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12 (화)

  • 구름조금동두천 3.8℃
  • 맑음강릉 9.8℃
  • 맑음서울 6.7℃
  • 박무대전 7.3℃
  • 맑음대구 8.5℃
  • 맑음울산 10.1℃
  • 맑음광주 10.0℃
  • 맑음부산 11.6℃
  • 흐림고창 7.7℃
  • 맑음제주 13.8℃
  • 맑음강화 4.4℃
  • 흐림보은 4.8℃
  • 구름많음금산 4.6℃
  • 맑음강진군 7.2℃
  • 맑음경주시 8.0℃
  • 맑음거제 9.3℃
기상청 제공
닫기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장승배기'가 '장승포시'가 된 까닭

영조 45년 장승거리가 1989년 장승포시가 되기까지
[일제가 왜곡한 ‘장승’과 ‘벅수’ 이야기 27]

[우리문화신문=황준구 민속문화지킴이] 

 

 

 

본디, 조선시대 때에는 '거제도(巨濟島)‘를 ‘거제현(巨濟縣)’이라 하였고, 1470년에는 ‘거제부(巨濟府)’로 승격되었다. 거제부의 '장승배기'로 알려진 ‘두모현(杜母峴, 두모고개)’에는 '큰길'만을 안내하는 기능의 장승(長承)이 예부터 세워져 있었다. '두모현'은 영조 45년(1769)에 행정구역을 방(坊)과 리(里)로 나누고 다듬는 작업의 영향으로 ‘장승이 세워져 있는 마을’이라 하여, ‘장승거리(長承巨里)’라고 불렀다. 그리고 고종 26년(1889)에는 ‘장승거리방(長承巨里坊)’으로 변화 되었고, 1895년에는 ‘바닷가의 포구(浦口)마을'을 뜻하는 ‘장승포리(長承浦里)’로 발전하였다. ​

 

거제부에 속하여 있는 본디의 ‘장승배기’들은 《여지도서(輿地圖書)》와 ‘지명총람’에 따르면, ‘큰장승’(大堠)이 세워진 곳은 거제부 사등면 득호리의 ‘견내량원(見乃梁院)’과 역(驛)이 있는 곳에 세웠고, ‘작은장승’(小堠)들은, 사동면 사곡리, 장목면 구영리, 읍내면 장승포리, 하청면 덕곡리 주변의 관로(官路, 國道)에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1700여년 무렵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기능의 벅수들은 거제부 읍내면 율포리 ’법석골’, 읍내면 학동리 ’벅석거리’, 외포면 율천리 ’벅숫거리’, 읍내면 옥포리 ’벅숫골’에 세워져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벅수’라고 새겨진 글씨에 관한 자료들은 남겨진 것이 없다. 아마도 ‘두창'(痘瘡, 天然痘)을 막아내기 위한 벅수들이었을 것으로 추측만 할뿐이다.​

 

1915년 일제강점기 때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법정동리령(法定洞里令)이 만들어 졌고, ‘장승포동(長承浦洞)’이 되었다. 1971년에는 통영시와 거제도를 잇는 거제대교의 개통으로 거제도는 육지가 되었다. 그리고 1989년에는 ‘법률, 제4050호’에 의하여 ‘장승포시’가 되었는데 역사 깊은 ‘장승배기’의 옛터가 도시로 변화되어 ‘장승시(長承巿)’가 된 것이다.​

 

‘장승’(長承,長栍)이란 것은 신라 21대 소지왕에 의하여 서기487년 도입된 ‘역참(驛站)제도’의 한 부분으로 나라의 땅과 큰길을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기 위하여 ‘장승’(길잡이)을 세웠고, ‘장승’의 가슴에는 현재의 위치와 이웃마을의 이름과 거리, 방향을 꼼꼼하게 적어서, 넓은 길(官道)의 5리 또는 10리마다 촘촘하게 세우고, 길을 가는 나그네와 벼슬아치들에게 빠르고 안전한 길을 안내하는 기능을 가진, 이정표(푯말)의 역할을 한 것이 '장승'이다. ​

 

1895년에 '장승'은 역참제도의 폐지로 임무를 마치고 소멸하여 영원히 사라졌다. 그리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어 조선총독부는 우리의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역할의 ‘천하(天下, 이승) 대장군(大將軍)’과 ’지하(地下, 저승) 대장군(大將軍)’을 미신으로 취급을 하여 업신여기며, 우리 땅에서 완벽하게 사라져 없어진 옛날 ‘장승’에 ‘벅수’(法首)를 포함시켜, ‘장승’으로 쓰고 부르도록 강제로 교육시켰다. ‘천하대장군’과 ‘지하대장군’을 ‘장승’이라 부르는 것은 일제강점기의 찌꺼기다. ​

 

그리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장승’이 아니라 ‘벅수’라고 불러야 옳은 표현이다. 지금도 우리 땅에는 옛날의 '장승'과 관련된 '장승배기'터가 1200여 곳이 기록되어 남겨져 있다. '장승포시'는 조선시대 때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장승배기'로 시작하여 ‘장승포시’(長承巿)로 까지 발전된 곳이다. ‘장승포시’의 상징은 ‘큰길’을 안내하던 기능의 ‘장승(長承, 栍)을 뜻하였다.​

 

1995년에는 느닷없이 거제군과 장승포시가 정부의 시책에 따라 서로 합쳐져 ‘거제시’로 개편이 되면서 ‘장승포시’는 거제시 ‘장승포동(長承浦洞)으로 바뀌고 과거로 되돌려 졌다. 100여 년 전의 일제강점기 때로 강등된 것이다. '장승포'의 뿌리는 '길잡이' 역할의 '장승(長承)’에서 시작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