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티베트, 중국에 항거해 지난해까지 154명 분신

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10)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중국이 1950년에 티베트를 합병한 이후 발포ㆍ고문ㆍ아사ㆍ처형ㆍ수용소에서의 강제 노동 등으로 죽은 티베트인은 모두 1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자료마다 피해자의 수치가 약간 다른데, 이 수치는 다람살라 사원 안에 있는 티베트박물관 전시물에서 필자가 직접 확인한 숫자다. 티베트인은 모두 60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므로 전체 인구의 1/5 정도가 죽은 것이다. 티베트 사람들이 중국을 싫어하는 까닭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겠다.

 

중국에는 시짱(西藏),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 광시좡족(廣西壯族), 닝샤후이족(寧夏回族), 네이멍구(內蒙古) 등 5개 자치구가 있고,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등 30개의 자치주가 있다. 중국 정부는 55개 소수 민족에 대해 우대 정책으로 불만을 억누르는 한편, 분리 독립 운동은 철저히 탄압하는 ‘당근과 채찍’ 정책을 써왔다.

 

우선 소수민족에게는 독자적인 언어와 종교, 문화를 인정하는 자치권을 부여했다. 한족은 엄격한 ‘1가정 1자녀’ 원칙이 적용되었지만 소수 민족은 2명까지, 경우에 따라서는 3~4명의 자녀도 출산할 수 있었다. (1979년에 도입된 1자녀 정책은 36년 동안 시행되다가 2015년에 폐지되었다.) 보통 700점 만점인 대학입학 시험에서도 소수민족은 10~15점의 가산점을 받는다. 취업을 할 때도 일부 조건이 완화돼 유리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운동에 대해서는 철저히 탄압하는 채찍 정책을 사용한다. 티베트에서 시민들의 봉기가 일어나면 곧바로 탱크를 앞세운 군대를 투입하여 강경 진압했다. 중국 정부는 장기적으로 소수민족을 한족(漢族)으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소수민족 자치 구역에서 한족 비율을 자연스럽게 늘림으로써 한족 문화에 동화되도록 하는 정책이다.

 

자치주의 소수민족 인구 비율이 30% 이내로 떨어지면 자치를 취소시킬 수 있다. 중국 정부는 2007년 9월 티베트의 전생활불(轉生活佛, 달라이 라마)도 직접 관리하겠다며 ‘티베트 전생활불의 계승 및 관리 방법’까지 제정했다. 티베트의 지도자들인 승려들을 통제하겠다는 정책이다.

 

1959년 이후 중국의 압제를 피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서 티베트를 떠난 망명자들은 13만 명이나 된다. 망명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아직도 인도와 네팔, 그리고 부탄으로 망명객이 이어지고 있다. 소수의 티베트인은 미국, 스위스, 카나다, 오스트렐리아, 벨기에, 프랑스 등에 살면서 티베트 독립 운동을 지지하고 있다. 티베트 사람들이 나라를 빼앗긴 지 올해로 69년이나 된다. 우리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고통을 받은 것이 35년이었으니, 그들의 고통도 가히 짐작할 만 한 일이다.

 

달라이 라마의 법회에 참석한 그날 오후에, 나는 사람들이 없을 때에 사원을 천천히 둘러보고 싶어서 다시 사원에 갔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나는 외국인을 발견하고서 말을 걸었다. 그는 영국인이었는데, 달라이 라마의 제자로서 다람살라에 20년이나 살았다고 한다. 내가 오전에 법회에 참석했다고 말하자 자기도 달라이 라마의 설법을 들었다고 한다.

 

내가 물었다. “나는 티베트어를 몰라서 그러는데, 달라이 라마가 무어라고 말했는가?” 그가 대답했다. “그가 말하는 핵심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라는 것이다. 심지어는 적(敵)에게도 친절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적은 없다. 유일한 적이 있다면 그것은 너의 마음이다.” 매우 간명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대답이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오른 쪽 벽에 커다란 조각이 새겨져 있고 앞쪽에 조형물도 있다. 아래쪽에 새겨진 설명문을 읽어보니 벽화는 중국의 압제에 항거한 티베트 승려들의 분신자살을 나타내고 있다. 분신이란 자기의 육체를 태우는 가장 극단적인 저항 방법이며, 약자가 강자에게 저항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2009년 2월에 티베트 암도에 위치한 끼르띠 사원에서 중국 당국에 의해 기도 의식이 취소되자 20대의 따뻬 스님이 거리에서 최초로 분신을 결행했다. 그 뒤 중국의 탄압에 항의하는 분신이 계속되고 있는데, 중국의 언론 통제로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고 있다. ‘티베트에 자유를 달라’, 또는 ‘달라이 라마 귀국을 허용하라’고 외치면서 2018년 12월까지 모두 154명이 분신을 했고 이중에서 132명이 숨졌다.

 

2012년 한 해에만 85명이 분신을 했고, 최근인 2017년에 6명 그리고 지난해(2018)에는 3명이 분신했지만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분신 희생자는 20대가 가장 많고 심지어는 15살의 어린 스님도 있었다. 승려만 분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중국의 탄압에 저항하여 주부, 작가, 학생, 유목민 등 다양한 계층의 티베트인들이 분신이라는 희생을 감행하였다.

 

분신은 티베트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밖 인도와 네팔에서도 모두 10명이 분신하였다. 다람살라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티베트 승려들 사이에 비밀 분신조 명단이 있고 그 순서대로 분신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분신 희생자는 계속 나올 것 같다. 다만 이 말의 진위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전체 분신 희생자 154명의 사진과 이름, 나이, 직업, 분신 장소 등을 아래 인터넷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분신희생자 명단 확인하기

 

분신 벽화 앞쪽에 티베트박물관이 있고 박물관 지하에 스님들의 식당이 있었다. 나는 계속 걸어 들어가서 성전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법회가 끝났기 때문에 검문은 없고 사진을 자유롭게 찍을 수 있었다. 인도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 사원을 남걀(Namgyal)사원이라고 부른다. 구글 지도에는 성전의 이름이 ‘HH The Dalai Lama’s Main Temple‘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법당을 관람하다가 확인한 사원의 정확한 이름은 ’Kalachakra Temple‘ 이다. 아마도 티베트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나 보다.

 

 

 

법당의 중심에는 부처님의 커다란 불상이 있고, 오른쪽에 머리와 손이 여러 개 그려진 불상 그림이 있고, 왼쪽에는 오른쪽 불상보다 더 머리와 손이 많이 그려진 불상 그림이 또 있었다. 나는 다른 참배객을 따라 불상 앞에서 삼배를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장로교회에 다니다가 요즘에는 성당에 나가는데, 심정적으로는 불교에 기울어져 있다. 나의 종교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천주교로 귀의한 (고) 최인호 작가가 그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자기는 불교적 기독교인이라고. 나도 그와 비슷하다고 말하고 싶다.

 

법당 앞마당은 상당히 넓은 공간이었다. 오전에는 넓은 마당에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꽉 차 있었다. 법당 안에 기도하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방석을 깔고 몇 사람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절의 법당 안에서 사람들이 방석 깔고 기도하는 모습과 똑 같았다.

 

 

 

법당 뒤편에 손으로 돌리는 커다란 원통들이 있었다. 설명문을 읽어보니 영어로는 “Wheel of time”이라고 한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우리말로는 마니차(摩尼車)라고 부른단다. 마니차는 측면에는 진언인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고 내부에는 경전이 새겨져 있다. 티베트 사람들은 마니차를 한번 회전시키면 경전을 한번 읽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망명 궁전, 쫄라캉은 사원과 인접하여 길 건너편에 있었다. 말이 궁전이지 규모는 크지 않았다. 재벌들이 많이 산다는 서울 성북동에서 볼 수 있는 큰 저택 크기였다. 달라이 라마는 수행자와 중생들을 대상으로 법당에서 설법을 펼치고, 이 설법을 듣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달라이 라마를 따라 이곳에서 수행하는 승려들은 300명쯤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