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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잘 듣고 묻고 간하는 일이 사맛의 기본

생각의 정치를 편 ‘세종의 길’ 함께 걷기 23 (사맛의 길)

[우리문화신문=김광옥 명예교수] 

 

사맛은 잘 듣고 묻는 일에서 출발한다

세종의 사맛[소통] 정신은 어떤 일에 대하서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세종은 의문을 가지고 잘 듣는[以聞] 임금이었다. ‘이문(以聞)’은 《조선왕조실록》 원문 전체 4,211건 가운데 세종 862건이다. 조선의 임금이 27명이니 세종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세종은 신하와 백성으로부터 듣고 또 들었다.

 

충녕이 세자가 될 때 태종은 신하들의 의견을 묻고 신하는 태종의 마음에 달렸다 하고, 태종은 충녕[세종]이 현명하다고 의견을 제시한다. 듣기 위해 묻고 의논하는 절차가 원만하다.

 

“태종이 말하기를, ‘그러면 경들이 마땅히 어진 이를 가리어 아뢰라.’ 하니, 여러 신하들이 함께 아뢰기를, ‘아들이나 신하를 알기는 아버지나 임금과 같은 이가 없사오니, 가리는 것이 성심(聖心)에 달렸사옵니다.’ 하였다. 태종이 말하기를, ‘충녕 대군이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비록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새워 글을 읽고, 또 정치에 대한 대체(大體)를 알아, 매양 국가에 큰 일이 생겼을 제는 의견을 내되, 모두 범상한 소견이 의외로 뛰어나며, 또 그 아들 가운데 장차 크게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충녕으로 세자를 삼고자 하노라.’하였다.” - 《세종실록》 1권 총서(總序)

이렇듯 묻고, 듣고, 의논을 거쳐 임금에 오르게 된 세종 또한 듣고 묻는 데에 적극적인 임금이 되어갔다. 묻는다는 이문(以問)은 《조선왕조실록》 전체 554건 가운데 세종 28건이다.

 

▪ 신지(新地) 구하기 : 구하기를 성심으로 하면 반드시 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은 경내의 고로인(古老人)과 일을 아는 각 사람 등에게 현상금을 걸어 묻거나 설명하여 묻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로 계획하여 널리 탐방하여서 아뢰라.(廣行咨訪以聞)’ 하였다.(《세종실록》 23/7/14)

 

이는 “지난 날 강원도의 무릉도(武陵島)를 찾으려고 할 때에 모두 말하기를, ‘있는 곳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뒤에 조민(曹敏) 등이 이를 찾아내어 상을 받았다. 요도(蓼島)에서 바라볼 때에 조민의 일을 듣고서, 역시 제 스스로 찾겠다고 희망하는 자가 간혹 있었다.”에서 보듯 새 땅인 울릉도, 독도의 확인도 지역 노인들에게서 묻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사맛은 물은 후 간(諫)하기로 이어진다

사맛은 조사 다음으로 주제에 대해 의견을 내는 것으로 이어진다. 가뭄 때문에 대언들에게 간언을 구하는 교서를 내리며 세종이 말한다.

 

▪말과 죄 : 정사의 잘못된 것과 생민의 질고를 숨김없이 다 진술하여, 내가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애휼하는 뜻에 부합하게 하라. ‘그 말이 비록 사리에 꼭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또한 죄주지는 않으리라.(言雖不中, 亦不加罪) (《세종실록》1/6/2)

 

세종은 전체적으로는 신하들의 간(諫)을 잘 들었다. 간이란 자기의 의지를 논리화하여 임금에게 의견을 제시하는 일이다. 간하기는 사대부의 업(業이)며 동시에 ‘직(職)’으로서의 의무다. 좌의정 허조(許租 1369~ 세종 21년 1439)가 한 말을 졸기를 통해 보자.

 

▪간하면 행 : 내 나이 70이 지났고, 지위가 상상(上相)에 이르렀으며, 성상의 은총을 만나, 간하면 행하시고 말하면 들어주시었으니, 죽어도 유한이 없다. (《세종실록》 21/12/28)

 

세종은 신하들에게 숨김없이 말하라고 종용한다. 세종 7년 7월 가뭄으로 세종은 마음이 아파 거처할 궁을 옮기는 문제를 상의케 하지만 수라 등 번거로운 일이 많아 이를 포기한다. 그러면서 정승·판서들에게 ‘숨김없이 죄다 말하라’고 종용한다.

 

 

▪숨김없이 말하라 : 각도의 비 내린 보고를 보니, 외방에는 비가 흡족한 듯한데, 유독 서울에만 비가 오지 않으니, 혹시 하늘이 무슨 까닭이 있어 그러함인지 모르겠다. 또 정사에도 의심스러운 일이 있었는지 두렵기도 하였다. 맹온(孟溫)의 사건으로 볼진대 여러 재상이 처음에는 모두 형조에서 계한 것이 옳다 하였는데, 대간이 상소하여 논죄한 뒤에는 또 형조가 잘못이고 대간이 옳다 하였다. 옳다 그르다 하는 것이 별로 딴 뜻은 없겠지마는, 한 사람이 옳다 하면 여럿이 따라서 옳다 하고, 한 사람이 그르다 하면 여럿이 따라서 그르다 하니, 이것은 자세히 생각하지 아니하고 뇌동(雷同, 주관 없이 남의 의견을 좇아 어울림)하는 폐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한 가지 일만 보더라도 다른 것을 알 수가 있으니, 정사에 잘못이 반드시 없다고 어찌 하겠는가. 각자 재앙을 그치게 할 도리를 힘써 생각하여 ‘숨김없이 죄다 말하라.[悉陳無隱[’(《세종실록》 7/7/7/)

 

▪ 쟁간 : 의정부와 육조의 여러 신하들에게 일러 말하기를, “금년은 여름은 가물더니 겨울은 지나치게 따뜻하다. 12월은 얼음을 저장하는 계절인데, 날씨가 따뜻함이 봄과 같아서 아직 얼음을 저장할 수 없고, 또 어제는 짙은 안개가 끼었으므로 매우 상서롭지 못하다. 가만히 생각하니, 그 허물은 실로 과인에게 있는 것으로서, 장차 재앙이 올 징조가 아닌가 두렵다. 이때에 간언(諫言)을 들어서 하늘의 꾸짖음에 대답하고자 한다. 지나간 옛날을 두루 살펴보니, 비록 태평한 시대에 있어서도 대신은 오히려 임금의 옷을 붙잡고 강력하게 간언한 자가 있었으며, 또 그 말한 바가 사람의 마음을 두렵게 하여 움직이게 함이 있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록 무사하고 평안하였고 하나, 옛날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직 과감한 말로 면전에서 쟁간(爭諫)하는 자를 보지 못하였으며, 또 말하는 것이 매우 절실 강직하지 않다.[而未見有敢言面爭者, 又其所言]’ 어째서 지금 사람은 옛사람 같지 못한가.” (《세종실록》7/12/8)

듣고, 묻고 그리고 쟁간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시대사상도 의심의 여지가 있다

이뿐이 아니라 당대에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사상인 성리학에 대해서도 간(揀) 하는 마음으로 의문이 있으면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 세종의 입장이었다.

 

▪주자의 말도 의심 : 경연에 나아갔다. 강독하다가 주문공이 옛말의 잘못을 바로잡은 대목에 이르러 말하기를, 문공은 진실로 후세 사람으로서는 논의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잘못을 바로잡은 말에도 혹 의심스러운 곳이 있다. 그리고 그 자신이 한 말도 또한 의심스러운 곳이 있다. 주자의 문인으로서 스승의 말을 취하지 않은 자가 있었던 것이니, ‘비록 주자의 말이라도 또한 다 믿을 수는 없을 듯하였다.(雖朱子之說, 疑亦不可盡信也) (《세종실록》19/10/23)

 

세종은 성리학이 기초한 시대에 주자의 말도 의심할 점이 있다고 이론을 제기했다. 시대와 사회에 맞지 않으면 새로운 논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세종의 사맛 정신은 먼저 듣고 이어 물으며 그에 따라 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심지어 한 시대 사상도 의심이 가면 논의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