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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법이 없던 때, 오구라는 조선에서 신났다(1)

[맛있는 일본이야기 481]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조선총독부는 1911년부터 유물유적 조사를 시작하여 1915년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1차 조사를 했다. 이 시기는 고적이나 유물에 대한 특별한 현지 보존 또는 관리 규칙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적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중요 보물들은 발견자가 사적으로 슬쩍 챙겨도 아무도 지적할 사람이 없었다. 누천년 동안 한반도에서 만들어진 각종 문화재급 보물들은 일제침략기에 무법천지로 일본인들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런 보물급 유물들을 마구 가져간 일본인 가운데 한 사람이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다. 오구라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사업에 관련이 큰 인물이다. 그는 골동상, 경매, 도굴 등 닥치는 대로 조선의 문화재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다. 오구라는 일본에서 도쿄제국대학 법학과를 나온 이래 한국으로 건너와 경부철도주식회사에 취직했다. 철도회사 취직을 계기로 그는 현지시찰과 사업구상을 하면서 자본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가 큰돈을 번 것은 전기사업권을 거머쥐면서 부터다.

 

 

생각지도 못한 사업이 성공을 거둬 주체할 수 없는 돈이 모이자 그는 한국의 고미술품에 눈을 돌린다. 1920년 무렵부터 그는 닥치는 대로 고미술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오구라는 대구에서 활동하였으나 서울에 올라오면 골동상에 들러 그림과 도자기 등을 직접 구입했다고 구하산방의 홍기대 대표는 증언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도굴꾼들 사이에는 ‘오구라한테 문화재를 가져가면 값을 후하게 쳐준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오구라의 문화재 수집은 장안에서 이름났다. 고령지역의 가야고분 300여기를 도굴한 김영조는 유물 전부를 오구라에게 팔았는데 개당 2원씩 받고 넘겼다고 한다. 곡옥의 경우 두되 이상은 족히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오구라콜렉션에는 수천 점의 곡옥, 관옥, 유리소옥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대구에 이어 서울에도 호화저택을 마련한 오구라의 대저택에는 골동상인들과 도굴꾼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하니 그가 조선에서 긁어모은 문화재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2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