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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세상사는 늘 양면성이 있는 걸까?

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2)
2월 22일 금요일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인천공항 제2터미널을 낮 1시 20분에 출발한 비행기에는 승객이 꽉 차지는 않았다. 좌석을 둘러보니 빈자리가 많이 보였다. 아마도 인도와 우리나라와는 아직은 교역이 활발하지 않은가 보다.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많지 않은 것 같고. 비행기는 8시간을 서쪽으로 날아가 인도의 서울 델리공항에 저녁 무렵에 도착했다. 한국과 델리와 시차는 3시간 30분.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는 저녁 6시 무렵이다. 해는 지고 있었고 사방은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나는 짐을 따로 부치지 않았기 때문에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도착비자를 신청하였다. 작년 10월 이전에는 인도 비자를 받으려면 한국에서 여행사를 통하여 신청하고 수수료가 20만 원 이상이나 들었다. 그런데 인도와 비자 협정이 개정되어 이제는 인도의 공항에 도착한 뒤에 도착비자를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비자신청서 양식을 내려 받아 미리 작성하여 왔기 때문에 비자수수료 2,000루피(한화로는 35,000원 정도)를 신용카드로 결제하고 쉽게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비자를 받고서 입국장으로 나오다가 환전소를 발견하고 달러 200불을 인도 루피로 바꾸었다. 큰돈과 작은 돈으로 섞어서 환전하였다.

 

다람살라로 가는 국내선 비행기는 다음날 아침 6시 30분 출발이어서 나는 인터넷으로 국내선 터미널 바로 앞에 있는 공항호텔(Airport Hotel)에 1박을 예약해 두었다. 예약을 확인하면서 호텔에서 보내온 전자 메일을 읽어보니 호텔 직원이 친절하게도 마중 나오는데, 무료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내 이름을 영어로 쓴 작은 플래카드를 들고 키가 작고 거무죽죽한 인도 사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가 보니 기사가 앉아 있는 미니밴 한 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호텔 손님인 나를 마중하기 위하여 사람 두 명과 차량 한 대가 동원된 것이다. 왠지 환대받는 기분이었다.

 

입국장에서 호텔까지는 가까운 거리인데 아마도 퇴근 시간인지 차량이 많아서 20분 정도 걸렸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마중 나온 남자와 몇 마디 영어로 대화를 시도하였다. 인도 영어는 알아듣기 힘들지만 겨우 겨우 소통이 되었다. 그는 아이가 셋 있는 평범한 인도 시민이었다.

 

내가 만나려고 하는 달라이 라마에 대해서 물어보니 잘 모르는 듯했다. 다람살라에 가보았느냐고 물었더니 안 가보았단다.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되었다. 평범한 소시민인 그가 인도 독립의 영웅인 간디에 대해서 모른다면 이상하지만 인도 변방 작은 도시에 살고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를 모른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허름한 공항호텔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서 팁을 주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간 망설였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확인서에는 ‘무료 교통 제공’ complimentary transportation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나를 공항에 나와 환영하고 또 차를 운전한 두 사람은 분명히 팁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마중 나온 사람이 세 아이가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또한 우리나라가 인도에 비하면 선진국인데 조금은 너그러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두 사람에게 각각 500루피, 우리 돈으로는 8,000원 정도를 주었다. 두 사람은 매우 정중하게 고맙다고 영어로 말했다.

 

나는 기분이 좋았으며 팁을 잘 주었다고 생각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인도에서 건설노동자가 하루에 받는 일당이 400루피라고 하니, 그들은 매우 관대한 팁을 받은 셈이다. 내가 만일 건설노동자의 하루 일당을 미리 알았더라면 500루피 대신 200루피 정도의 팁을 주었을 것이나 아깝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참고로 내가 묵은 호텔의 하루 숙박료는 3,100루피, 우리 돈으로 50,000원이었다.

 

호텔방에 들어가 짐을 내려놓고 살펴보니 호텔에 딸린 식당이 있기는 했지만 매우 초라하고 일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서 저녁밥을 사 먹기로 결정을 하였다. 호텔은 국내선 터미널에서 길 건너편에 있었기 때문에 혼자서 터미널로 걸어가 보았다. 김포공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작은 공항이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눈에 익은 KFC 간판이 보였다. 간단히 햄버거로 저녁 식사를 때웠다. 내일 아침에 국내선을 탈 항공사 (SpiceJet) 출입구를 확인해 두고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에 돌아오니 시간은 아직 밤 9시도 안 되었다. TV가 있기는 해도 인도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고. 호텔 내에서 와이파이가 무료로 사용가능하였다.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다음에서 인도에 관한 한국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내가 서울을 떠난 바로 그날, 한국을 국빈 방문 중인 인도의 모디 총리가 서울에서 큰 상을 받았다고 한다. 모디 총리는 2019년 2월 22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서울평화상 시상식에서 귄이혁 서울평화상 문화재단 이사장으로부터 서울평화상을 받았다. 서울평화상 문화재단은 2018년 10월 “모디노믹스(모디 총리의 경제 정책)을 통해 인도와 세계의 경제 성장에 이바지하고, 빈민과 부유한 사람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격차를 줄였다.”며 수상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2월 22일 발표한 공동성명에서 “모디 총리는 구자라트 주지사 시절 발생한 수천 명의 무슬림 학살을 방조해 ‘학살자’라는 비판을 받았다.”며 “모디 정부의 탄압은 무슬림에만 국한되지 않고, 카스트 제도의 피해자인 달릿과 인권활동가 및 노동조합도 탄압의 대상이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서 “이미 작년 10월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모디 총리에게 평화상을 주는 것은 전두환에게 상을 주는 것과 다름없음을 지적하며 이를 취소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지만, 그럼에도 모디 총리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에 참담함을 느낀다.”고 했다.

 

세상사가 늘 그러하듯이, 모디 총리도 양면성을 지녔나 보다. 그런데 모디 총리는 인도에 돌아와서 2월 24일에 서울평화상 상금 20만 달러 (약 2억2천만 원)을 갠지스강 정화사업에 기부했다고 한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 관해서도 검색해 보았다. 델리는 구시가지이고 남쪽에는 관공서와 부자들의 주거지가 있는 뉴델리가 있다. 델리는 인도 여러 왕조의 수도이었는데, 뉴델리는 말하자면 신도시로서 1912년 이후 인도의 서울이 되었다고 한다. 2017년 기준 세계 대도시 인구 순위를 검색해 보니 세계 최대의 도시는 상하이로서 인구는 2,400만 명이다. 델리의 인구수는 1,100만으로서 세계 제14위를 차지하고 있다. 참고로 서울의 인구수는 1,029만 명으로 세계 17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