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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김세종제 춘향가 전통 계승자 방수미의 완창판소리

최장수 완창판소리 무대, 국립극장 하늘극장 3월 30일

[우리문화신문=정석현 기자]  2019년의 첫 완창판소리는 3월 30일 낮 3시 서울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방수미 명창의 ‘김세종제 춘향가’로 문을 연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김세종 명창으로부터 전승돼온 ‘춘향가’를 가리킨다. ‘김세종제’는 ‘김세종판’ ‘김세종 바디’라고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보성소리 ‘춘향가’, 정응민 바디 ‘춘향가’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대상은 하나인데, 그것을 가리키는 이름은 여러 가지가 있는 셈이다. 이렇듯 명칭이 여러 가지가 된 것은 이 소리의 전승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김세종은 동편제 ‘춘향가’를 잘했는데, 그의 소리는 김찬업을 거쳐 보성의 정응민에게 전해졌다. 그런데 정응민은 서편제 판소리의 시조인 박유전의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를 큰아버지인 정재근을 통해 사사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동편제와 서편제 소리를 모두 사사한 정응민의 전승 관계를 구분하기 위해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는 박유전의 호인 ‘강산’을 따라 강산제 혹은 강산판으로 부르거나, 박유전의 이름을 따서 박유전제 혹은 박유전판이라고 부르고, 김세종으로부터 이어받은 ‘춘향가’는 김세종판 혹은 김세종제로 부르게 됐다.

 

또, 서편제 판소리인 강산제 판소리에 동편제 판소리인 김세종의 ‘춘향가’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정응민의 판소리는 동편제와 서편제라고 하는 기존의 틀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아예 전승 지역의 이름을 따서 ‘보성소리’라고 하기도 한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창극화되지 않고 옛 판소리의 전통을 잘 지켜온 소리다. 개화 이후 우리나라 판소리는 안방이나 대청에서 부르던 방식에서 극장에서 창극으로 공연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이에 따라 판소리도 자연히 전통성을 잃고 세속화됐다.

 

그러다가 1960년대 초에 창극단들이 대부분 사라지게 됨으로써 판소리는 거의 사멸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자 창극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옛 전통을 지켜온 정응민의 소리가 재조명을 받게 돼 많은 사람이 보성으로 내려가 그의 소리를 배웠다. 정권진ㆍ조상현ㆍ성우향ㆍ성창순 등이 그때 보성으로 내려가 소리를 이어받은 이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옛 명창들의 더늠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사설이나 음악의 짜임새가 고풍스러우면서도 아름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정정렬제와 달리 춘향과 이도령이 월매의 허락을 받고 첫날밤을 보낸다거나, “체면 있는 춘향이가 서방 이별한다고 오리정까지 나갈 수 없다”고 하면서 춘향 집 담장 안에서 이별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 등 옛 판소리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다양한 성음 변화를 바탕으로 아기자기하게 소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 소리는 들을수록 더 깊은 맛을 느끼게 한다.

 

방수미는 어릴 때 성우향으로부터 ‘춘향가’를 배웠고, 30대 후반이 돼서 윤진철에게 다시 ‘춘향가’를 배웠다. 윤진철은 정권진으로부터 ‘춘향가’를 사사해 정통 보성소리를 직접 익힌 인물이다. 성우향은 정응민의 제자들 중에서도 스승의 소리를 가장 잘 이어받은 명창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방수미 또한 김세종제 ‘춘향가’에 관한 한 정통 계승자 중 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의 말을 빌리면 성우향 명창으로부터 소리를 배울 때는 너무 어려 소리가 마냥 재밌고 좋기만 했단다. 그래서 미처 보성소리의 참맛을 다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전력을 다해 열심히 부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러다 3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춘향가’를 배우니 무엇이 중요한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고 이야기했다. 강약을 조절하고, 성음의 변화를 주면서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깨달았다고. 그녀의 말을 들어보면 이제 방수미는 소리의 참맛을 알고 소리를 할 수 있는 원숙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 결과가 지난해 KBS국악대상 수상으로 이어진 것일게.

 

방수미는 어려서부터 창극에 출연했다. 어려서는 무용을 했는데 우연히 성우향 명창의 눈에 띄어 소리를 배우게 되었고, 열 살 때는 당시 국립창극단장이던 허규가 성우향 선생의 집에 왔다가 방수미가 소리하는 것을 보고 창극 ‘심청전’의 심청으로 발탁해 국립창극단 무대에 서기도 했다. 방수미는 지금도 남원국립민속국악원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국악과 양악을 가리지 않고 협연 무대에도 많이 서고 있다. 그만큼 음악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여러 무대에서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덧 방수미는 40대 중반에 들어섰다. 40대 중반이면 소리꾼으로 완성됐다고 할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두루 경험하고 그것을 소리로 녹여낼 수 있는 정도의 연륜을 쌓기에는 충분한 나이다. 타고난 목으로 힘차게 발성하는 것이 특징인 방수미의 소리가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에서 한층 더 성숙한 소리의 깊이를 보여준다면 방수미는 이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중견 명창으로 우뚝 설 것임에 틀림없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방수미가 남원까지 내려와 소리에 자신의 일생을 걸고 있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어지간하면 서울로 올라가려고 하는 것이 세태인데, 오히려 지방으로 내려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것이 어찌 평범한 일이겠는가. 판소리에 헌신할 마음이 없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있기에 우리나라 판소리의 미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요금은 전석 20,000원이며, 기타 문의는 전화(02-2280-4114)러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