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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독립군, 봉오동전투서 왜군 크게 무찌르다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095]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99년 전인 1920년 6월 7일이었습니다. 독립군은 홍범도 장군의 지휘 아래 마을 주민을 모두 대피시키고, 봉오동의 서산에 홍범도의 지휘부가, 동산에 최진동의 부대가, 남산에 신민단의 부대가 각각 숨어 있었습니다. 오후 1시경 독립군 부대는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끌어들여 기습적으로 공격했지요. 좁은 골짜기에 갇힌 신세가 된 일본군은 커다란 피해를 입고 도망쳤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이 싸움에서 죽은 일본군은 157명, 다친 사람은 200여 명에 달했지요. 반면 독립군은 4명이 죽고 다친 사람이 몇명 생기는 데 그쳤습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20년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한국 독립군 연합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싸움이 바로 봉오동전투였습니다. 홍범도(洪範圖, 1868~1943) 장군은 자신이 이끈 대한독립군(大韓獨立軍)과 안무(安武, 1883~1924)가 이끈 국민회군(國民會軍), 최진동(崔振東, ?~1945)이 이끈 군무도독부(軍務都督府)가 연합하여 결성된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路督軍府)와 한경세(韓景世)가 이끈 대한신민단(大韓新民團)의 독립군 연합부대가 하나 되어 커다란 승리를 이끌어낸 것입니다.

 

이 싸움을 이끈 홍범도 장군은 그뒤 청산리전투에서도 김좌진, 이범석 장군과 함께 큰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청산리전투 하면 김좌진 장군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변대 박창욱 교수 같은 연구자들에 따르면 청산리전투에서 홍범도가 더 큰 전과를 올렸는데 크게 조명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순방 중 한ㆍ카자흐스탄 정상회담에서 홍범도 장군 주검 봉환을 강하게 요청했다고 하지요. 하지만, 카자흐스탄 동포들은 자신들에게 구심점이었던 홍범도 장군의 주검이 그곳을 떠나는 것을 꺼려 한다는 기별도 들립니다. 99년의 봉오동전투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