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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앙금이 있는 자는 자서전을 써라

이수진 씨, 자서전 《머물고 싶은 간이역 1,2》 펴내
하남시 ‘나룰도서관’의 시니어 자서전 프로그램 통해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그 당시 석유 한 됫박에 29원이었다. 우리 집은 석유 한 됫박으로 한 달 넘게 등잔불을 밝혔다. 어머니는 석유 타는 게 아까워 일찍 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가난 때문에 한 달에 20원 하는 기성회비를 3년간 내지 못했다. 집안이 기울어 초등학교4,5,6학년의 3년간을 기성회비 한 푼도 못 내고 학교를 다녔다. 선생님이 돈을 가져오라고 집으로 돌려보내도 나는 집으로 가질 않았다. 집에 간들 돈이 있을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이수진(67) 씨가 쓴 자서전 《머물고 싶은 간이역 1,2》에 나오는 이야기다. 지난 7일(월) 아침 10시, 경기도 하남시(시장 김상호) ‘나룰도서관’에서는 아주 뜻깊은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이날 출판기념회는 ‘나룰도서관’에서 지난 4월부터 모두 20회에 걸쳐 진행한 시니어 자서전 문화프로그램의 결실을 맺는 시간이었다. 모두 20여명이 신청하여 의욕적인 자서전 쓰는 시간을 가졌지만 11명만이 끝까지 자서전 쓰기에 살아남아 이날 자서전 출판의 기쁨을 가졌다.

 

사실 자서전 쓰기가 말 같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룰도서관’의 시니어 자서전 프로그램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은 대개가 6~70대였다. 이 나이 되어 자신의 삶을 책 한권에 쓸 만한 소재는 충분히 가졌을 법하다. 하지만 말이 아닌 글로 풀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 이수진 씨 역시 도중에 그만 둬 버릴까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고 했다.

 

 

 

이수진 씨가 《머물고 싶은 간이역 1,2》 라고 책 제목을 정한 것은 바로 자신의 삶을 간이역에 견준 것이라고 했다. 2개의 간이역은 만학도로 어렵사리 대학을 나온 것과 손녀딸이 커가는 재미를 또 하나의 간이역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수진 씨는 초등학교 졸업한 뒤 지독한 가난 때문에 40대 말에 중학교 공부를 시작한 이래 만학도로 경기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그뿐만이 아니다. 늦게 불붙은 그의 학구열은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그것도 모자라 지금은 교육학과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 중, 자서전에 집중하기 위해 4학년 상태에서 잠시 휴학 중이다.

 

그동안 수필집으로 《그 중 편한 신발》), 《동류항 두 개로 이룬 꿈》을 냈고 동화집으로 《고향으로 돌아온 까치네》를 펴내는 등 문필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현재는 하남시 ‘나룰도서관’ 소속 은빛독서도우미에서 이야기 할머니로 9년째 아이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운곡 이수진 씨의 본명은 이수옥이다.

 

이수진 지음 《머물고 싶은 간이역 1,2》, 2019.10. 하남시나룰도서관 출간, 비매품

 

 

 

   가난 속에서도 버텨온 내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대담] 《머물고 싶은 간이역 1,2》 지은이 이수진

 

 

- 자서전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언젠가는 꼭 한번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다. 그것은 내 삶의 이력이 남다르게 특출 나서가 아니라 가난 속에서도 버텨온 내 삶을 어떤 식으로든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니는 언제나 버릇처럼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셨지만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자라고 보니 늘 동생들 뒤치다꺼리에 힘들었다.

 

이제 와서 노모(86)에게 나를 보듬어 달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먼 훗날 동생들 가운데 누구라도 내 유년의 아픈 시절을 한 번쯤 기억해 주었으면 하는 미련으로 자서전을 썼다. 그러던 차에 하남시 시승격 30주년 기념사업으로 시니어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6달 코스로 진행한다는 정보를 얻어 도전했다.“

 

- 자서전 기간과 참여한 사람들을 간략히 소개하면?

 

  “시니어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하남시에 사는 어르신들과 일부는 하남시 ‘나를도서관’ 소속 <경기 은빛 독서도우미> 로 활동하는 이야기 할머니들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돌봄교실, 지역 아동센터 관내 작은 도서관으로 두 사람씩 조를 이루어서 4살부터 초등 2학년까지 아동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며 3세대 정서교감을 하는 이들이다. 은빛 독서도우미로 활동하는 선생님들은 자서전 쓰기 교육을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 줄 알고 수업에 참석한 분들이 대다수다.

 

살아온 내력을 더듬어 보면 왜 할 말이 없겠는가마는 글쓰기를 해 본 경험이 없는 분들이라서 어렵다고 하면서 처음 수업에 참여했던 인원의 절반인 11명이 결승전까지 가서 이번에 결실을 맺었다.“

 

- 자신의 삶에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유년 시절은 물론 청ㆍ장년기를 거쳐 오면서 세상에 대한 원망을 품고 살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내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엄마가 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그러던 중에 손녀가 태어나 내 자식들에게 베풀지 못한 사랑과 정성을 손녀에게 쏟아 부었다. 자서전을 쓰게 된 동기는 내 자식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덜어내고자 했던 점과, 다른 하나는 내 자신이 7남매의 맏이로 태어나 동생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고통스럽던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먼 훗날 내가 죽고 난 뒤라도 한번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도전했다.“

 

- 자서전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굽이굽이 아픈 세월을 살아내어 가슴 한편에 앙금으로 가라앉은 응어리가 있다. 이 아픈 앙금들은 힘들 때 마다 수면 위로 떠올라 한번쯤 털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이런 앙금이 아니라면, 흔히 말하는 세상 속 출세가도를 달려서 누군가에게 교훈서가 될 만한 이력이 아니라면 굳이 자서전을 쓰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