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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역사가 600년이 넘는다는 밤섬 부군당

[양종승의 무속신앙 이야기 46]

[우리문화신문=양종승 박사]  밤섬 부군당도 서울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유래나 내용이 기록되어 있지 않아 그 실체를 알아내기란 여간 쉽지 않다. 그러나 밤섬 출신의 원주민들에 따르면 이곳 부군당의 역사가 약 600년이 넘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우리나라 부군당 유래에 관련하여,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보면 수호신을 모신 숲에 지전을 걸고 부군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보면 부군당에 목재로 남근을 사당 내부의 벽에 많이 걸어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부군 신앙이 조선 시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부군’의 원래 말은 ‘붉은’이다. 이는 부군(붉은)을 모신 마을의 부군당을 ‘붉은당’이라고 말하고 이곳에 부군(붉은) 할아버지와 부군(붉은)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 부군 신앙의 역사는 고대사회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부군 신앙이란 하늘 숭배 사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신앙의 실체는 천지를 주재하는 하늘의 광명(光明)을 의미한다. 밝음으로 표현되고 붉음으로 묘사된 부군 신앙인 것이다. 이로써 서울 한강 밤섬의 부군 신당 역시도 이와 같은 붉음(태양) 신앙의 맥락에서 계승 발전되어 왔다.

 

한편, 밤섬 부군당 성립에 관한 자료는 밤섬 원주민들이 구술한 것이 전부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府君堂祠宇再三次移建譯文>

“본 府君堂 祠宇는 元來 漢江 栗島에 漢陽 遷都 當時 創建한 것으로 推測되며 近 五百七拾餘年間 栗島 住民들이 每年 正月 初二日에 登亨을 奉行중 檀紀 四千三百一年에 現 臥牛山 魔移築侍亨타가 國策으로 APT 團地가 造成됨으로 不得己 三次 移建케 되니 賢明하신 神靈이시여 勿驚勿畏 하시고 本祠堂에 永久時 是依安靜 하시기를 祈願하오니 永遠施惠 주심을 千萬伏願하나이다.

檀紀起源 四千三百二拾八年 乙亥 十二月 十四日 全栗島住民一同 謹告“

 

이 기록을 보면, 밤섬 주민들은 밤섬에 부군당이 세워진 시기를 한양 천도시기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밤섬은 원래 서울특별시와 가깝고, 땅 자체도 넓어 사람이 많이 살았던 한강의 섬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뽕나무가 많아 ‘서잠실’이라 불리기도 했다. 오늘날의 밤섬[栗島]이라는 이름은 섬 모양이 마치 밤알을 까놓은 것처럼 생겨서 붙은 것이다. 섬의 전체 면적은 73만여 평 정도 되는데, 사람이 살지 않는 오늘날에도 퇴적물로 인해 그 면적이 해마다 늘어나는 편이다.

 

 

밤섬에는 조선 시대 이래 1967년까지 마씨, 인씨, 석씨, 선씨 등 희귀성을 가진 대가족 약 62세대가 자신들만의 마을을 이루며 집단 거주하였다. 이들의 생업은 주로 고기잡이, 조선, 뽕나무 또는 약초(감초) 재배나 염소 방목 등을 하였다. 그런데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밤섬이 한강 흐름에 방해된다고 여겨 1968년 2월 9일 섬이 폭파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기반암 대부분이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고 섬 내 주민 443명은 섬 근처의 창천동으로 이주하게 된 것이다. 이때 마을 사람들이 부군 신앙을 뭍으로 옮겨 간 것이다. 1968년 밤섬에서 뭍으로 옮겨진 부군당은 현재 자리보다 약간 위쪽에 세워졌었는데, 1995년 아파트 건축으로 인해 현재의 자리인 서울특별시 마포구 창전동 28번지로 옮기게 된 것이다. 현재의 부군당 규모는 대지 40평, 건평 6평 정도다.

 

 

밤섬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부군할아버지가 그들을 보호한다고 믿는다. 관악산 산신령이 내려와 부군할아버지에게 절을 했다고 할 정도로 부군할아버지의 위상은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밤섬 사람들 사이에서는 부군할아버지에 대한 말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조차 꺼린다. 부군할아버지에 대한 경외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가진 것이다. 그러므로 좋지 못한 일이 생기면 부군할아버지를 찾아 꼬였던 일들이 잘 풀어지기를 빌기도 한다.

 

또한, 마을 사람들은 부군당 주변에서 소변을 보거나 당 안으로 함부로 들어가면 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과거 아이들이 당 주위에 있는 나무 열매를 따 먹은 후 부스럼에 걸려 큰 고생을 하였다고 말한다. 또한, 안경을 쓴 사람은 당 앞을 지날 때는 안경을 벗어야 했고 손가락으로 당을 가리키는 일도 삼갔다.

 

당 밑에는 빨래터가 있었는데 부인들이 빨래하러 갈 때도 당 앞을 지날 때는 아이의 기저귀 나 여자 생리가 묻은 빨랫감을 가지고 가지 못했다. 일정 때는 일본 경찰이 말을 타고 부군당 앞을 지나려 하자 말굽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말에서 내려 부군님께 절을 하고서야 지나갈 수가 있었다고 한다. 이렇듯 부군당은 영험력을 가진 곳으로 믿어 온 것이다.

 

 

당 안 벽면에는 부군할아버지와 부군할머니 내외분, 삼불제석, 군웅, 조상을 그림으로 그린 화본을 모셔두었다. 그리고 매년 음력 정월 초이틀 소임(제관)과 도가(마을굿을 주관하는 마을 대표)를 뽑아 부군당굿을 열고 있다. 부군당굿이 2005년 1월 10일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는데 그때 이름이 ‘밤섬부군당도당굿’으로 된 것이다. 원래 명칭은 ‘밤섬부군당굿’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