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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대전 민속자료 제1호 ‘돌벅수’는 조작되었다

70여 년 전 한 석수장이가 만든 것으로 짐작되는 대전 돌벅수들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18]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대전광역시 대덕구 법동 범천골의 수호신 '天下(이승)大將軍'과 '地下(저승)大將軍'은 1989년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본디 나무벅수였으나 300여 년 전에 대전에서 큰 부자였던 송민노가 지금의 돌벅수를 세웠고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에 세워진 '석장승'이다,”라고 문화재청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꾸며서 만든 이야기며, 터무니없는 조작이다. 다시 검토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수호신으로 알려진 벅수의 역사를 살펴보면 지금으로 부터 300여 년 전에 만들어 진 것으로, 1,700년 무렵의 벅수에서는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將軍'이라는 글씨를 가진 벅수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이란 글씨는 1876년을 앞뒤로 하여 개화기 때부터 우리땅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범천골의 벅수는 300 여년 된 벅수라고 인정할 수가 없다.

 

2003년 범천골 벅수를 조사하고 촬영하는 현장에서 만나 뵌 90대로 추정되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로는 “이웃 마을의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교감선생이었던 남편이 6.25전쟁 때 범천골벅수의 '天下大將軍'과 '地下大將軍'이라는 글씨를 쓴 인연으로 남편이 보고 싶을 때에, 자주 이곳 당산을 찾아와 시간을 보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이곳 범천골 벅수의 나이는 69살일 뿐이다.

‘대전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를 두고 “300여 년 전에 세웠다.”라고 하는 근거없는 주장은 벅수 옆에 세워진 '선돌'(立石)을 두고 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300여 전에 선돌을 세우는 것이 유행이었다 하더라도 선돌과 이 벅수와는 직접 관련이 있다는 증거도 없기에 300년 어쩌고 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더구나 문화재청의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법동'에 있는 한 쌍의 돌장승 중 남장승은 '天下大將軍', 여장승은 '地下女將軍'이라고 글씨가 새겨졌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장승들과 비교해볼 가치가 있는 '민속자료'다.”라고 기록했다. 어디에 근거를 두고 이런 '엉터리' 기록을 하는가? 문화재청은 눈앞의 '大將軍'을 '女將軍'으로 읽고 해석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들은 우리의 '벅수문화'(수호신)에는 아예 관심도,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

 

다시 말하면 '地下大將軍'을 '地下女將軍'으로 표현하였으며, '대장군(大將軍)'과 '여장군(女將軍)'을 구분할 줄도 모르는 한심한 집단이다. 나라가 앞장서서 우리 고유의 민속문화를 왜곡하고, 변질시키고 있는 현장이 바로 범천골이다.

 

그리고 이웃 마을에는 범천골의 벅수와 같은 때에 같은 석수장이 솜씨로 보이는 벅수들이 세워져 있다. ​이웃하여 있는 '읍내동'의 뒷골 돌벅수는 “1920년 무렵 큰 물난리 때,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하던 돌탑이 무너져 마을 사람들이 안타까워하자 마을의 유지 백조근이 돌벅수를 만들어 세웠다.”라고 전해진다. 뒷골은 조선시대 때 회덕현 관아가 있었던 뒤쪽의 마을이라 하여 '뒷골'이라 한다.

 

'용방이마을'의 돌벅수는 조선시대 때 광해군의 폭정을 피하여 경기도 광주지역에서 살았던 풍천 임 씨들이 내려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300여 년 전에 마을에 전염병이 돌고 재앙이 심해 그 피해를 막기 위하여 '할아버지돌탑'과 '할머니돌탑'을 세웠었는데 여러 번의 물난리로 무너졌고 1930년에 무너진 돌탑 옆에 마을사람 임현빈이 고향땅 경기도 광주의 수호신을 모방하여 돌로 만든 '장신'(將軍神, 法首)을 세웠다.”라고 전해진다.

 

​법동의 범천골 벅수와 읍내동의 뒷골 벅수, 용운동 용방이마을 장신은 어림잡아 90여년이 채 되지 못한, 같은 때의 같은 석수장이의 솜씨로 만들어진 대전을 상징하고, 대전을 대표하는 특징이 뚜렷한 명품 벅수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전에 살고 있는 특정 민속학자(?) 한 사람의 아집으로 문화재들이 왜곡되고 엉뚱하게 재창조되고 있어 어처구니없는 현장이 되었다. 문화도시 대전이 왜곡된 모습으로 점차 변화되고 있어 참으로 보기에 딱하다. 잘못된 것은 올바르게 고쳐서 다시 알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