선음식점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독립선언을 요릿집 태화관에서 한 까닭이 무엇일까요? 태화관은 원래 중종이 순화공주를 위해 지어준 순화궁(順和宮) 터였고, 이후 이완용이 별장으로 사용하던 집이었지요. 이 집은 1905년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을 몰래 논의한 곳이고, 1907년 7월 고종황제를 퇴위시킨 다음 순종을 즉위케 한 음모와 1910년 강제 병탄 조약 준비 등이 벌어졌던 곳입니다. 따라서 매국노가 나라를 팔아먹기 위한 행위가 모두 이 집에서 벌어졌기에 바로 여기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함으로써 매국적인 모든 조약을 무효화한다는 의지도 담겨 있었다고 하지요.

 

 

원래는 독립선언 장소로 탑골공원이 정해졌었는데 탑골공원에서 선언을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왜경이 기미를 알아차리면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장소를 바꾼 까닭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태화관 주인 안순환은 원래 궁내부(宮內府) 주임관(奏任官) 및 전선사장(典膳司長), 곧 궁중 잔치의 으뜸 주방장을 지냈던 사람으로 1910년 나라가 망하자 벼슬을 내놓은 배일(排日)사상가였다는 점도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날 독립선언에 참석한 사람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손병희 선생의 지시로 상해로 간 김병조 선생과 지방에서 미처 당도하지 못한 3명을 뺀 29인이 참석했습니다. 이들 29인은 태화관 동쪽 처마에 걸어둔 태극기에 절을 한 다음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하는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뒤 기념술잔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미리 일본 경무총감부에 알려 출동한 일경을 따라 경무총감부로 가 갇히기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