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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사진에는 그리움도 찍힌다

망향(望鄕)의 한(恨)과 함께 사라져간 사람들
재일교포 2세 사진가 허남영이 기록한 러시아, 일본, 중국의 한인 1세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사할린, 망향1세’. 동토(凍土)의 바람이 훑고 지났음인지, 어딘지 이국적인 낯빛이다. 탄광에서의 중노동으로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들을 깍지 끼고, 등 뒤에 걸려있는 자물통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그에게는 일설로 할 수 없는 무수한 세월이 잠겨 있는 듯 보인다. 사진가 허남영이 찍은 <망향 1세>의 사진이다.

 

 

 

현재 사할린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들이 4만 명 넘게 살고 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남사할린을 차지하였고, 전쟁 물자와 인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 6만여 명을 강제징용 했다. 해방이 되었지만 귀환 대상자를 일본군 포로와 일본 국적을 가진 자로 한정하면서 조국으로 돌아갈 길이 끝내 막혔다. 그리하여 다시 러시아 땅이 된 그곳에서 일평생 망향의 한을 품고 살아간 이들이 바로 사할린의 한인 1세대들이다.

 

논 앞에 한 노인이 꼿꼿이 서 있다. 우리네 농촌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농투성이 얼굴인데 입성은 어딘지 낯선 ‘연변, 망향1세’.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고향을 떠나, 중국 동북지역 길림성에서 일평생을 산 농부다. 미처 다 여미지 못한 인민복 단추처럼, 그 가슴 내부에도 평생 여미지 못한 ‘망향’의 그리움이 담겨 있을 것이다.

 

‘일본의 망향1세’는 언뜻 한국 어느 주택가인가 싶은 골목에 서 있다. 하지만 식물의 종류, 건물의 양식, 작은 소도구 등은 그녀가 선 배경이 일본임을 짐작케 한다. 한국과 일본을 알아채게 하는 그 미세한 간극 안에 담겨있는 무수한 비극의 역사를 지나, 그녀는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 본관을 둔 채 사할린에서 연변에서 일본에서 평생을 살다간 한인 1세들은 모두가 현대사 질곡의 세월을 온 몸으로 통과해 온 ‘생존자’들이지만, 결국 망향의 한을 품은 채 사라져갔다. <망향 1세>의 사진가 허남영은, 누구보다도 그 한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바로 그가 ‘일본의 망향1세’를 부모로 둔 한국인 2세이기 때문이다.

 

1956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한 허남영은 1990년대부터 집중적으로 중국 길림성 연변, 일본, 사할린의 한인 1세들을 찾아가 그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동북아에 흩어져 살고 있던 한인 1세들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잊힌 역사와 그 역사 속의 민초들이 기억되도록 한 것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구슬픈 망향가가 들려오는 듯한 허남영의 <망향 1세>가 10월 1일부터 2주 동안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전시된다. 눈빛출판사에서 펴낸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함께 만날 수 있다. 전시 문의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