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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다시 선비를 묻습니다

선비란 무엇이고 선비정신은 어떤 것인가?
[솔바람과 송순주 1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을 가리키는 말로 ‘선비’라는 말 이상은 없다고 하겠다. 행실이 바르고 근검절약하며 재물을 밝히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고 임금에 대해서는 충성을 하되 바른 말을 할 때에는 목숨을 내걸고 하고 자신이 공부한 바른 이치를 세상에 펴서 모든 이들이 고루 공평하게 잘 살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물론 공자가 처음 만들어 낸 것이다.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등 사서(四書)와 《주역(周易 또은 易經)》, 《서경(書經)》, 《예기(禮記)》 등 3경을 포함해 이른바 사서삼경(四書三經) 가운데서 《예기(禮記)》라는 책은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지키고 따라야 할 예법에 대해 공자의 말을 빌어 길고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 「유행(儒行)」편이 나온다. 유(儒)라는 단어를 ‘선비’라고 풀 수 있다면 유교라는 것은 선비가 되어 선비의 도를 행하는 길을 열어주는 가르침 혹은 종교라 할 수 있을 것인데 거기서 선비의 길을 아주 소상하게 일러주고 있다.

 

“선비는 오늘날 세상을 살면서도 옛 사람들을 되돌아봅니다. 이 세상에서 행하여서 후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됩니다. 세상을 제대로 만나지 못해도 윗사람의 도움을 구하지 않으며 아래로부터의 추천을 바라지 않습니다. 모함하는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그에게 위해를 가하려 해 몸이 위급한 지경이 된다고 해도 그 뜻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 비록 거처와 행동이 위급해지더라도 마침내 그 뜻을 믿고 펴면서 백성들의 어려움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선비의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예기(禮記)》 「유행儒行」제42)

 

 

선비가 사는 집

 

이 말은 선비는 과거의 선인들의 행적에서부터 배워서 높은 뜻을 품고 세상의 어떤 유혹이나 위협에도 넘어가지 않고 그 올바른 뜻을 꺾지 않으며, 바른 마음으로 백성을 위한 바른 정책을 펴라는 것일 게다. 그러면서 그 선비의 집이나 주거에 대해서는

 

“선비는 1묘(30평)의 집에다 방은 사방 5장(1장 약 3m, 따라서 15m) 정도의 크기면 되고 대나무를 쪼개어 문을 달고 문 옆에 덧문을 붙이며 옹기구멍만큼의 들창이 있으면 됩니다. 옷은 한 벌로 계속 갈아입으면 되고 이틀 걸러 하루 식사면 족합니다. 임금이 선비를 알아주면 그것으로 의심치 않고 또 알아주지 않더라도 감히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선비의 벼슬살이는 이와 같은 것입니다.”

 

라고 검소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쳐준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선비는 금과 옥을 보물로 여기지 않고 충과 신을 보물로 합니다. 땅을 가지려하지 않고 의를 세우는 것으로 땅으로 삼습니다. 많이 쌓아두려고 하지 않고 많이 공부하는 것으로 부유함을 삼습니다.”

 

“선비는 거처하는 데에 가지런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앉고 일어서는 것도 공경스럽게 해야 하며 말하는데 있어서도 믿음이 우선이고 행동도 필히 치우치지 않고 바르게 해야 합니다. 길이나 땅이 험하고 편한 것의 이로움을 다투지 않고 겨울이건 여름이건 음지와 양지의 좋은 것만 다투지 않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있고 그 몸을 가꾸면서 이루려는 것이 있으니, 스스로 준비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기(禮記)》 「유행儒行」제42)

 

라고 가르친다. 이 정도만 해도 진정 선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조대왕이 말하는 선비상

 

그러나 이러한 선비들이 벼슬에 올라가면 권력과 명예와 돈을 추구하고 이익을 위해 이리저리 파벌을 형성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불의를 행한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선비라고 내세워도 선비가 아니며 선비도 종류가 나뉘게 된다. 좋은 선비를 구해 정치를 올바로 해보겠다는 의욕이 가득 찼던 정조대왕은 벼슬을 꿈꾸는 선비지망생들에게 선비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임금은 말하노라.

 

대저 유자(儒者)란 선비의 별명이다. 그 학술은 천인(天人)과 성명(性命)이며, 그 도는 중정(中正)과 인의(仁義)이며, 그 책은 시서(詩書)와 예악(禮樂)이다. 이로써 몸을 닦고 덕을 배양하며 꾸준히 배우고 질문을 기다리며, 가난하여도 쓰러지지 않고 부귀하여도 넘치지 않는다. 사용하면 다스려지고 사용하지 않으면 문란하여지니, 세상 도리의 나쁨과 옳음, 나라 운명의 막힘과 열림이 유자의 진퇴로 점쳐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옛날 융성하던 시기에는 유교만을 장려하고 유풍만을 떨쳤다....

 

아, 우리나라는 하늘이 문명을 열어 주어 거룩하고 신명한 분들이 계승하여 유현(儒賢, 유학에 정통하고 언행이 바른 선비)이 배출되었다. 시종 밝음을 계승하는 공부는 은(殷)ㆍ주(周) 시대를 넘어서고, 스승과 동문제자들이 이루는 학문은 관(關 관중지방의 장재)ㆍ민(閩 복건성의 주희)과 어깨를 겨루었다....

 

그러나 어쩌다 근래에 들어 점차 옛날과 같지 않아서 하늘의 덕과 왕도(王道)는 아득하여 거론조차 할 것 없고, 훈고(訓詁, 자구-字句의 해석)를 부회(傅會, 가당치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댐)하는 유자도 도리어 전한, 후한의 한 나라만 못하며, 글줄이나 외고 문장이나 짓는 유자는 육조(六朝) 시대와 궤도를 같이하고 있다. 겉으로는 두루마기와 관대로 헛되게 유자의 옷만 입고, 박학다문하다는 사람들은 유자의 행실이 결여된 지 오래되었다.... 이것을 생각하면 어찌 개탄하고 애석해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하면 유술을 내세워 숭상하고 유교를 만회하여 이단(異端)의 횡류(橫流, 옆길로 흐름)를 못 오도록 막고 우리나라의 도(吾道)가 묵어 막힌 것을 넓게 열어서, 조정에는 읍양(揖讓, 예를 다해 사양함)의 바람이 일고 선비는 분쟁하는 습성이 없게 하며 산야에는 편벽된 풍속이 단절되고 사람은 이전이 두터운 지역으로 돌아가, 온 세상이 향상되어 상고 시대와 같이 밝고 흡족하게 다스려진 세상이 되게 할 수 있겠느냐....각기 대책 편에 자세히 저술하라. 내 친히 열람하리라." (《홍재전서》 제50권 책문(策問) 3 인일제(人日製) 병오년(1786))

 

 

이처럼 신하들에게 답을 적어내라는 책문(冊文)의 문제는 신랄하고 가슴 절절히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것은 선비라는 것이 이상이기는 하나 현실적으로 진정 선비 같은 사람은 없고 정치나 사업에서 자신의 이익만을 취하는 모리배들이 횡행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담헌 홍대용이 말하는 선비

 

조선조 후기의 학자이며 음악가였던 담원 홍대용도 한탄을 한다.

 

“세상에서 이른바 선비란 것에는 세 종류가 있으니, 곧 경학(經學, 사서오경을 연구하는 것)ㆍ문장(文章, 글을 잘 하는 것 )ㆍ거업(擧業, 과거등재로 출세하는 것)의 선비인 것이다. 음운학을 전공하고 시율(詩律)을 연습하여 높은 벼슬에 오른 벼슬아치나 명예와 이익의 길에 온갖 힘을 기울이고자 하는 자는 지금의 이른바 재사(才士)나 내가 이르는 선비는 아니다. 경전(經傳)의 글귀를 따다 쓰고, 사마천(《사기》의 저자)과 반고(《한서》의 저자)의 역사서술을 그대로 사용하여 쓸데없는 말을 꾸며서, 한 때의 기림을 노리고 백세의 명예를 구하는 자는 지금의 이른바 문사(文士)이나 내가 말하는 선비는 아니다.

 

 

그 말하는 바나 글이 많이 알려지고 시원스러우며 몸가짐도 단정하고 엄숙하며, 요순(堯舜)의 다스림과 공맹(孔孟)의 학설을 입에 끊임없이 이야기하므로, 인재추천부서가 그 어짐을 천거하여 벼슬과 녹이 점점 더해지게 되나 그의 행실을 자세히 살피면 안으로는 어두운 방에서 속이지 않을 덕(德)이 없고, 겉으로는 천하를 경륜할 재주가 없으며, 속이 텅 비고 아무 것도 없는 자는 지금의 이른바 경사(經士, 껍데기와 속이 다른 위선자 같은 선비)이나 내가 말하고 하는 선비는 아니다.

 

반드시 인의(仁義)를 깊이 생각하고 예법(禮法)을 조용히 행하여, 천하의 부귀도 그의 뜻을 음탕케 못하고, 시중의 구차함도 그의 도를 즐기는 그의 즐거움을 고치게 못하며, 천자도 감히 신하로 삼지 못하고 제후도 감히 친구를 삼지 못하며, 출세해서 도를 행한다면 혜택이 사해에 펴지고, 벼슬하지 않고 숨는다면 도를 천재에 밝힐 수 있는 자라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선비인 것이니, 이런 자야말로 참된 선비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홍대용, 《담헌서(湛軒書)》 홍백능에게 주는 설[贈洪伯能說])

 

요즘의 선비

 

이렇게 진정한 선비는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다. 역사를 보면 젊을 때에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할 때에는 내가 정계에 나가서 세상을 개혁하고 모두를 잘 살게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일단 정계에 들어가서는 그가 지금껏 배운 재주를 오직 자신의 이익, 자기 집안의 돈과 관력을 잡는데 쓰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기에 역사 속에서 많은 지도자나 학자들이 이를 개탄하는 것이다.

 

그러한 문제는 오히려 우리는 요즈음에 더욱 강하게 느낀다. 높은 관직에 뽑히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명성이 있고 훌륭한 인품인 줄 알았더니 뒤로는 부정과 불의, 압력과 축재를 하고 있었더라는 것이다. 더구나 임명되는 고위공직자를 검증하는 청문회 자리에서 교묘한 화법이나 어법, 아니면 거짓말을 해서 당장을 모면하려고 하고, 청문회장에서는 반성을 하는 듯하면서도, 공직에 나가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갖가지 이유나 핑계로 약속을 모면하거나 합리화하는 사례가 보였다.

 

선비를 지향한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염치를 뭉개며 자기 사람이나 당파의 이익을 위해 법령을 교묘히 바꿈으로서 사회에 불만과 부정의를 조성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태로 우리 사회도 그만큼 바른 길을 떠나서 타락이 정당화되는, 곧 비정상이 정상으로 당연시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에 우리들은 여기서 다시 선비란 무엇이고 선비정신은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