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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국립민속박물관은 왜 '돌하르방'을 돌려주지 않나?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8]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50여 년 전 군부독재 때인 1968년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이 제주도에서 빌려온(?) 제주읍성 동쪽문을 지켜주던 '돌하르방'(翁仲石)을 이제는 본디의 제자리로 돌려보내 주어야 한다. 국립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에는 최근에 복제된 수준미달의 짝퉁 벅수(法首)들 사이에서 방치된 듯 전시되고 있는 제주도의 진품 돌하르방 한 쌍이 세워져 있다. (네이버 블로그; '국립민속박물관의 현주소‘ 참조).​

 

고향땅을 떠나, 반세기 동안 제주도를 벗어나 있었기에 제주도의 민속자료 지정에서도 누락이 되었고 지금은 복제품들 사이에 섞여 있어 진품 취급도 받지를 못하는 외톨이 '짝퉁'신세가 되었다. 하루빨리 고향땅으로 돌아가 제주읍성의 동쪽문 옛 터를 지켜주는 늠름한 문지기역할을 계속하여야 할 것이다.​

 

제주도는 1416년(태종 16년)에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3곳으로 행정구역을 나누었고, 지역 방어를 목적으로 하는 성을 쌓았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李元鎭)이 효종 4년에 펴낸 《탐라지(眈羅志)》에 따르면, “옹중석(翁仲石, 돌하르방)이 제주읍성 동, 서, 남쪽 성문밖에 이미 세워져 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운 내용에는 “제주목사 ‘김몽규(金夢奎)’가 1754년에 만들어 세웠다.”라고 지금도 기록되어 있다. 한심한 내용이다. 우리땅의 민속문화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고,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에 의해 조사되고 왜곡하여 기록된 내용들을 지금도 베껴서 우려먹고 있다. 다만 '옹중석'을 언제부터 세우기 시작하였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네이버 블로그; ‘돌하르방의 조상’ 참고)​

 

“흉년 들고, 굶주리며,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구하고, 원통하게 죽어 한을 품고 있는 원귀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제주읍성의 동, 서, 남쪽의 3문에 '옹중석'이라는 수호신을 만들어 세웠다.”라고 하는 전설만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제주도에 과연 1653년 이전에는 '수호신'이 없었을까? 제주도에는 수호신들의 명칭을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옹중석이라고 불렀으나 '우석목(偶石木)‘이 가장 널리 알려진 이름이었다. '우석목'은 주로 제주목에서 불렸고, '무성목(武石木)’은 대정현에서, 벅수머리'는 정의현에서 주로 부르고 일컬었다. ​

 

“뭍(육지)에서 불리던 '벅수'라는 말이 통용되었다.”라는 것은 이미 ‘1653년 이전에도 나무로 깎은 수호신 역할의 나무벅수가 존재하였다.’라는 가능성을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제주도에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돌벅수들 가운데는 '극대'(벅수머리)가 서귀포에 실제로 있으며, ‘조천벅수’, '목선대장군', '약하르방'과 '약할망'이라는 돌'벅수'가, 문지기 '돌하르방'들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제주도의 어린이들은 '옹중석'이 “돌로 만들어 진 ‘할아버지’를 닮았다.”라고 하여 '돌하르방'이라고 불렀다. 1971년 '옹중석'이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료 제2호'로 지정이 되면서 부터 '옹중석'의 정식 이름은 '돌하르방'이 된 것이다. ​

 

뭍의 '벅수'들은, 대부분 손의 표현이 생략되어 있지만,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두 손이 표현되어 있어, 가슴이나 배를 감싸 안고 있다. 돌하르방은 수염이 없다. 또 이빨이 보이지 않게 입을 욱 다물고 있다. 뭍의 벅수는 신앙적인 기능이 강하지만 제주도의 돌하르방은 문지기역할 뿐이다. ​

 

돌하르방은 주로 읍성을 지켜주는 수호신 또는, 문지기 역할을 하기 위하여 몸통에 '정낭'(긴 나무막대기)을 걸기 위한 구멍이 뚫려져 있다. 성문 어귀에서 서로 마주보고 세워져 성 안쪽을 지켜주는 문지기 또는 수호신 역할과 적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세워진 수호신 상(像)이다.​

 

현재 민속자료로 지정된 돌하르방들은 제주시(제주읍성)에 21개, 서귀포의 표선(정의현), 대정읍(대정현)에 24개가 있다. 1개는 행방불명되었고 제주목(제주읍성) 동쪽문의 돌하르방 2개는 1968년 군부독재 시절 강압에 따라 서울 국립민속박물관에 빌려주는 형식으로 반출이 되었으나, 50여년이 지나도록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뻔뻔한 일들을 자행되는 곳이 ‘국립(國立)’임이 한심스럽다.​

 

국립민속박물관으로 반출된 동쪽문의 돌하르방들은 합당한 이유 없이 그들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어 회수가 불가능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뻔뻔하고, 치사한 관청과 공기업의 횡포는 지금도 여전하다. 우리의 민속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서, '촛불'을 다시 켜고 해결을 하여야 할 문제일까?

 

우리 조상이 물려준 문화재들은 본디의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 박물관이 문화재들의 공동묘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