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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이태원 부군당의 화주

이태원 부군당 (9)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45]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이태원 부군당의 화주는 남자가 맡았지만, 해방 후에는 여자도 화주를 맡게 되었다. 화주는 이태원부군묘관리위원회(梨泰院洞府君廟管理委員會)에 소속돼 당굿 개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제물을 준비하며 유교식 제례에 직접 참여하여 의례집행자로서 역할 한다. 화주로 추천되거나 거론되는 사람들은 원로 주민 가운데 마을에 영향력이 있는 토박이들이다. 과거 부군당제에 관여해 본 사람으로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화주로 뽑히는 경우가 많다.

 

이태원이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어서, 남부지역인 이태원 1동과 중부지역인 이태원 2동에서 각각 6명씩 동일하게 선출하여 모두 열두 화주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선출된 화주 가운데 화주들을 거느리며 행사를 이끌어 갈 수(首)화주를 뽑는다. 수화주는 화주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부군당 행사를 잘 알고 있는 적극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수화주와 함께 손발을 맞추면서 부군당 행사를 이끌어갈 재무를 선임한다. 재무담당 화주는 학식이 있어야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부군당 일에 관여할 수 있는 사람으로 뽑는다. 과거에는 수화주가 하는 일이 많아 직장을 갖고 있거나 바쁜 업무가 있는 사람은 제외되곤 하였다.

 

화주를 대물림하는 때도 있어 2∼3대에 걸쳐 화주 일을 맡은 집안도 있다. 과거에는 화주로 뽑히기 위해선 생기복덕(생년월일 등으로 확인한 길한 날)을 가려낸 다음 집안에 부정한 일이 없는 사람이어야 되었다. 부정한 사람이란 그 가족 성원 중 출신, 사망, 장애인 등이 있는 것을 말한다.

 

 

화주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면서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는 유지급에 해당하여야 하고 동시에 부부가 생존해 있어야만 했다. 수화주의 경우에는 이러한 조건은 물론 학식과 지도력이 있어야 하였다.

 

특히 화주로 선정된 후 당제에 올릴 조라술을 담근 후부터는 금기가 더욱 까다로웠다. 조라술은 제례 보름 전에 담그는데, 이때부터 누린 것(육고기), 비린 것(물고기)을 먹지 않고 부부 동침을 금하며 옷을 입은 채로 잠을 자야 했다. 제를 지내는 날에는 새벽 일찍 일어나 대동 우물의 물로 목욕재계한 뒤 제를 지내야 했다.

 

이토록 까다로운 화주 선정 기준과 선정 이후 지켜야 할 금기는 오랫동안 존속됐었다. 그러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30여 년 전부터 그 기준이 완화되고 금기 사항도 알게 모르게 지켜지지 않게 되었다. 그 까닭은 첫째 주민들의 부군당에 대한 신앙심 약화, 둘째 화주의 집안 대물림 전통 파괴, 셋째 화주들의 노령화, 넷째 중장년층의 참여도 저조 등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옛 관습이 어느 정도 남아 있으므로 화주로 뽑히기 위해선 적어도집안에 부정한 일이 없어야 하고 또한 뽑힌 이후에도 매사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

 

 

뽑힌 화주들은 제례를 거행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부군당 내에 있는 화주청에 모여 화주 모임을 하고 행사에 관해 논의한다. 화주모임을 수화주가 주재하는 것이 아니라 보존회의 실질적인 책임자인 총무가 한다. 모임 시간이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서로 연락하여 편리한 시간으로 정하되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한다. 화주 모임에서 논의되는 내용은 의례 절차에 관한 과거의 경험담 소개를 통해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새롭게 행하게 될 제례를 모두가 합심하여 잘해 보자는 것이다.

 

2002년 4월의 큰 굿을 하기 위해 그해 음력 3월 27일(양력 5월 9일) 점심시간에 이루어진 화주 모임에서는 모두 8명의 화주가 모였다. 회의는 총무 주제로 이루어졌으며 주요 내용은 행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두가 합심하여 잘 해 보자는 다짐 정도였다. 화주들은 제례가 끝난 다음에도 화주청에 모여 음식을 먹으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고 의논한다. 제례 진행은 절차 순서를 적어두어 그것에 따르고 있지만, 진행상 잘못된 부분은 수시로 잘잘못을 말한다.

 

2∼30여 년 전부터는 열두 명의 화주가 모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5∼6명 또는 7∼8명의 화주가 참여하고 있다. 열두 화주 모두가 참여하지 않고도 제례를 진행해온 것은 꽤 되었다. 화주로 뽑혔지만, 건강상 또는 갑작스럽게 부정한 일이 생겨 행사에 불참하는 때도 있다.

 

1990년까지만 해도 여자가 화주로 뽑히기도 하였는데 20여 년 전에는 없어졌다. 여화주 활동은 원래 없었던 관습이었다. 그렇지만 7∼80년대 들어서면서 화주를 맡아 할 사람이 마땅치 않아 믿음이 깊은 할머니 가운데서 한두 분 정도 뽑았다. 당시 여화주가 하는 일은 주로 전물(제물) 장만이었으며 제례에는 참석지 않았다. 그러나 근년에는 여화주가 활동하지 않을뿐더러 아예 뽑지도 않는다.

 

 

이태원 부군당은 제례 때마다 화주 선정이 어려워 경로당의 노인들을 중심으로 종용하고 있다. 2001년 4월 큰 굿을 할 때 참여한 화주들은 다음과 같다. ① 변지열(남. 68세. 수하주) ② 박복원(남. 80세) ③ 이재호(남. 70세) ④ 정순권(남. 75세) ⑤ 고광선(남. 79세) 등 5명이었다.

 

2002년 4월 큰 굿을 하기 위해 선정된 화주들은 ①고광선(남. 80세. 수화주) ②박복원(남. 81세) ③ 이재호(남. 71세) ④정순권(남. 76세) ⑤변지열(남. 69세) ⑥이광천(남. 69세) ⑦ 이송남(남. 69세) ⑧김용학(남. 71세) ⑨이회석(남. 72세) 등 모두 9명이었다. 2005년에는 모두 6명의 화주가 뽑혔는데, 이회석, 김용학, 정순권, 김희성, 이광천, 강희주 등이다. 과거 여화주로 활동하였던 사람은 욕쟁이 할머니, 옥경네 아주머니, 중부 거주의 아주머니(남편도 화주였음) 등 3명이었다.

 

뽑힌 화주들은 당제를 지내기 위해 보름 전부터 부군당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한 인간이나 동물 등 어떠한 외부의 것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제례 전날 저녁에는 화주청에 모여 마지막으로 모임을 하고 여자들이 준비한 제물들을 제상에 올린다. 그리고 화주 모두가 화주청에서 잔다.

 

당굿이 행해지면 굿청 옆에 한 줄로 서서 당주 무녀로부터 공수를 받고 재수를 알아보기 위해 산을 받기도 한다. 제례가 마무리되면 부군당 앞마당에 있는 당목 앞에서 소지를 올린다. 이후, 제례가 모두 마무리되면 추렴에 동참한 집에 제물을 나누어는 주는 반기 돌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