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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이불하나에 네 식구가 함께

[엄마가 들려준 엄마의 이야기 7]

[우리문화신문=김영자 작가]  이불장을 펼치면 아롱다롱한 꽃이불들이 나를 보고 해시시 웃는구나! 그렇지, 지금은 집집마다 이불장이 넘쳐나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철철이 자기 이불이 따로 있고 폭신폭신한 그 꽃이불 속에서 모두들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지 않니? 그러나 쪼들리게 가난했던 50년대 그 시절 우리집에는 서발장대* 휘둘러도 거칠 것이란 없었단다. 롱짝 위에는 이불 두 채가 휑뎅그레 올라앉아 있었는데 이 허름한 이불 두 채가 우리 온 집안의 큰 재산이었다는구나!

 

얼굴에 늘 웃음기가 담겨있던 엄마의 복스런 얼굴은 31살의 꽃나이에 너무나 일찍 찬서리를 맞아 두 어깨엔 천만근의 무게를 짊어지셨단다. 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신 몇 해 뒤엔 “밥그릇 하나라도 줄이라”는 삼촌의 뜻에 쫓아 “근민중학교”를 다니는 언니마저 뚝 떼어 시집보내고 철모르는 우리 3남매를 데리고 농촌에서 아글타글* 고된 일을 하시면서 눈물겨운 나날을 보내시었단다.

 

세월이 흘러 1957년 큰오빠가 연변1중에 입학하였단다. 학비와 숙사비도 마련해야 했지만 이불도 큰 문제였단다. 우리집 형편에서 새 이불을 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단다. 엄마는 말없이 이불 한 채를 뜯어 씻고 끓이고 바래워서* 다듬질하셨단다. 방치돌에서 두드리고 댕면대*에 감아 절주있게* 다듬은 덕분인지 눈같이 하얀 말쑥한 이불은 엄마를 보고 웃는 듯하더란다.

 

이렇게 정성이 배인 이불짐을 지고 엄마의 사랑을 한가슴안고 오빠는 도시로 떠났단다. 집에는 이불 한 채만 달랑 남았단다. 겨울이어도 둘째 오빠와 나, 엄마, 우리 셋은 이불 한 채에 발을 넣고 서로 변두리에서 자야만했단다. 그런데 혹 일요일 큰오빠가 집에 오는 날이면 우리집은 활기에 차 넘쳤단다. 우리는 따뜻한 화롯불 주위에 오손도손 모여앉아 알감자도 구워먹고 옥수수알도 튀겨 먹으면서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큰오빠의 학교생활 이야기에 아주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문창지의 노래소리 속에서 웃음꽃을 피웠단다.

 

그리곤 이불 하나에 네 식구가 네모서리에서 누워 잤었단다. 정말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아니니? 그래도 우리 남매는 일찍 아버지를 잃었어도 항상 믿고 의지할 엄마가 있어 늘 힘이 되었고 희미한 등잔불아래 문창지도 윙윙 노래하고 우리도 조잘조잘 웃음꽃을 피워 엄마의 얼굴도 밝으셨단다.

 

 

그 시절엔 검은 천으로 바지하나 해 입자고 해도 가둑나무*잎을 한가마 삶다가 그 물에 흰 광목을 넣어 끓이면 검은 천이 되어 그것으로 옷을 해 입던 시절이라 꽃천을 구하기도 어렵지만 가난한 우리집은 근본 생각도 못했고 이불은 더 말할 나위도 못되었단다.

 

몇 년이 지나갔단다. 둘째오빠가 고중에 입학하여 또 이불을 갖고 가야했었단다. 그런데 그때는 나라도 가난하여 모든 것이 표제*였단다. 천표가 있어야 천을 살 수 있었단다. 그 외에도 솜표, 부표, 량표, 고기표, 기름표 말이다. 마음 착한 동네분들이 자기집의 솜표나 부표등을 가져와 엄마는 눈물을 머금고 그 고마운 마음을 받아들이고 열심히 가마스*를 짜서 판 돈으로 새 이불 한 채를 만들어 큰오빠에게 주고 낡은 이불은 다듬질하여 둘째오빠에게 주었단다. 오빠네들은 엄마의 사랑 이불짐을 짊어지고 장춘으로 룡정으로 떠나갔단다. 엄마는 억척스레 일했지만 농촌에서 두 아들의 식비를 마련하기 힘들어 부득불 고향을 등지고 시내에 이주하여 돈을 벌었다는구나! “가난한집아이 철이 일찍 든다.”고 오빠네들은 담요도 없었지만 투성질* 한마디도 없었단다.

 

그 후 큰오빠의 필업*과 동시에 내가 또 이불짐을 메고 갈 차례가 되었단다. 엄마의 눈언저리에 기쁨의 이슬이 맺혔더라.

 

“세월이 참 빠르기도하구나! 벌써 네 차례가 왔구나! 녀자애는 담요도 있어야겠는데……”

 

하시면서 엄마는 천쪼박*들을 보기 좋게 무어* 큼직한 담요하나를 만들어 집의 한 채 밖에 없는 이불과 함께 나의 이불짐을 꾸려주고 손에 돈을 쥐여 주더구나!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단다.

 

“엄만 혼자서 이불도 없이……”

“엄만 따뜻한 가마목이 있어 아무거나 걸치고 자도 된단다…… 큰 오빠도 졸업이니 이제부턴 좀 나아질 거구…… 좀만 더 참고 견디거라.”

나는 “엄마!……”하곤 서럽게 소리내어 흐느끼었단다. 나는 보따리를 헤쳐 담요를 꺼내어 기어이 엄마 앞에 밀어놓곤

“엄마의 첫이불”하고 눈물범벅인 얼굴로 해시시 웃어 엄마의 입가에도 웃음이 있었으나 얼굴에선 뜨거운 것이 흘러내렸단다.

 

“네가 시집갈 땐 모빈단(모본단)*이불 두 채를 해주마. 엄만 약속한다.” 하시면서 손으로 나의 얼굴을 닦아 주시더구나! 그 후 엄마는 썰렁한 오막살이에서 이불도 없이 담요하나를 덮고 칠성별을 시계로 삼고 일어나선 매일 억척스레 일하셨단다.

 

후일 늘 검은테 안경을 건 인테리어 큰오빠는 중국과학원에, 숱 많은 친머리를 늘 멋지게 빗어 올리는 둘째오빠는 대학교 교수로, 고중시절에도 반급에서 유독 나만 옷을 기워 입고 다니던 가난한 공주였던 나도 중학교 고급 수학교원으로 되었단다. 엄마도 나와 약속한 모본단이불 약속을 지켰고 우리집의 옛말 같은 이불이야기도 막을 내렸단다.

 

나는 지금도 고운이불을 덮을 때면 엄마의 그 시절 그 아픔을 그려본단다. 나는 매번 세탁기에 빨래를 할 때면 한겨울에도 마을 앞 내가에서 방치질*하던 엄마의 방치소리가 들려오는듯하고 “호ㅡ 호”하고 입김으로 손을 녹이던 눈물 젖은 엄마의 얼굴, 이불 다듬는 엄마의 방칫돌*, 엄마의 댕명대와 윤디(윤두)* 등을 눈앞에 그려보면서 “참, 오늘은 너무나 행복하구나!” 하고 웃어도 본단다.

 

<낱말 풀이>

* 서발장대 : 긴 막대기

* 아글타글 : 무엇을 이루려고 몹시 애쓰는 모양

* 댕면대 : 다듬이에 쓰는 긴 나무 몽둥이

* 절주있게 : 토닥토닥 리듬있게

* 바래다 : 볕에 쬐거나 약물을 써 빛깔을 희게 하다

* 방치돌 : 다듬잇돌 사투리

* 가둑나무 : 떡갈나무 또는 졸참나무

* 표제(票制) : 표 발급제도

* 가마스 : 가마니

* 투정질 : 마음에 꼭 차지 않아 칭얼거리거나 무턱대고 떼를 쓰며 조르는 짓

* 필업(畢業) : 하고 있던 사업이나 학업 따위를 마침

* 천쪼박 : 헝겊

* 모본단 : 비단늬 한 가지

* 친머리 : 당시 청년들이 선호한 머리 맵시의 하나

* 무어(본디말 뭇다) : 1. 여러 조각 따위를 한데 모아서 어떤 물건을 만들다

* 가마목 : 가마솥이 걸려 있는 부뚜막이나 그 둘레

* 칠성별 : 북두칠성

* 방치질 : 다듬이질

* 방칫돌 : 다듬잇돌

* 윤디 : 인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