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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편지

조선어학회 사건, 최현배 등 11명 일제에 잡혀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4176]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기차 안에서 조선 고등학생들의 대화를 조선인 경찰관 야스다가 엿듣고, 학생들을 잡아다가 심문했는데 이 학생들과 조선어학회의 사전편찬을 맡고 있는 정태진이 관련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를 빌미로 일제 경찰은 정태진을 잡아다 조선어학회가 민족주의 단체로서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거짓자백을 하게 합니다. 이후 1942년 10월 1일 조선어사전편찬회를 조직해 《조선어큰사전》을 펴내려 했던 장지영ㆍ최현배ㆍ이극로ㆍ한징ㆍ이윤재ㆍ정인승 등 핵심인물 11명이 검거되어 함경남도 홍원으로 압송되었습니다.

 

 

이후 1943년 4월 1일까지 모두 33명이 검거되어 고문을 당했고, 모두 '치안유지법'의 내란죄로 기소 당했지요. 이들 가운데 이윤재가 1943년 12월 8일, 한징이 1944년 2월 22일 옥중에서 죽었고, 1945년 1월 16일 함흥지방재판소에서 이극로 징역 6년, 최현배 징역 4년, 정인승 징역 2년 등의 판결이 내려져 옥고를 치르다가 해방이 되자 풀려났습니다.

 

이 조선어학회사건의 배경에는 193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극렬해진 일제의 식민통치가 있습니다. 1936년 12월에는 ‘조선사상범 보호관찰령’을 실시해 치안유지법 혐의를 받은 조선인들을 감시하고 탄압했으며, 이듬해 2월에는 사상보호단체라는 명목으로 대화숙(大和塾)을 설치해 사상범을 강제로 가입시키고 관리했지요. 이어 1941년 독립운동가는 언제든지 잡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조선사상범 예방구금령’을 공포해 조선어학회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