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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잊혀진 흔적' 전

3.1절 100주년 기념전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류은규 사진전 열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보통 전시 막판에는 사람들이 잘 안 오는데요. 이번 전시 같은 경우에는 전시 마감 하루 전인데도 이백 여 명씩 찾아와서 관람하는 것을 보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부산, 서울, 원주 등은 물론이고 일본의 경우는 홋카이도, 도쿄 등지에서도 일부러 사진전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일본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제는 나고야에서 재일동포 서너 명이 찾아와서 사진 설명을 요청하는 것을 보고 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역사적 사진’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습니다.” 이는 사진작가 류은규 씨의 말이다.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에서 <잊혀진 흔적>전을 열고 있는 류은규 사진작가를 어제(30일) 오후 만났다.  <잊혀진 흔적>은 일제강점기 항일투쟁과 민족문화를 지키기 위해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과 그들의 후손인 조선족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전시회다. ‘3.1절 100주년 기념 전시’의 한 고리로 준비된 이번 전시는 지난 2월 28일 개막하여 오늘(31일)로 아쉽게 막을 내린다.

 

개막전에 초대를 받고도 올해 유달리 3.1절 관련 여러 행사 들이 많아 전국 취재를 뛰어다니느라 좀처럼 전시관으로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기자는 지난 한달 동안의 관람자 동향이라도 들어보리라고 어제 전시장을 찾았다. 오후 2시에 찾은 전시장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관람 중이었고 류은규 작가와 이 사진전을 기획한 도다 이쿠코(관동갤러리 관장) 씨도 전시장의 해설사가 되어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은 역사적인 사진’ 앞에서 관람객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이번 <잊혀진 흔적> 전에는 1990년대 초부터 20년간 중국에서 항일운동의 흔적을 수집하고 독립운동가 후손과 재중 동포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온 류은규 작가의 작품 70여점과 아카이브 250여점이 선보였다. 전시 공간은 탁 트인 2층 구조로 아래층 전시관에서도 2층 전시물이 보였고 2층 전시공간에서는 1층 전시공간이 보이는 특이한 구조였다. 1층 전시작품을 보다가 눈을 들어보면 2층의 관람객과 전시작품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치 100년 전 선열들이 드넓은 만주 벌판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독립운동을 하던 활동사진을 보는 듯 전시관이 주는 특이한 묘미도 이번 전시가 주는 신선함이었다.

 

 

 

사실 기자는 이번에 전시된 류은규 작가의 작품 중 일부는 두서너 번 본적이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관장은 류은규 작가의 부인으로 관동갤러리에 가끔 전시했던 ‘1994년 흑룡강성 상지시에서 만난 김규식 장군의 딸 김현태 선생’이라든지 ‘1995년 흑룡강성 하얼빈시에서 만난 전 중국인민정부 흑룡강서위원회 부주석 리민 선생’과 같은 사진은 친근함 마저 들었다. 친근함이 느껴졌다고는 하지만 이들 조선족의 흑백사진들은 보면 볼수록 아련하면서도 가슴 뭉클한 감정이 샘솟는 것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다.

 

“이번 전시 기획은 모두 5부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1부는 역사의 증언자들, 2부는 그리운 만남, 3부는 80년 전 수학여행, 4부는 삶의 터전, 그리고 마지막 5부는 또 하나의 문화 코너로 영상물 위주지요. 남편(류은규 작가)이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가 관련 사진과 그 후손인 조선족들을 찾아 사진을 찍고 자료를 모을 때 함께 관여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이 작품들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줄까 하는 점에 특히 신경을 썼습니다.”

 

이는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도다 이쿠코 씨의 말이다. 그가 고민한 흔적이 전시장에 그대로 녹아 있었다. 그 어디서 볼 수 없는 만주 일대의 항일투사와 유가족들 사진 한 장 한 장은 역사의 증언이요, 역사 그 자체라는 걸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알아차릴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중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은 관람객들은 돌아가 친구에게, 이웃에게 이번 전시를 홍보했다. 단체 관람객 중에는 이렇게 1차로 찾아왔던 사람들이 혼자보기 아까워 다시 무리를 데리고 온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서울 창천동에 산다는 교사 이도연(54살) 씨는 “이번에 동창 20명과 차이나타운 구경 겸 다시 전시장을 찾았습니다. 만주라는 곳은 우리 독립운동사에 매우 중요한 곳이잖아요. 특히 2층에 전시중인 조선의용군과 관련된 사진이 인상 깊었습니다. 조선의용군들이 태극기를 항상 걸어두고 활동한 모습은 처음 접하는 것이라 놀랍기도 하구요.”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인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원주에서 일본어 원어민 교사를 하고 있는 다나카 리에(田中理惠) 씨와 서울에 사는 그의 친구 가쿠 사오리(加來紗緖里)도 전시장에서 만난 일본인이다.

 

“20년 전 연변의 조선족 집에 가서 묵은 적은 있는데 그때는 그들의 과거 역사에 대해 깊은 인식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 사진 작품을 보면서 왜 그들이 중국에 정착하게 되었는지, 또한 중국에서 어떻게 조선의 독립을 위해 힘썼는지 등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 후손들이 걸어온 가시밭길의 삶을 흑백사진 속에서 발견하고 눈물이 핑 돌았다. 사진 한 장 한 장을 그냥 스쳐지나가면서 볼 수 없어서 전시장에서 2시간 째 관람 중이다” 라고 다나카 리에 씨와 가쿠 사오리 씨는 입을 모았다.

 

그런가하면 나고야에서 고국 나들이를 한 손명수 씨는 “거의 우리의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역사를 류은규 작가의 사진을 통해 다시 되새기게 되어 의미 깊었다. 백 마디 말이 아니라도 흑백 사진 속의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구체적인 인물들을 보면서 중국에서 독립운동과 그 후손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반추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지인에게 소개받아 고국방문 길에 반드시 들려보리라 다짐하고 오늘 짬을 내어 왔다.” 고 했다.

 

 

 

 

<잊혀진 흔적> 전은 오늘(31일) 저녁 6시로 1달간의 전시 일정을 마무리한다. 기자가 아쉬워하자 기획자인 도다 이쿠코(관동갤러리 관장) 씨는 “기획부터 전시까지 근 3개월을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번 전시는 거의 남편(류은규 작가)과 둘이서 작품을 선정하고, 홍보 전단을 만드는 등 하나에서 열까지 기획과 전시에 매달려야했다.”고 토로했다. 전시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야 관람만 하면 그만이지만 기획을 포함한 숱한 노고와 더불어 1달 내내 사진 전시장에 나와서 일일이 사진 설명을 하는 작업은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진작가 류은규 씨와 작가 도다 이쿠코 씨 부부는 30년 전에 중국으로 건너가 직접 조선족의 삶을 사진기에 담고 글을 써왔다. 아무도 돌보지 않던 그 시절, 사진 한 장이 주는 역사적 무게를 일찍이 간파하고 얻은 귀중한 사진들이 그들의 자료 첩에서 걸어 나와 지난 1달간 관람객들과 만나고 오늘(31일)까지 전시 일정을 마치면 다시 그들의 작업공간으로 돌아간다.

 

기자는 류은규, 도다 이쿠코 부부의 지난한 작업 끝에 조선족의 독립운동사와 삶의 애환이 묻어난 귀한 사진을 뒤늦게 찾아가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감상하면서 이 귀한 사진들을 상설 전시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3.1절 기념 100주년 전시’라고는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만주일대의 독립운동사를 알리는 사진전이 1달로 막을 내린다는 것은 너무 아쉬운 일이다.

 

*전시장소 :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B동 전시장, 오늘(31일) 저녁 6시까지

*문의 : 032-760-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