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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창녕 화왕산 용선대가 있는 관룡사(觀龍寺)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창녕은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지만, 역사유적으로는 삼국시대 이전 가야시대부터 유적들이 남아있다. 험한 바위산인 화왕산의 산마루 근처에는 넓은 부분에 산성을 쌓았는데 성의 둘레길이가 2.6km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화왕산의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관룡사가 위치하고 있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관룡사는 창건연대는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지 그리 오래지 않아 창건된 절로 역사도 깊다.

 

신라의 불교공인은 법흥왕14년(527)으로 관룡사의 창건은 신라 진평왕 5년(583) 증법국사가 처음 개창했다고 전하며, 관룡사의 창건은 신라의 절 들 가운데서는 매우 빠른 시기이다. 이후 관룡사는 신라에서 8대 사찰로도 이름이 높았다. 관룡사는 600년 대 원효대사가 있을 때는 제자 1천명을 모으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관룡사라는 절의 이름은 창건주 증법국사가 절을 지을 때 화왕산 위에 있는 3개의 연못에 살던 아홉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는데서 유래한다.

 

그러나 이후의 많은 역사는 기록된 것이 전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모든 건축물과 그 안에 있던 기록들이 불에 타버렸기 때문이다. 현재 전하는 관룡사 사적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이후 중건된 관룡사에 조선 숙종 30년(1704) 가을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대웅전과 부도등이 유실되었고, 절에 살던 스님 20여명도 모두 익사하는 참변을 당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큰 태풍이 불어와 물난리가 났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숙종 38년(1712) 현재의 대웅전을 다시 짓고 중건하였다.

 

현재 관룡사의 유물로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돌장승 2기가 절 들머리에 서있으며, 조선 초기에 지어진 약사전(보물 146호), 약사불(보물 519호), 대웅전(보물 212호), 용선대 석가여래좌상(보물 295호) 등이 있다. 이런 보물들 중에 절 입구에 세워진 석장승은 국내 몇 남지 않은 석장승으로 매우 토속적인 얼굴에 친근감이 느껴지는 조각으로, 그 형상은 제주 돌 하르방과도 맥이 닿아있어 보인다.

 

장승은 절의 경계에 세워져 일주문과도 같은 역할을 한 것으로, 절 경내에서 사냥이나 고기잡이 등을 금지하기 위하여 세웠을 것으로 보이며, 절을 지켜주는 사천왕의 역할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특이하고 귀한 장승은 보물의 목록에 오르지 못하고 있어 매우 아쉬웠다. 문화재의 가치가 꼭 국보나 보물의 이름을 얻어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관룡사 들머리에 세워진 2기의 석장승은 언젠가 그 가치가 인정되면 충분히 보물급에 해당한다고 생각되는 귀한 유물이다.

 

관룡사의 경내를 돌아보고 더 안쪽으로 약 500m 산길을 올라가면 화왕산 중턱에 돌출한 바위산 봉우리 위에 석불좌상이 모셔져있는데, 이 석불좌상을 용선대 석가여래라고 한다. 연화대좌에 모셔놓은 불상은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 신체표현과 옷주름 등 장식을 보면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용선대라는 이름은 하늘과 바다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용이 배에 중생을 구제하기 위하여 떠있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봄 가을 안개가 낀 날 화왕산 위에서 용선대를 내려다 본다면, 그 모습은 마치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부처님을 모시고 극락세계로 나아가는 반야용선을 보는 듯 한 모습이기에 용선대라는 이름이 붙은 것 처럼 느껴진다.

 

불교에서 중생은 누구나 깨달음을 구하지만,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이 세상을 살고나면 누구나 극락세계에 다시 태어나기를 갈망한다. 그런데 극락세계를 가자하니 무심코 홀로 갈 수도 없으니, 무한한 허공세계를 마치 험한 바다를 배타고 건너듯 물이건 하늘이건 마음대로 넘나드는 용선에 부처님을 모시고 그 배에 타기만 한다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용선대 부처님께 극락왕생을 빌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힘겹게 찾는 관룡사 용선대 석가여래불이지만 무심결에 보물조각품을 보는 듯 보고 갈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허물을 벗고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결국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에도 기꺼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높은 이곳에 부처님을 모신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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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