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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바람처럼 이슬처럼

문득 시가 쓰고 싶어지는 계절에
[솔바람과 송순주 21]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조름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 리야​

 

가수 이동원과 박인수가 노래를 불러 더욱 유명해진 정지용의 시 '향수' 제2연에서 시인은 이렇게 차가운 겨울, 수확이 끝나 텅 빈 밭을 달리는 거센 밤 바람소리를 타고 고향의 겨울로 날아 들어간다.

 

 

확실히 차가운 공기, 센 바람, 길에 쌓인 눈,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시심을 자극한다. 시심은 시상(詩思), 또는 시상(詩想)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인데 요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리라. 이 시대의 시인으로 성가가 높아가고 있는 유자효는 이러한 시를 쓰고 싶은 생각, 문득 다가오는 순간적인 시의 방아쇠를 시마(詩魔)라고 부른다고 시를 모르는 우리 일반인들에게 알려준다. 시를 지을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이라는 뜻일 터이다. ​

 

중국 당(唐) 나라 때 재상 정계(鄭綮)는 시를 잘하였는데, 누가 묻기를 “상국께서 근래에 새로운 시를 지었습니까?” 하자, 그가 대답하기를 “시사(詩思)가 파교(灞橋)의 풍설(風雪) 속 나귀의 등 위에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얻으리오.”라고 했단다. ​

 

파교(灞橋)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의 동쪽 파수에 있는 다리로 옛날 사람들이 이별할 때에 이 다리에 이르러 버들가지를 꺾어 송별의 뜻을 표했다고 하며 그 이별의 감정이 격해지니 수많은 시가 솟아났을 것이다. 이런 이별이 눈보라가 치고 바람이 강하게 불 때에는 얼마나 더 쓰라릴 것이며 그런 상황은 얼마나 더 시심을 자극할 것인가? 여기에서 시를 쓰는 마음은 바람 불고 눈이 오는 날 나귀를 타고 어느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생긴다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

 

이런 고사가 얼마나 유명했으면 우리 인생의 지침을 적은 좋은 말들을 모아 전해주는 《채근담(菜根譚)》에서도

 

“시상은 파릉교 위에 있으니 나직하게 읊조리면 숲과 골짜기가 문득 호연해지고 맑은 흥취는 경호(鏡湖) 호숫가에 떠다니니, 홀로 그곳을 거닐면 산과 물이 스스로를 비춘다.” 라는 구절이 있다. ​

 

당의 재상 정계의 말처럼 시를 쓰는 마음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도시의 번쩍이는 문명, 높은 집, 위세 있는 생활과 환락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 속을 나귀 등에 앉아 조용히 지나다 보면 문득 시흥이 떠오르고, 거기에 나직이 읊조리는 시의 가락에 숲과 골짜기가 화답을 해올 것이다. 거기에 날씨마저 혹독하게 몰아치면 사람들은 절로 시로 뭔가를 표현하고 싶어진다. ​

 

확실히 계절이 늦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찬 바람이 얼굴을 때리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시인이 된다. 찬 바람에 손이 달린 것 같고 그 손으로 우리 얼굴을 철썩 때리고 가는 것 같고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보듬어주고 싶게 만든다. “야, 이 멋진 계절, 이런 풍경을 나도 멋있게 시로 표현하고 싶구나.” 우리들의 이뤄지지 않을 염원이 문득문득 솟아나는 계절이다. ​

 

낫처럼 꺾인 쓸쓸함이 하늘에 걸려있다

황량한 바람이 그어 가는 회색빛 선들

그러나 이 모든 우울한 표지로도 아직 그만 갈 수는 없으리라

촉수 낮은 백열등 아래 웅크린 밤들이 수없이 스쳐갔다

정한 곳이 없는 바람이란 얼마나 편리하냐

 

                                                      .... 김성수, 혼자 가는 길

 

 

계절이 겨울로 치닫는가? 이른 아침공기가 차다. 얼마 전까지 풀잎과 꽃잎 위에 맺히던 이슬들이 어느덧 차가운 서리로 변하는구나. 우리네 몸이 움츠러드는 만큼 마음도 움츠러든다. 아침 일찍 산책이라도 할 냥이면 바로 조선 중기의 시인 장유(張維. 1587∼1638)의 이런 시가 생각날 것이다. ​

 

흰 이슬이 찬 서리로 변하는 계절 白露變淸霜

강 언덕 뭇 방초(芳草)들 꺾여 쓰러지네 江潭摧衆芳

풍진 세상 천리마들 하릴없이 늙어가고 風塵老騏驥

화살맞아 떨어지는 난조(鸞鳥)와 봉황(鳳凰) 矰弋到鸞凰

 

이런 참혹한 풍경을 보면서 시인은 엄숙한 자연의 힘 앞에 나약한 인간의 존재를 떠올리며 비감해진다.​

 

아득한 하늘에 어떻게 따져 물어보리 天遠眞難問

미천한 인간 혼자서 가슴 아파할 따름 人微謾自傷

예로부터 흘린 눈물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만 古今無限淚

내 다시 홀로 서서 옷깃을 적시누나 獨立更沾裳

 

.                                             ... 감회에 젖어[有感], 장유 ​

 

이슬이 찬 서리로 변하기 전, 아침 햇살을 받으면 이슬이 금방 없어지는 것을 보면 그 이슬이 사라지는 것이 마치 우리들 인생 같다고 해서 부추 위에 생긴 이슬이라는 뜻의 '해로가(薤露歌)'라는 노래가 있다. ​

 

부추 위에 맺힌 이슬 어이 쉽게 마르나. 薤上朝露何易晞

이슬은 말라도 내일이면 다시 내리지만, 露晞明朝更復落

사람은 죽어 한번 가면 언제나 돌아오나. 人死一去何時歸.

 

                      ... 진(晉) 최표(崔豹) 지음 《고금주(古今註)》

 

부추 위에 맺힌 이슬처럼 덧없이 지는 인생을 슬퍼하는 이 노래가 우리 조상들이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면서 부르는 만가(輓歌)의 유래란다. 썰렁한 가을이나 추운 겨울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면서 들판을 지날 때 만장이 앞을 서고 많은 조객들이 뒤를 따르는 가운데 요령을 흔드는 선소리꾼이 선창을 하면 후렴으로 따라 부르는데, 언젠가 조부가 돌아가셨을 때 장지로 따라가면서 듣는 만가는 왜 그리 슬프던가? 마지막 가는 길이기에 빨라 가지 않고 한없이 뜸을 들인다. 하관을 하고 마지막에 성토를 하면서 부르는 덜구소리는 또 왜 그리 애절한가? ​

 

날이 추워지고 겨울이 오면 사람들은 생명이 시드는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나 삶은 즐겁지만 죽음은 괴롭다고만 한다면 누가 죽으려 할 것이며, 죽기 싫어서 얼마나 나쁜 짓을 하려고 할까? 그러기에 삶과 죽음은 별개가 아니고 단지 끝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선현들이 가르쳐준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지 않는가? 그때 사람들이 생명의 탄생을 생각하고 얼마나 즐거워하는가? 이런 순환의 법칙을 알고 그것을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요즈음 서리로 변하는 조금 전의 이슬처럼 삶의 길이도 짧은 것이지만. 다른 생물에 비하면 엄청나게 길게 부여받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짧고 험하다고만 생각할 일이 아니다. ​

 

어제오늘 아침에 보이는 이슬, 조금 있어 해가 뜨면 또 없어질 이슬을 보며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 이런저런 우리네 삶의 길이의 문제를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