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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후손에게 듣는 이야기

김귀남 여성독립운동가 외손녀로부터 받은 편지-2

유품을 기증한 목포정명여중고 기념관과 영암 무덤을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4월 3일 수요일, 서울에서 이른 새벽부터 나서서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중학교 박형종 교장, 고등학교 정종집 교장)를 찾은 시각은 10시 40분으로 이곳은 김귀남 지사가 다니던 학교이다. 이날 이곳에 함께 한 이는 김귀남 지사의 외손녀인 문지연 씨와 작은 아버지 문홍식 선생이었다.

 

KTX목포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 거리에 있는 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교문에는 4.8만세운동 100주년 ‘제19회 4.8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라는 글귀가 적힌 펼침막이 높이 걸려있었다. 이날은 미세먼지가 없어 유독 하늘이 높고 푸르렀다. 교문 옆에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세운 ‘정명여학교 3.1운동 만세 시위지·학생운동지’라는 커다란 선 간판이 놓여 있어 당시 목포지역 만세운동의 열기를 느끼게 했다.

 

학교 방문에 앞서 목포정명여자중학교 박형종 교장 선생님께 시간 약속을 미리 해 놓은 터라 교장실에는 박형종 교장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 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며 외손녀 문지연 씨가 “유품을 잘 관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외할머니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비록 100년 전 일이기는 해도 이 학교 학생들이 선배들의 독립정신을 이어가는 일에 앞장섰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이어 우리는 100년 전 목포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전신) 학생들의 4.8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박형종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는 1919년 4월 8일 만세운동과 1921년 11월 14일, 그리고 1929년 11월 광주학생독립운동 때에 대대적인 학생들의 참여가 있었습니다. 특히 1983년 2월, 중학교 교실 보수작업 시에 천장에서 한 뭉치의 독립운동자료가 나와 세상을 놀라게 했지요. 그 자료들은 기념관에 모두 전시중입니다. ”라고 했다.

 

천장에서 한 보따리 쏟아져 나온 독립운동 자료 속 인물 가운데 곽희주, 김나열, 김옥실, 박복술, 박음전, 이남순, 주유금 지사는 2012년 8월 15일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다. 한 학교에서 7명이 한꺼번에 서훈을 받은 일은 드문 일이다. 그러나 이들 보다 앞서 서훈을 받은 이가 있다. 바로 김귀남 (1995년 대통령표창) 지사이다. 김귀남 지사는 1921년 11월 14일, 워싱턴 군비감축회의에서 거론될 한국 독립문제에 대한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세계만방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천귀례, 곽희주 등 10여명의 학생들과 사립영흥학교 학생들이 힘을 합쳐 함께 만세시위를 펼치다가 일경에 잡혀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우리는 김귀남 지사를 포함한 이 학교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나눈 뒤 곧바로 교장실을 나와 ‘100주년기념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념관으로 쓰는 이 건물은 1912년에 지어진 것으로 목포에 들어선 최초의 서양식 석조 건축물이다. 2001년 내부 공사를 마치고 현재는 ‘100주년기념관’으로 김귀남 지사의 유품 등을 비롯한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모아 전시 중이다.

 

 

 

 

“이것은 외할머니(김귀남 지사)가 표창장과 함께 선물로 받은 놋그릇 세트입니다. 기미년 만세운동에 헌신하신 공을 인정받아 1949년(단기4282), 목포시(당시 木浦府)로부터 받은 것입니다만 외할머니는 이 놋그릇을 쓰시지 않고 소중히 보관하셨습니다.”

 

김귀남 지사의 외손녀인 문지연 씨는 기념관 중앙에 진열되어 있는 외할머니의 유품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지난해 가족회의 끝에 출신학교인 목포정명여학교(현 목포정명여중고)에 기증한 유품들은 깔끔한 유리 진열장 안에 정리되어 있었다.

 

유품 가운데는 사립배화여학교 시절의 졸업증서와 우등상장,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 시절의 상장과 졸업증서는 물론이고 만세운동으로 퇴학당해 졸업장이 없는 목포정명여자중고등학교 제1호 명예졸업장(2001년), 그리고 손수 한 땀 한 땀 수놓은 수예품 등 귀한 유품들이 살아생전 굴곡진 역사를 보여주는 듯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일제강점기 학교를 다닌 김귀남 지사의 졸업장에는 단기나 서기가 아닌 일본의 연호로 표기 되어 있고 졸업장이나 상장 등의 발행인이 일본인으로 되어 있어 당시 조선이 일제치하였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김귀남 지사가 졸업한 경성제일공립고등여학교 졸업장의 경우도 대정(大正 15년, 1926) 연도 발행으로 교장 이름이 오가타 도모스케(尾形友助)였다. 졸업장 한 장에서도 일제침략의 뼈저린 상황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김귀남 지사 후손들은 출신학교에 기증하여 후학들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100주년기념관’을 가기 위해 교장실을 나올 무렵 필자가 2012년에 이 학교에서 만나뵈었던 당시 정문주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일행을 보기 위해 단걸음에 달려와서 함께 '100주년기념관'으로 향했다. 필자는 2012년에 이곳을 방문하여 이 학교 출신 여성독립운동가인 김나열 지사 등 7명을 취재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3권)에 실은 적이 있다. '100주년기념관'에서 김귀남 지사의 유품을 둘러보고 우리는 유달산으로 향했다. 유달산에 있는 김귀남 지사 등 독립운동가 추모탑을 보기 위해서였다. 정식 이름은 ‘3.1운동탑’으로 유달산 중턱에 1983년에 세운 탑이었다. (목포시 죽교동 유달산 체육공원 내) 탑으로 올라가는 길은 개나리와 흰목련꽃이 유달산을 물들이고 있었다.

 

탑에는 3.1독립운동 목포열사라고 새겨져 있었으며 강석봉, 정우영 지사 등의 남성들과 함께 김귀남(김영애로 새겨짐) 지사를 비롯하여 곽희주, 이남순, 박음전, 주유금 지사 등 목포정명여학교 출신의 독립유공자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오전 10시 40분, 목포정명여중고를 방문하여 ‘100주년기념관’과 목포 유달산의 3.1운동탑을 둘러볼 때까지 목포정명여자중학교의 박형종 교장 선생님은 직접 차를 운전하여 교통편이 불편한 우리 일행을 안내해주었다. 목포만세운동을 선도한 유서 깊은 학교의 교장 선생님답게 그 자부심과 열정 넘치는 모습이 100년 전 정명여학교를 이끈 선생님들을 떠올리게 해 흐뭇했다.

 

 

 

 

 

이어 마지막 여정인 김귀남 지사가 잠들어 계신 영암으로 향했다. 성묘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라 우리는 목포역에서 영암의 무덤을 거쳐 나주까지 함께할 택시를 전세 내었다. 차창 가에 펼쳐지는 진달래, 개나리, 목련, 벚꽃의 향연은 봄이 무르익어 가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목포에도 미세먼지가 끼는 날은 서울과 다름없지만 우리가 영암을 향해 가던 날은 마침 미세먼지가 걷힌 날이라 더없이 화창하고 맑은 날이었다. 김귀남 지사의 무덤은 월출산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김귀남 지사는 교토 동지사 대학 유학시절 만난 남편 서인식 교수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남편은 북한의 형을 만나러 가서 남하하지 못했고, 외아들(서정규)은 20대에 요절하는 불운을 겪었다. 남은 딸(서혜경)의 가족과 평생을 지내다가 1990년, 90세의 나이로 숨졌다.

 

한 점 혈육이었던 딸 역시 한 달 뒤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천주교 신자였던 모녀(김귀남 지사와 딸 서혜경)는 경기도 광탄에 있는 '바다의 별 천주교 불광동 성당 공동묘지'에 함께 묻혔다. 이곳에서 27년 간 있다가 재작년 이곳 영암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김귀남 지사가 잠들어 있는 영암읍 농덕리 산 4-2번지는 숨진 딸의 시댁 선산이지만 딸의 시댁 문중에서 모녀가 함께 이곳에서 영면할 수 있도록 유택을 마련해주어 현재 이곳에 영면해 있다. 김귀남 지사의 경우 국립현충원에 모실 수 있지만 한 점 혈육 따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사위인 문영식 선생 등 문중에서 이곳에 모시게 되었다고 했다.

 

봄 진달래가 곱게 핀 무덤은 2차선 도로에서 5분 정도 올라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외롭지 않도록 따님인 서혜경 씨의 무덤을 비롯하여 마음씨 고운 사돈 일가와 함께 소나무향기가 오롯한 곳에서 잠들고 계신 김귀남 지사 무덤에 묵념의 예를 갖췄다.

 

김귀남 지사 무덤 표지석 바로 곁에는 필자가 김귀남 지사를 위해 쓴 헌시(獻詩) ‘유달산 묏마루에 태극기 높이 꽂은 “김귀남”’이 까만 빗돌에 새겨져 있었다.

 

<앞 줄임>

항구의 봄바람

머지않아 불어오리니

삼천리 금수강산에 불어오리니

 

동무들아

유달산 높은 곳에 태극기 꽂자

<뒷 줄임>

 

선산을 내려오면서 솔숲 사이로 불어오던 바람 한 자락이 볼을 스쳤다. 100년 전 목포정명여학교의 어린 여학생들의 함성이 솔바람소리 속에 들리는 듯했다. 그 한가운데 김귀남 지사가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