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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달라이 라마와 중국이 임명한 판첸 라마

한국의 돈키호테와 다람살라 방문기 (1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의 역사는 다음과 같다.

 

제3대 달라이 라마로 알려진 소남 갸초(1543∼1588)가 몽골의 동부 튀메드부의 군주인 알탄칸(俺答汗, 1507~1582)으로부터 1577년에 초대를 받았다. 징기스칸의 17대 후손인 알탄칸은 소남 갸쵸에 대한 얘기를 듣고 깊은 신심이 일어났다. 알탄칸의 궁전에 도착했을 때 만 명이 넘는 엄청난 군중의 환영을 받았다. 소남 갸초가 몽골에 머물면서 알탄칸의 전생을 보니 쿠빌라이칸의 환생이고 자신은 쿠빌라이칸의 스승이었던 샤카 팍파였다. 과거 전생인연이 다시 스승과 제자 인연으로 돌아온 것이다.

 

알탄칸은 티베트에서 온 소남 갸초를 스승으로 받들면서 칭호를 올렸다. 그때 올린 이름이 ‘달라이 라마’이다. '바다'를 뜻하는 그의 이름 '갸초'가 몽고어로 '달라이'이고 '라마'는 티베트어로 '스승'을 뜻한다. 그러니까 해석하면 달라이 라마는 ‘바다 같은 스승’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소남 갸초는 겸손의 의미로 자신의 스승, 그리고 스승의 스승에게 1대, 2대 달라이 라마의 칭호를 봉헌하고 자신은 3대 달라이 라마가 되었다.

 

롭쌍 갸초(1617-1682)는 티베트 불교 지파 중에서 겔룩파의 지도자였다. 롭쌍 갸초는 몽고군의 힘을 빌어 라이벌인 깔마파를 물리치고 티베트를 통일하였다. 강력한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이 필요했던 그는 자신을 5대 달라이라마라고 칭하고 달라이 라마는 관음보살의 화신이라고 선포하였다. 롭쌍 갸초가 죽은 이후 환생자라고 선출된 아이가 대를 이어가고 있는데, 현재 제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쵸(1935~ )가 다람살라에서 활동하고 있다.

 

롭쌍 갸초는 겔룩파의 세력이 약했던 티베트 서부의 창 지방에서도 그의 영향력이 미치길 원했다. 그러나 창 지역은 티베트 동부의 라싸와는 거리가 멀어 직접 통치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마침 그 지역에 제1대 달라이라마로 선포된 겔룩파의 겐덴 둡빠가 창건한 타시룬포 사찰이 있었다. 롭쌍 갸초는 자신의 스승인 판첸 추키겐첸(1569∼1662)이 죽자 그의 환생자를 선정하여 타시룬포사의 법왕 곧 ‘판첸 라마’로 지정했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관음보살의 화신이듯이 판첸 라마는 아미타불의 화신이라고 선언하면서 겔룩파 시조 총카파의 또 다른 제자인 케도프제를 판첸 라마 1세로 소급하여 선포했다. 이후 판첸 라마는 겔룩파의 제2인자로서 창 지방을 맡아 통치해 왔다. 판첸 라마 역시 사후엔 환생자를 찾아 계속 계승되어 왔는데 달라이 라마와는 번갈아가며 먼저 태어난 사람이 서로 스승 역할을 하며 티베트를 이끌어 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중국의 티베트 강제 합병 후 10대 판첸 라마가 죽자 문제가 생겼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는 1995년 당시 6살이었던 '초에키 니마'가 환생자라고 밝혔으나 티베트에 어용지도자가 필요했던 중국은 그 결정을 무효로 하고 초에키 니마를 납치해 갔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기알첸 노르부'를 11대 판첸 라마라고 선언했다. (그의 부모가 모두 티벳의 중국 공산당원이었다). 물론 티벳 사람들은 아무도 그 선언을 믿지 않는다. 현재까지 초에키 니마는 행방불명인 상태이고 세계 각국의 인권단체에서는 세계 최연소 정치범인 초에키 니마의 석방을 중국 측에 요구하고 있다.

 

한편 중국이 임명한 11대 판첸 라마는 열심히 중국을 지지하고 있고 현 달라이라마는 이러한 판첸 라마를 비난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2004년 프랑스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 이후엔 더 이상 달라이 라마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발언은 자신의 사후에 판첸 라마의 예처럼 중국이 일방적으로 달라이 라마를 선출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티베트에서는 달라이 라마의 사진 대신 이미 죽은 10대 판첸 라마의 사진을 흔히 볼 수 있다. 중국은 달라이 라마 사진의 소지나 게시를 금지하고 있고, 티베트인들은 중국이 내세운 11대 판첸 라마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10대 판첸 라마의 사진을 걸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티베트는 어떻게 될까? 원래 티베트인들은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서 수렵, 벌목, 채광 같은 일들을 금기시하였기 때문에 티베트의 자연환경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중국인이 들어오자 티베트 곳곳에서 금, 석탄, 우라늄과 같은 천연 자원을 캐기 위해 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중국인들은 표범, 곰과 같은 짐승들을 남획했는데 이로 인해 개체수가 급감하여 현재는 멸종 위기로 지정되었다. 중국은 또한 핵무기 생산을 위한 기지. 핵 실험장, 그리고 핵폐기물의 저장 장소를 티베트에 만들어서 청정했던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언급했듯이 한족을 대거 티베트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원래 티베트는 높은 고원 지대이기 때문에 교통이 불편하고 외지인은 고산병 때문에 살아가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경제적 부와 기회를 찾아 많은 한족이 티베트로 이주하고 있다. 한족 이주 정책은 2006년에 중국 칭하이(靑海)성과 라싸(拉薩)를 연결하는 칭짱(靑藏)철도가 개통되면서 탄력을 받게 되었다. 칭짱 철도는 약 960㎞에 걸쳐 해발 4000m 이상 고원을 통과하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하늘의 길이라는 뜻으로 '톈루(天路)'라고 부르고 있다.

 

중국은 1979년 칭하이성 시닝(西寧)과 거얼무(格爾木)를 연결하는 철도공사에 들어가 1984년 제1기 공정을 끝냈지만, 고원지대 철도 건설의 기술적 어려움과 재정 문제로 라싸까지 연장하는 공사는 미뤄졌다. 중국은 2001년 6월부터 10만 명이 넘는 인력을 동원해 거얼무에서 라싸까지의 2기 공사에 들어갔고, 5년 동안의 공사 끝에 2006년에 철도를 개통했다. 칭짱철도는 고산지역을 통과하므로 강한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열차 창에는 자외선 차단막이 설치되고, 일반 여객기처럼 산소 공급시설 등이 별도로 갖춰져 있다. 또한 고산병에 대처하기 위해 의사와 간호사가 동승한다고 한다.

 

칭짱철도의 개통으로 베이징에서 라사까지 4,064km 거리를 48시간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티베트는 더 이상 은둔의 나라가 아니고 외부세계에 완전히 개방되었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티베트의 개발이 본격화될 전망이지만, 동시에 중국의 티베트 지배는 더욱 확고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티베트에서 독립 운동이나 소요가 발생할 경우 군 부대의 즉각적인 파견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달라이 라마가 외교와 국방을 중국이 맡고 나머지 부문만이라도 자치를 허용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은 이런 현실적인 난관을 고려한 타협이라고 볼 수 있다. 한정된 자치가 티베트 고유의 문화를 보존할 기본권과 자유를 보장받기 위한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