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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1944년 오늘 김마리아 애국지사 순국한 날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33]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흰 저고리 고름 날리며 / 일본 칸다구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칼 찬 순사 두려워 않고 / 2·8 독립의 횃불을 높이든 임이시여!

그 불씨 가슴에 고이 품고 / 현해탄 건너 경성 하늘 아래

모닥불 지피듯 독립의지 불붙이며 / 잠자는 조선여자 흔들어 깨워

스스로 불태우는 장작이 되게 하신 이여!“

 

위는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2권에 실린 <잠자는 조선여자 깨워 횃불 들게 한 ‘김마리아’> 시 일부로 오늘은 김마리아 애국지사가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한 날입니다. 입니다.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던 김마리아 애국지사는 동경 유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1919년 2월 8일 기독교청년회관(YMCA)에서 연 2·8독립운동에 가담한 뒤 〈독립선언서〉 10여 장을 베껴 옷 속에 숨기고 차경신 등과 2월 15일에 부산항에 들어옵니다. 이렇게 들여온 2.8독립선언서는 3·1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왜경에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아무리 나를 고문한다 해도 내 속에 품은 내 민족, 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너희가 빼내지 못할 것이다.”라면서 당당히 맞섰는데 이때 당한 고문 탓으로 코와 귀에 고름이 생기는 병에 걸렸고 심한 두통과 신경쇠약을 평생 달고 살아야 했지요. 그 뒤 김마리아 애국지사는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서 황해도 대의원으로 뽑혀 활약했습니다.

 

또한 미국에 유학하면서 황애시덕ㆍ박인덕 등과 함께 근화회(槿花會: 재미대한민국애국부인회)를 조직하여 재미한국인의 애국정신을 드높이고 일제의 악랄한 식민정책을 서방국가에 널리 알리는 일에 앞장섰지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서도 교육에 헌신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조국의 독립을 눈앞에 둔 1944년 3월 13일 52살의 나이로 눈을 감았습니다. 지난 3월 1일 우리는 3.1만세운동 100돌을 기리는 많은 행사를 치렀지만 3.1만세운동에 불을 지핀 김마리아 애국지사를 기리는 소리는 적은 듯하여 아쉬움이 큽니다. 김마리아 애국지사는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