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최북'의 고향 무주에서 만나는 최북의 향기

조선후기 화단의 거장 최북 기리는 <최북미술관>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무주구천동 계곡으로 유명한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에는 조선 후기 화단의 거장(巨匠)으로 이름을 떨친 최북미술관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 출신인 최북(1712-1786?)을 기념하여 세운 최북미술관은 순수비평문학의 선구자인 이곳 출신 김환태(1909-1944)문학관과 같은 기념관을 쓰고 있다.

 

 

 

붓으로 생업을 잇는다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가진 최북(崔北)은 북(北)자를 나누어 칠칠(七七)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후기 영ㆍ정조 시대에 활동한 대표적인 직업화가로 꽃과 풀, 새와 짐승, 바위, 고목, 메추라기와 호랑나비를 특히 잘 그려 최메추라기, 최산수(崔山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 최북은 술을 좋아했으며 괴팍한 성격으로 숱한 기행과 일화를 간직한 화가이기도 하다.

 

순조 때 재상을 지낸 남공철(1760~1840)이 지은 《금릉집》의 최북 전기를 보면 최북은 주량이 하루 5~6되씩 되었으며 술을 마시고 취하면 광기와 호기를 부려 ‘주광화사’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남공철 기록에는 “칠칠(최북)은 술을 좋아해 책 나부랭이 등을 모두 술값으로 주어 버려 살림이 어려웠다. 칠칠은 결국 평양과 동래로 떠돌아다니며 그림을 팔게 되었다. 두 도시 사람들이 비단을 가지고 문지방이 닳도록 줄을 이어 섰다. 어떤 사람이 산수화를 그려 달라고 부탁했더니, 산만 그리고 물은 그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괴상히 여겨 따지자, 칠칠이 붓을 던지고 일어서며 ‘이 종이의 여백은 모두 물이다’”라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최북은 자신의 그림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는데 그림을 마음에 맞게 잘 그렸음에도 보상이 적으면 그 자리에서 성을 내며 욕하고는 그림을 찢어 버리는가하면 흡족하게 그려지지 않은 그림에 대해 그림 값을 너무 많이 주면 손가락질하면서 “그림 값도 모르는 놈”이라고 하며 비웃기도 하였다. 또한 금강산 구룡연에서 '천하의 명사는 천하의 명산에서 죽어야한다'고 외치면서 못속으로 뛰어들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이야기라든가 한 벼슬아치가 지위를 이용해 억지로 그림을 그려달라고하자 자신의  눈을 찔러 애꾸가 되었다는 일화 등 예사롭지 않은 일화가 전한다.

 

“최북이 그린 그림은 150여 점으로 추정됩니다. 그 가운데 60점은 영인본으로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화가라고 하면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북 선생을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겸재 정선이나, 현재 심사정 같은 분들은 중국 산수에서 벗어나 우리 국토에 관심을 갖고 진경산수화를 그린 분들이지만 최북 선생 역시 진경산수화의 대가입니다. 전시된 그림들을 살펴보시면 최북 선생을 조선 후기의 거장(巨匠)이라고 부르는 까닭을 이해하시게 될 겁니다.”

 

이는 최북미술관을 상세히 안내해준 김진남 무주군 관광해설사의 말이다. 김진남 관광해설사는 어제(30일) 아침 9시, 미술관이 문을 열자마자 찾아간 기자에게 무주 출신의 화가 최북의 출생과 예술세계, 작품 등에 대해 친절하면서도 해박한 설명을 해주어 최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옹졸하고 게으른 나는 평생 장관을 못 봤건만그대는 바다 건너 하늘 밖을 노닐게 되었구나. 해 뜨는 동쪽에는 진짜 해가 있을 지니그것을 그려 가져와 내게도 보여 다오. - 성호 이익이 최북의 일본행을 송별하면서 지은 3수 가운데 1수-

 

김진남 해설사는 최북이 그린 일출(日出) 그림을 가리키면서 ‘붉은 태양과 힘차게 출렁대는 파도가 잘 묘사된 그림’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설명을 덧 붙였다. 최북의 ‘일출’ 앞에서 성호 이익의 시를 감상해보았다. 최북은 1748년 2월에 부산포를 떠나 그 해 윤7월까지 화원인 이성린(1718 – 1777)과 함께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다녀왔다. 또한 중국을 다녀 온 사실을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으나 신광하(1729~1796)가 지은 <최북가(崔北歌)>의 시에 숙신(중국)을 다녀왔다고 하였고, 최북이 지은 <독작(獨酌)>시에 동쪽 달을 바라보고 고향을 생각한다는 글이 있어 중국에도 다녀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북은 평소 《서상기》와 《수호전》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수호전》은 영웅호걸들이 나쁜 벼슬아치들을 의리, 용기, 무예, 지혜로써 혼내주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므로 조선에 처음 유입된 이후 읽어서는 안 되는 금서로 지목된 바 있다. 최북을 말할 때 흔히 ‘저항기질이 강한 화가’ 라는 평이 있는데 이는 《수호전》 등에 나오는 영웅호걸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평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무주의 최북미술관을 둘러 본 것은 매우 뜻깊었다. 평소 최북 선생의 예술세계를 흠모하던 기자로서는 무주읍에 이렇게 훌륭한 최북미술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설레었다. 이제 무더운 7월이 시작되었다. 산과 계곡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이다. 덕유산과 무주구천동을 품고 있는 무주에 방문할 기회가 된다면 내친김에 조선 화가의 거장인 최북미술관에도 발걸음을 해보면 의미 깊지 않을까?

 

김환태문학관&최북미술관: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최북로15

전화 :063-320-5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