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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벅수'는 악마인가, 우상인가?

‘벅수’는 미신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민속문화다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16]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1700년 무렵의 조선 땅에는, 중국에서 세차게 밀려들어오는 전염병들 가운데서도 특히 ‘두창’(痘瘡, 천연두)을 막아내기 위하여 온 나라가 비상사태였다. 우리 조상들은 마을 들머리에 ‘두창벅수’를 세우기 시작하였고, 무서운 ‘두창신’을 ‘호귀마마(胡鬼媽媽)’ 또는 귀중한 손님(客)으로 떠받들기 까지 하였으며, 마을의 경계선을 뜻하는 벅수가 세워져 있는 ‘당산(堂山, 서낭당)을 넘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내기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왕실에서도 돌림병으로 죽은 백성들의 억울한 원혼들을 달래주기 위하여 해마다 ‘여제’(厲祭)라는 제사까지 지냈었다.​

 

두창과 잡귀들을 막아내기 위하여 세운 벅수들의 모습과 글씨(銘文)는 주로 무섭게 생긴 중국의 왕이나 장수들의 표정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조각을 하였고, 조선 땅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특별히 임명하였으며, 벅수의 가슴에는 ‘周將軍,唐將軍(주장군,당장군)’ 또는 ‘南正重, 火正黎’ ‘鎭西大將軍, 防禦大將軍’등으로 표현된 ‘이름표’(銘文)를 새겼다. 중국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제왕(帝王)이나 장수들을 이용하여 “중국 땅에서 생산된 돌림병과 잡스러운 귀신들을 막아 내겠다.”라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로 세워진 것이 '두창벅수'다.​

 

또 조선시대의 토박이 벅수들은 단군할아버지 혹은 입향시조(入鄕始祖)를 뜻하는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주로 벅수로 표현하여 만들어 세웠다. 하지만 개화기 때부터는 유교문화(儒敎文化)에서 영향을 받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따라 한 쌍의 ‘벅수’로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부터 ‘天下(이승)大將軍’과 ‘地下(저승)大將軍’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으며, 남자와 여자의 불평등을 표현한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사상을 나타내는 '地下女將軍'이라 표현된 '벅수'가 태어났다. 겨우 140여 년 전에 생겨난 일이다. ​

 

게다가 일제강점기 때부터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벅수'문화를 미신의 문화로 트집을 잡은 조선총독부는 개화기 때부터 우리땅에서 사라지고 없는 '장승'이라는 표현을 다시 찾아내어 '벅수'와 합치고 '장승'으로 부르도록 강제로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벅수'를 ‘장승’이라고 부르고 있다. ​

 

‘장승(長栍)’이란 것은 신라 때 도입된 ‘역참(驛站)제도’의 한 부문으로, 큰길만을 전문으로 안내하는 기능을 가진 ‘푯말’(길잡이)을 뜻하는 것임을 이미 말했다. 그리고 유행병과 잡스러운 귀신들을 쫒아내기 위하여 무서운 악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벅수'와는 서로의 역할이 확실하게 다르지만, 생긴 모양새는 비슷하였다. 하지만 '벅수'라는 것은, 우리의 마을과 절집[寺刹] 그리고 성문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우리 토종의 수호신이었다. ​

 

개화기 때 선교사들의 시각으로는 우리 수호신들은 모두 악마와 우상을 표현한 원시문화(原始文化)로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조선을 대표하는 문화(볼거리)로 서낭당에 줄을 지어 세워져 있는 신기한 ‘벅수’들을 자기들 나라에 제일 먼저 소개하기도 하였다.

 

결론은 ‘벅수’가 악마나 우상이 아님은 물론이고, 미신으로 치부할 수고 없는 것으로 우리 겨레가 오랫동안 수호신으로 생각했던 민속문화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