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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 그리고 행사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주모자는 김구응 의사 모자(母子)

아우내 4.1문화제의 기념강연회 열려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3.1혁명 100돌 기념으로 천안역사문화연구회에서는 <아우내 4.1문화제>라는 주제로 뜻깊은 행사를 지난 3월 14일, 20일, 31일과 4월 1일에 걸쳐 모두 4회 실시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의미 깊은 행사를 꼽는다면 3월 31일 아우내 읍내 천안동남구문화원 제2강의실에서 열린 기념강연회이다. 이날 강연회는 성공회 전해주 신부의 ‘김구응 열사와 성공회 진명학교’와 아우내 만세운동의 주모자인 김구응 의사의 손자인 김운식 씨의 ‘김구웅 선생의 아우내만세운동에서의 역할'이 중심이었다.

 

기자는 그동안 아우내 만세주동자이면서도 역사의 뒤안길에 비껴나 있던 김구응 의사와 그의 노모인 최정철 지사의 증손자인 김운식 선생을 여러번 만나 대담한 적이 있다. 31일 열린 기념강연회에 연사로 나섰던 김운식 선생과 어제(2일), 전화 대담으로 ‘김구응 선생의 아우내만세운동에서의 역할’과 함께 이날 함께 발표한 전해주 성공회 신부의 내용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천안 만세운동의 주동자였던 김구응 의사(김운식 선생의 할아버지)의 기록은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의 기록에 분명히 나옵니다. 임시정부 대통령을 지낸 백암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 지혈사》에 따르면 ‘4월 1일 천안군 인사들이 병천시장에서 시위운동을 벌이자 왜병이 시위행렬의 기수(旗手)를 찌르려하자 기수는 맨손으로 총검에 대항하여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왜병은 그의 배를 찔러 죽였다.

 

주모자 김구응이 왜경에 항론하니 논리적으로 궁하여 답변을 못하고 말문이 막히자 왜경이 총검으로 스스로를 찌를 듯하더니 돌연 김구응을 향해 총을 쏘아 죽이고 머리를 부수고 온몸을 난자했다. 그의 어머니가 시체를 안고 기절하니 왜경은 노모(최정철지사, 건국훈장 애국장)마저 찔러죽였다.(1920.12.30.) 남만성 옮김 199.2.1)’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는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난 그 해 아우내 지역의 가장 최초의 기록입니다.”

 

김운식 선생은 할아버지 김구응 의사가 아우내장터에서 순국의 길을 걷게된 사실을 역사학자 박은식 선생의 기록으로 들어 발표했다. 또한 민족대표 33인의 한분이자 상해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이었던 김병조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사략》을 인용하여 할아버지 김구응 의사와 김 의사의 어머니 최정철 의사(김운식 선생의 증조할머니)의 만세운동 당시의 상세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김구응 의사는 한학과 신학문을 겸비한 교육자로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진명학교 교사로 활약했다. 이 보다 앞서 김구응 의사는 병천면 가전리에 청신의숙(淸新義塾)이란 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감리교에서 운영하는 근대식학교인 장명학교(長命學校)를 거쳐 성공회의 진명학교에서 3.1만세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던 점 등을 들어 할아버지 김구응 의사와 증조 할머니 최정철 지사에 대한 역할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이에 앞서 성공회의 전해주 신부는 ‘김구응 선생의 아우내 만세운동에서의 역할’이란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 주제는 전해주 신부가 2006년 석사논문으로 쓴 <성공회 병천교회의 3·1 아우내 만세운동에 대한 기여> (전해주. 2006. 성공회대학 석사논문)를 중심으로 발표했다. 전해주 신부는 특히 ‘유관순 열사 중심의 아우내만세운동에 대한 반박’ 이라는 자료에서 “유관순처럼 방대한 재판 기록이 있는 사람에 대한 평가는 지나칠이 만큼 부각되고 있지만 김구응 의사와 그의 어머니 최정철 지사처럼 현장에서 순국의 길을 걸은 독립운동가에대한 적절한 평가는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관순 열사의 부각은 광복 뒤에 천안지역 출신이면서 아우내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 가운데 하나인 조인원의 아들이기도 한 독립운동가 조병옥 박사(1894 ~ 1960)가 대한민국정부수립에 입각함으로써 이 지역 만세운동이 새로운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조 박사는 대한민국정부수립(1948)과 함께 경무장관, 대통령특사, 유엔 한국대표 등을 겸직하면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과 민족적 구심점을 찾기에 고심하다가 같은 동네의 유관순을 생각해내고 그를 한국의 잔다크로 부각시키는 일에 앞장섰다고 전해주 신부는 이날 발표에서 말했다.

 

‘유관순 알리기’의 정점은 유관순 영화의 등장이며 이는 볼거리가 없던 당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유관순 열사는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고(실제 주동자인 김구응 의사는 1977년이 되어서야 대통령 표창, 1991년 애국장) 계속해서 아우내 땅에는 유관순을 기념하기 위한 각종 사업들이 줄을 이었다. 그 결과 유관순 기념교회 건립(1967), 추모각과 봉화탑 건립(1972), 유관순 열사 동상 건립(1983), 유관순 생가 복원(1991), 유관순 기념관 건립(2003) 등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이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올해는 특별법을 만들어 유관순 열사를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추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이는 아우내장터의 선구자이자 주모자인 김구응 의사 보다도 높은 서훈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논문을 쓴 전해주 신부나 김구응 의사의 손자인 김운식 선생은 이번 발표가 유관순 열사를 폄훼(貶毁, 남을 깎아 내려 헐뜯음)하고자 함이 아니요,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함임을 이해해 달라고 했다. <아우내 4.1문화제>의 한 고리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전해주 성공회 신부와 김구응 의사의 손자인 김운식 선생의 발표와 호서대 이기영 교수, 제일고 심우근 선생의 공연도 이어졌다. 200여명의 참석자들은 기념강연과 공연 뒤에 김구응, 최정철 지사의 무덤에서 시작하여 아우내장터 까지 행군을 하면서 선열들의 뜨거운 애국정신을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