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5 (목)

  • 흐림동두천 14.8℃
  • 흐림강릉 12.2℃
  • 흐림서울 15.9℃
  • 박무대전 16.4℃
  • 흐림대구 14.2℃
  • 흐림울산 13.3℃
  • 박무광주 14.5℃
  • 흐림부산 14.9℃
  • 흐림고창 13.3℃
  • 박무제주 14.4℃
  • 구름많음강화 14.9℃
  • 흐림보은 16.2℃
  • 흐림금산 15.2℃
  • 흐림강진군 14.4℃
  • 흐림경주시 13.3℃
  • 흐림거제 15.9℃
기상청 제공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단군왕검’이 곧 '선인벅수(仙人法首)‘, 장승과는 달라

'지하(地下)'가 '여장군(女將軍)'이라면, '천하(天下)'는 '남장군(男將軍)'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벅수(法首)‘라는 것은 '불교(佛敎)’의 근본이 되는 《화엄경(華嚴經)》에 '법수보살(法首菩薩)‘로 표현이 되어 있어, '수행자(修行者)’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 때 일십당 이맥(李陌)이 목숨을 걸고 쓴 상고시대의 역사책, 《태백일사(太白逸史, 1520)》의 개국신화에는 “예부터, 선인(仙人)이 태어나면 봉황이 나타나고, 봉황이 모여 사는 곳과 벅수(法首)라는 선인들이 살고 있는 곳을 백아강(白牙岡)이라 하였다. 벅수선인(法首仙人)들이 살고 있는 백아강으로 가는 길에는 벅수교(法首橋)를 지나야 하며, 벅수교에서는 외부에서 들어올 수 있는 모든 악귀(惡鬼)와 유행병들을 선인의 초자연적인 힘으로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다.”라고 기록하였다.

 

백아강(白牙岡)이란 왕검성(王儉城)으로 추측이 되며, 몽골의 셀렝게(Selenge강)가에는 고을리(고구려)라는 옛 성터가 남아있고, 그곳에는 주몽(朱蒙)으로 알려진, 고을리 칸(고구려왕)으로 불리는 석인상(훈누 촐로)도 남아 있다. 따라서 벅수(法首)란 선인(仙人)을 뜻하며, 백아강에는 선인 왕검(王儉)이 살았고, ‘단군왕검’이 곧 '선인벅수(仙人法首)‘임을 뜻한다.​

 

《태백일사》의 삼신오제본기(三神五帝本紀)에는 하늘아래 <동서남북과 가운데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이라 하고, 지하의 다섯 방향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사람을 지하여장군(地下大將軍)이라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벅수(法首)를 뜻하는 것이다.​

 

서기 1500년 무렵의 조선왕조는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상고시대의 역사책들을 모두 압수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태백일사》는 빛을 보지 못하고 깊숙하게 숨겨져 왔었다. 350여년 이란 긴 세월동안 《태백일사》를 숨겨 온 '이맥'의 후손 해학 이기(李沂)에 의하여 개화기(1876- ) 때, 그의 제자들에게 공개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

 

개화기 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베끼고, 베껴 진 것을 토대로 만든 필사본(筆寫本) 《태백일사》는 1911년 일본사람 '가지마 노보루(鹿島 昇)‘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필사 된 것을 원본으로 하여, 다시 번역된 것이다. 필사본의 내용에는 필사할 때와 그 무렵의 '변화된 사회환경'과 필사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사상과 철학이 추가되고, 덧붙여지거나 보태어져 심각하게 변질되었고, 왜곡하여 오염되어 있었다. 이맥이 쓴《태백일사》라는 본디의 책(原本)은 지금 북한땅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벅수들 중에 처음으로 글씨가 새겨진 벅수는 전라북도 부안읍성 <서문안당산의 벅수>로 1689에 제작되었으며(중요민속자료 제18호), '上元周將軍(상원주장군)'과 '下元唐將軍(하원당장군)'이라고 쓰여 있다. '주장군'과 '당장군'이라는 글씨는 한때 중국을 지배한 막강한 당나라와 주나라의 장군을 표현한 것이므로 우리나라의 토박이 '벅수'라고는 할 수 없다.​

 

벅수의 가슴에 쓰인 글씨가 변화된 과정은 예부터 주로 민불(民佛) 또는 미륵(彌勒)이라고 불리던 글씨가 없는 민짜 '벅수'들이 1600년 무렵의 중반 때부터 중국을 통하여 떼를 지어 몰려오는 호귀(胡鬼)와 역병(疫病’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주로 당장군과 주장군으로 표현된 두창벅수와 축귀대장군(逐鬼大將軍)이라는 글씨가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1700~1800년 무렵에는 아미산하교(산娥眉山下橋)와 오방신장(五方神將)류를 표현하였으며 '남ㆍ여'의 구분은 없었다.

 

다만 수염이 그려져 있거나 없는 한 쌍을 나타내었으며, 수염의 표현이 없는 '벅수'가 더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덩치도 컸다. 그리고 개화기 때부터 음양의 조화[理致]를 따져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과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이 한 쌍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의 '벅수'는 음양오행설에 따라 1870년 개화기 무렵부터 남자와 여자로 구별되기 시작하였고, '天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으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벅수'의 글씨에 굳이 남ㆍ녀의 성(姓)을 구분 하지 않아도 '벅수'의 얼굴 모양과 관모 또는 수염으로 확실하게 남녀를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존여비사상에 의하여 여자들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좀 더 천박하게 표현하기 위하여 글씨를 '지하여장군'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地下女將軍'이 아닌 <'天下大將軍 婦人(夫人)'>이라고 점잖게 표현된 충청도의 양반(兩班) '벅수'도 있다. 충청도 지역의 정통 '벅수'에는 원래부터 '地下女將軍'이라는 표현이 없었다. 대부분 '地下大將軍'으로만 표현을 하였었다. 여장군으로 표현하기가 천박하고 흉(凶)하였던 모양이다. '女將軍'을 대신하여, '天下大將軍 婦人' 또는 '夫人'으로 표현한 곳도 여러 곳에서 발견 된다. 점잖은 양반들이 살고 있는 '고을' 답다.​

 

구태여 '벅수'의 얼굴 모습만 보아도 남장군과 여장군이 서로 구별이 되는 것은 물론 또 글씨까지 '女將軍'으로 쓰서 구분한다는 것은 심각한 남녀의 성차별이며, 여성의 가치를 깎아 내리려는 목적으로 표현된 행위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벅수는 꼭 남녀 한 쌍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시작된 것으로도 보인다.​

 

1890년 무렵, 외국 '선교사'들이 찍고 기록한 개화 때의 사진 속에는 경기도 이천지역에서 ‘地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이라는 한 쌍의 사진이 발견되었고, 경기도 포천 '솔모루당산'의 벅수에는 '天下女將軍'이라 쓰여진 '벅수'도 있었으며 충청도 청양에서는 '오방축귀장군 부인(五方逐鬼大將軍 婦人)'도 발견되었다. ​

 

1910년에 '일제강점기'는 시작되었고 조선총독부는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의 벅수를 <미신의 문화>로 취급을 하여, 1895년 역참제도의 폐지로,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지고 없는 장승에 '벅수'를 포함시켜 '장승'으로 부르고 쓰도록 강제로 교육시켰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12년부터 준비하고 1933년 완성하여 발표한 <조선어 철자법 통일안>의 내용에는, <장승이 '표준말'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우리 민속신앙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벅수문화'가 '미신의 문화'로 폄하되고 기록되어 그때부터 '벅수'는 '장승'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이다.​

 

1970년 무렵까지는 우리의 '정통당산'에서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將軍'이 큰 흐름이었으나 갑자기 이유없는 '地下女將軍'이라는 표현이 봇물 터지듯 전국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때에는 미신(迷信) 추방을 위한 '새마을운동'이 한창이었을 때다. ​

 

1984년에는 '유교(儒敎)‘ 사상이 강하게 남아있는 "마을제사의식(洞祭)’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문화공보부)>에 출품하기 위하여, '유교식'이던 정통 '제사의식'의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흥미만을 느낄 수 있고 재미와 볼거리만을 제공하기 위하여, 신성하여야 할 '마을제사의식'에 천박하고 난잡한 행위들을 창작하여 첨가(添加)한 것들이 연출되어 '마을제사'(洞祭)의 전통과 품위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장승의 합궁(合宮)>이라는 표현으로 장승이 성교(性交)하는 장면을 연출하여 저질스러운 호들갑을 떨었다. 조상의 모습을 '신(祖上神)‘으로 만들어 세워 놓고 그 후손들이 모여 강제로 조상을 성교하게 하고 구경하며 즐기는 모습들이 꼴불견이었다. 그리고 '대학'들은 민주화 운동을 핑계로 내세워 입을 찢어지게 벌리고 악을 쓰는 모습이, 마치 하품을 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시국(時局)장승?'세우기가 큰 행사였고, 유행한 적도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 공주시 탄천면 소라실 '장승치기'. 검색 참고).​

 

'여장군'은 너무나 잘못된 표현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정말로 여자들을 성곽(城郭)의 문을 지키는 지킴이, 또는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혹은 절집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문지기로 여자들을 길가에 내세워 놓고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꼭 '女將軍'으로 표현하려면 '大將軍'은 '男將軍'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 옳다. 이명박은 '大통령'이고 박근혜는 '女통령'으로 표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현대를 잘못 살아가는 남존여비 사상에 빠진 '정신병자' 같은 판단을 하고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의 짓거리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

 

국립민속박물관이 조사를 하여 1988년부터 1997년 까지 발행된 우리나라 전 지역의 "OO지방 장승ㆍ솟대 신앙"이라는 책들에는 '벅수'가 '장승'으로 단호(斷乎)하게 표현되어 있다. '장승'이란 표현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왜곡하고 꾸며서 만들어 낸 억지의 '표준말'이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판소리’들의 노랫말에는 장승과 벅수는 확실하게 나누어져 있다.

 

변강쇠타령과 적벽가에는 ‘댱승’(장승)이 그려져 있고, ‘박타령’(흥부와 놀부전)에는 ‘법슈’(벅수)가 확실하게 표현되어 있다. 지금 우리의 민속학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나?(네이버 블로그; '판소리' 노랫말 속의 '장승'과 '벅수' 검색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