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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놀이문화'로 타락해 버린 '소라실의 장승치기'

마을제사를 음사로 만들어가는 정부는 각성하라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4]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충청남도, 공주시 탄천면 송학리 소라실. 《여지도서(輿地圖書, 1757-1765)》와 《충청도읍지(忠清道邑誌, 1776-1800)》에 따르면, 송학리는 반탄면의 ‘송곡(松谷)’ 또는 ‘학동(鶴洞)’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일제강점기 때인 1923년에 발행된 《공산지(公山誌)》에는 “송곡의 ‘松’자와 학동의 ‘鶴’자를 합하여 ‘송학리(松鶴里)’라고 표현하였으며, 학동, 선덕동, 학림동, 송곡리, 송서리, 토옥동’이 통합되여 ‘송학리’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소라실'의 말밑(어원)은 예부터 주변의 산이 마을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 ‘소라껍질’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는 뜻이다.

 

'소라실'(송학리)에서는 오래 전승되어온 마을제사(洞祭)의식을, 1984년부터 "장승치기"라는 엉뚱한 이름을 만들어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8호>다. '장승치기'의 ‘장승(長丞)’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의 벅수문화(法首文化)를 폄하하고, 왜곡을 하여 변질된 것이다. ​

 

그리고 "장승치기"의 '치기'란 '들머리'또는 '첫머리'를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장승치기'라 하면 마을의 ‘어귀’ 곧 드나드는 목의 첫머리에 세워져, '큰길'(官路, 國道)을 전문으로 안내하는 기능의 장승을 세운 곳, 곧 '장승배기'를 뜻하는 표현이다. 소라실 사람들은 '장승치기'를 우리의 '놀이문화'와 연관시켜 딱지치기, 구슬치기, 비석치기와 같은 '놀이문화'로 잘못 알고 있다. ​

 

본디 장승(長栍)이란 것은 신라시대(487년) 때 도입된 '역참(驛站)제도'의 한 부분으로, 관로(官路)나 국도(國道)를 전문으로 안내하던 기능의 '푯말'이며, '이정표'를 뜻한다. 그러나 장승은 1895년 '역참제도'의 폐지로 임무는 끝이 나고, 우리땅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장승배기'란 장승을 세웠던 자리, 혹은 장승이 박혀 있던 곳을 말한다. 장승이 우리땅에서 사라진 15년 이후에 ‘일제강점기’는 시작되었다.​

 

하지만, ‘소라실'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서낭(法首)'은 '東方天元逐鬼大將軍(동방천원축귀대장군)'과, '西方地下逐鬼女將軍(서방지하축귀여장군, 1983년까지는 “西方地元逐鬼大將軍”)'이라는 글자로 표현되고 있으며, '벅수(法首) 혹은 '서낭'이라고 불러야 옳은 표현이다.

 

 

 

소라실의 마을제사는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 하면서 부터 많은 것이 변질되고 왜곡되기 시작 하였다. 그 본보기가 '女將軍(여장군)'이라는 표현이다. 본디 충청도의 벅수에서는 '女將軍'이란 표현은 없었다. 대부분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아니면 '천하대장군 부인(天下大將軍 婦人)' 혹은 '부인(夫人)'이라는 표현을 썼었다. 그런데 소라실은 도드라지게 1984년부터 '女將軍'이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충청도에서도 1985년부터 '地下女將軍'이라는 표현이 여러 곳에서 나타나기 시작 하였다.

 

소라실의 '장승치기'는 1984년 <제25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문화공보부 주최)“에 출품하기 위하여, 여러 번의 이야기만들기(스토리텔링)를 거쳐 흥을 느낄 수 있는 재미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원래부터 엄숙하기만 하였던 유교식(儒敎式)의 제사의식을 모두 지워 버리고, 근본을 알 수 없는 '길놀이'와 '채단(采緞)의식'과 '장승합궁(合宮, 장승의 성교)이라는 것을 창작해냈다. 그 덕분에 ‘소라실 장승치기’는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그 이후부터 소라실의 '장승치기'는 볼거리만을 제공하는 ‘놀이문화’로 타락하였고, 완벽하게 변질되었다. (소라실 '마을제사' 기능보유자 고 박영혁 선생과 대담, 2008).​

 

 

그리고 본디의 마을제사는 마을의 공동체를 이루는 제사의식으로 엄숙하고 조용하게 치루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제는 마을제사가 저급한 놀이문화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유행하는 장승문화공원과, 계절 따라 벌어지는 '장승축제'라는 '놀이문화'가 그 원인이다.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공 들여서 깎아 세워 놓고, 우리 조상의 모습을 뜻하는 수호신을 그의 후손들이 강제로 성교(性交)까지 시키는 지나친 장난질은 하지 말아야 한다. ​

 

분명히 말하건데 ‘장승’은 길을 알려주는 푯말이었고 이정표였지만 ‘벅수’는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을 만들어 세워 놓고, 마을 사람들(후손)에 의하여 혼례를 하며, 합궁[性交]을 연출하고 즐긴다는 것은, 한마디로 '미친짓'이다. 하루빨리 본디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옛 방식의 전통을 되찾아야만 한다. ​

 

조선시대는 비(非)유교적이고 타락한 마을제사 의식은 음사(淫祀)라 하여 나라에서 엄격하게 규제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이없게도 정부('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를 주최하여  우리의 민속문화를 왜곡하고 변질시키기에 앞장서고 있다. (음사(淫祀) : 부정한 귀신에게 지내는 제사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