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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아리가 “삐아삐아” 하는 까닭 – 작품 25

[연변조선족문학창 44]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발음문제 - 작품 25

 

          병아리가 엄마를 찾고 있다

          삐아— 삐아—

          아무리 고쳐 들어봐도 그 발음이 틀린다

          구개음동화 아니 자음탈락이다

          그럴 수밖에

          찬찬히 볼수록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 것

          알루미늄 냄새가 난다

          병원의 소독수냄새도 나는 같다

          무정란—체외수정—인공배태—실험관아기

          엊저녁 TV화면에서 펼쳐지던 새 아침이

          로보트의 손가락에 베일처럼 벗겨지고

          어마—어마—

          자음이 탈락된 발음이

          어데선가 들려오는 것 같아

         섬뜩 몸서리 쳐진다

 

                                         —≪도라지≫, 1993년 제2호

 

 

 

 

 

< 해 설 >

 

시인이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발전에 따라 인간이 점점 왜소해지고 소외되어 설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인간의 소외는 현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들이 공동으로 앓고 있는 치유되기 어려운 병이다. 문명에 대한 회의와 비판은 시집 ≪세월의 귀≫의 주요한 주제 가운데의 하나이며 “작품 25 – 발음문제”와 같은 시에서 선명하게 나타난다.

 

양계장 부화기에서 나온 병아리에게서는 알루미늄 냄새가 나고 “삐약— 삐약—” 울어야 할 대신 “삐아— 삐아—” 하고 울 줄밖에 모른다. 자동부화기에서 태어난 병아리를 보면서 시인은 “무정란—체외수정—인공배태—실험관아기”를 연상하게 되며 병원의 소독수 냄새를 맡는 것 같고 “엄마— 엄마—”를 “어마— 어마—”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최근에 성공한 “클론(clone, 복제) 기술”은 이런 연상과 걱정이 결코 기인우천(祈人憂天)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벌써 훨씬 이전에 앨빈 토풀러가 예언했듯이 백화점에서 인형을 사듯, 각자의 기호에 맞게 주문한 아기를 구입할 수 있는 날이 문득 우리 인류에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시인은 패러디수법을 채용함으로써 자기 시로 하여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성격을 띠게 하고 있으며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하고 있는 중국 조선족시단에서 더욱 소중한 경험이고 개척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한다.(허련화 <석화 시에서 보이는 패러디수법>에서)

 

* 기인우천(祈人憂天) : 중국(中國)의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봐 침식(寢食)을 잊고 근심 걱정하였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걱정을 나타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