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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150년 만에 베일 벗은 경복궁 중건역사, 국내 첫 번역서 펴내

6.17.(월) 오후1시,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서울역사학술대회’ 열어

[우리문화신문=전수희 기자] 서울역사편찬원(원장:이상배)은 경복궁 중건에 관한 유일본 《경복궁건일기》를 국내 최초로 번역 발간하고, 동시에 2019년 6월 17일(월) 오후1~6시, 서울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경복궁 중건의 역사, 첫 장을 열다”라는 주제로 서울역사학술대회를 연다.

 

서울 역사를 대표하는 장소인 경복궁은 고종 때에 중건되었지만, 구체적인 역사상은 베일에 싸여 있었다. 중건에 관한 직접적인 사료가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역사편찬원은 일본 와세다대에 소장된《경복궁영건일기》를 발견하고 곧바로 번역작업에 착수, 2019년 고종대 경복궁 중건의 전과정을 시민들에게 소개한다.

 

2018년 서울역사편찬원은 정재정(서울역사자문관), 이우태(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기미지마 가즈히코(君島和彦, 도쿄가쿠게이대 명예교수)의 도움과 소장처의 협조를 받아 번역작업에 착수했다.

 

1868년, 3년이 넘게 진행된 경복궁 공사과정과 내용을 한성부 주부 원세철은 총 9책으로 기록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2019년 6월, 서울역사편찬원은 원세철의 경복궁 중건 기록을 서울사료총서 제16권 《국역 경복궁영건일기》라는 이름으로, 총 3책(번역문 2책, 원문 1책)으로 발간했다.

 

지금까지 경복궁 복원과 연구에 활용했던 그 어떤 도면과 문헌자료도 《경복궁영건일기》만큼 구체적이고 정확한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경복궁영건일기》를 통해 최초로 확인된 내용은, 첫째, 궁궐 현판관련한 정확한 정보이다. 궁궐의 현판은 복원할 때마다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경복궁영건일기》는 고종 때 경복궁 전각이 어떤 재료와 색상으로 제작했는지 기록했다. 이를 통해 현재 광화문, 건춘문, 영추문의 오류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경복궁안의 물길 체계이다. 경복궁 발굴조사에서 나타난 수문, 수도(水道), 도회은구(都會隱溝_배수로)는 매우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었기 때문에 그 체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경복궁영건일기》를 보기 전까지 우리는 《조선고적도보》의 어구(御溝)라고 표시된 것이 그 일부는 수도이고 나머지는 도회은구라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다.

 

《경복궁영건일기》의 번역책임자 배우성(서울시립대 교수)은 경복궁안의 6개의 수문, 4개의 물길, 두 갈래의 도회은구를 확인했으며, 그 어떤 도면과 문헌자료도 경복궁의 수문과 물길 도회은구(배수로)를 《경복궁영건일기》만큼 정확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셋째, 전각의 역할과 건립과정에 대한 정보이다. 침전이나 신하 접견소로 알려졌던 경복궁의 연길당과 응지당은 강녕전의 동서 퇴선간으로 음식을 데워서 수라상을 들이던 중간부엌이었으며, 강녕전・연생전・경성전은 원래 하나의 전각으로 건립하려다 분리한 사실도 최초로 확인했다.

 

또한 《경복궁영건일기》는 당시 국가적인 공공건설의 규모를 보여준다. 특히 서울 곳곳에서 큰 돌을 떼어오는 일은 많은 인력과 물력,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궁궐 공사에 필요한 석재(石材)는 서울 곳곳에서 가져왔다. 《경복궁영건일기》에는 삼청동, 동소문 밖, 옥천암, 영풍정 부근 등 구체적인 장소까지 나와 있다. 비교적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삼청동에서는 돌을 떼어낸 뒤 옮기기 위해 300명의 군사를 동원했으며, 동소문 밖에서 돌을 옮길 때는 수레에 45마리의 소가 필요했다. 옥천암에서 광화문 홍예의 주춧돌을 옮길 때는 25마리의 소가 수레를 끌었는데, 혜경교를 지나다 다리가 무너지면서 인부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밖에 경복궁 중건 당시의 건설현장에서 안전과 방재를 최우선시 했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인부가 높은 곳에서 작업하기 위해서는 발을 딛고 서거나 통행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오늘날 건설 공사장에서 ‘비계’라 불리는 임시계단인데, 《경복궁영건일기》에 나온 ‘부계’가 그 역할을 했다. 당시 공사현장에는 부계를 만드는 기능공들이 동원되었다.

 

 광화문의 경우 2층의 부계를 만들었는데, 위층 부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러울 정도였으므로 대나무로 난간을 만들고 그것을 포장해 감싸기도 했다. 완성된 부계 위로 짐꾼들이 건축자재들을 실어 올렸고, 공사현장을 둘러보던 고종도 광화문 그 부계 위를 올라가 보기도 했다.

 

 당시 공사 관계자들은 관악산의 불기운을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조운선 인부들이 가져온 배 깃발을 근정전 월대 위 4면에 꽂아 두도록 명했다. 배 깃발은 “물을 멈추게도 하고 가게도 하는 물건”이므로 근정전에 꽂아두면 관악산의 불기운을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 밖에 관악산 화기를 누르기 위해서 관악산 꼭대기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 경회루 북쪽 제방 위에서 묻기도 하였다.

 

이렇게 새로 밝혀진 내용들은, 6월 17일(월) 오후 1~6시 서울역사박물관(야주개홀) 개최하는 제18회 서울역사학술대회 “경복궁 중건의 역사, 첫 장을 열다”에서 만날 수 있다.

 

홍순민(명지대 교수)는 <고종 초년 경복궁 중건과 정치권력의 향배〉를 발표한다. 《경복궁영건일기》는 현장 실무자인 원세철이 담당한 기록물로서 정치 운영 전반에 대한 시야는 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복궁 중건에서 흥선대원군이 차지하는 실제적 비중이 얼마나 컸는지 파악하는데 다른 국가 기록물이 주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유승희(충북대 강사)는 <고종대 경복궁 중건시 자원군의 양상〉을 발표한다. 조재모(경북대 교수)는 〈《경복궁영건일기》의 건축기록과 경복궁 중건 공역〉을 발표한다. 김윤주(서울시립대 연구원)은 〈고종대 경복궁 중건의 풍경과 일상〉을 발표한다.

 

이상배 서울역사편찬원장은 “《국역 경복궁영건일기》가 고종 때 경복궁 중건의 매우 세밀한 공역내용과 과정을 보여준다면, 이번 서울역사학술대회는 《국역 경복궁영건일기》를 이해할 수 있는 안내자 및 해설자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사료총서 제16권《국역 경복궁영건일기》는 서울 주요 공공도서관에서 열람 가능하며, 서울책방에서도 200질 한정판(3책 1세트, 30,000원)을 구매 할 수 있다. 이후 서울역사편찬원 홈페이지에서 E_BOOK으로 서비스할 예정이다.

 

오는 6월 17일(월) 개최예정인 제18회 서울역사학술대회 관련 사항은 서울역사편찬원(02-413-9622, 김현정)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