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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내겐 ‘천석고황이’란 고질병이 있다네

구름 따라 나갔다가 새들을 따라 돌아오는 한가함
[솔바람과 송순주 2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복잡한 도심을 떠나서 북한산자락으로 이사 온 지도 7년이 지나 벌써 8년째다. 우리집에서 언덕을 넘어서면 한옥마을이다. 이사 올 때에 허허벌판이었는데 2015년부터 한두 채 한옥이 시범적으로 들어서더니 지금은 한옥마을이 한옥 양옥으로 꽉 찼다. 사진을 비교해보면 그 변화에 눈을 의심할 정도다.

 

 

 

이 근처로 이사 온 것은 옛사람들이 즐기던 풍류, 곧 어지러운 속세의 소란스러움을 벗어나 산 가까이에서 맑은 공기를 숨 쉬며 자연 속에 평온하고 건강한 삶을 선호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일대는 북한산이 바로 눈앞에 있고 크고 작은 계곡을 마음만 먹으면 금방 찾아갈 수 있는 곳이어서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묘사한 대로 “깊숙한 골짜기를 찾아가고 높다란 언덕을 거닐어 볼만한[尋壑經丘] 운치와 구름 따라 나갔다가 새들을 따라 돌아오는[雲出鳥還] 한가함을 즐길 수 있다.” ​​

 

집 거실에서 가까이로는 작은 산등성이나 가파른 언덕, 조금 멀리로는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이어지는 가운데 푸른 소나무로 덮이고 군데군데 바위가 불끈불끈 솟아오르는 산의 힘찬 모습이 바로 보인다. 공자가 말했듯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仁者樂山 智者樂水]”라는 말이 있지만 산 옆에 사는 사람이 그 말을 인용하면 마치 자기자신은 어진 사람이라고 남들에게나 내세운다는 오해를 받기 십상이지만, 그런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아침저녁 산을 보고 살 수 있는 것은 일상의 큰 기쁨이요, 남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복이다.

 

새삼스러운 설명이지만 서울 광화문에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으로 3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이곳 은평 한옥마을 일대는 설악산의 외설악에 온 듯한 착각이 가능하다고 나는 감히 주장하거니와, 말하자면 서울 한복판에서 반 시간이면 설악산인데, 이런 좋은 곳을 놔두고 사람들은 교통이니 학군이니 하면서 보다 좋은 곳을 찾아가야 한다며 돈과 시간과 욕심을 쏟아 내고, 그것을 거두어들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을 쉬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에게도 갑자기 이사를 가야하는 사정이 닥쳐왔다. 이렇게 되자, 내가 그동안 혹시나 자신만의 즐거움에 빠져 세상의 흐름에 너무 담을 쌓고 산 것이 아닌가? 10년 가까이 이 동네 집 값은 그리 올라가지 않았는데 아니 서울 남쪽, 동쪽의 아파트들이 작은 평수라도 이 동네에 견주어 네 배, 다섯 배로 올랐으니 우리가 미래를 위한 재테크에 너무 눈을 닫고 산 것이 아닌가? 그래 이제라도 제대로 값이 오르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그곳에 살면서 미래의 재산 가치를 축적함으로써 언젠가 우리가 쓸 일이 없으면 자식이나 손자들에게라도 경제적으로 나눠져 도움을 주어야 하지 않느냐...

 

뭐 이런 일종의 후회와 고민 비슷한 것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내어 요즘 한창 뜬다는 쪽으로 나가 보게 된다. 그런데 막상 집을 구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보니 그전에 그냥 다니던 때와는 달리 우선은 사람과 차들이 다니는 소리에 질리고 다음엔 땅은 평평하고 길은 쉽지만, 주위에 있어야 할 나무 대신에 고층 아파트들이 나무를 대신하는 데에 질리고, 길을 건너려면 버스나 차량의 소음과 배기가스에 몸서리를 치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풍경들이 나의 마음으로 영 들어오지를 않는 것이다. ​

 

그것은 이미 내 마음속에 병이 생긴 때문이 아닐까?

 

수 천 년 전에 이미 세상의 명예와 출세를 버리고 자연 속에 들어가 살던, 요즈음 우리 사회로 비유한다면 ‘자연인’의 삶을 선택한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에 허유(許有)와 소부(蘇夫)가 있었음을 우리도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중국 당나라 고종(高宗) 때 출세를 하였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전유암(田游巖)이란 사람이 기산(箕山)으로 들어가서 허유(許由)의 무덤 옆에 자리를 잡고 스스로 호(號)를 허유동린(許由東隣), 곧 허유의 동쪽 이웃이라고 붙이고 거기서 살았다고 한다.

 

나라에서 그를 여러 번 불러도 나가지 않자 당 고종황제가 친히 그를 찾았을 때 그는 농사꾼 차림으로 황제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황제가 그를 보고 “선생은 근래 편안합니까?”라고 묻자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저는 샘물과 바위에 대한 병이 이미 고황에 들고 연무(煙霧)와 노을에 고질병이 들었습니다” 이 말의 원문은 “천석고황(泉石膏肓) 연하고질(煙霞痼疾)”이다. 여기에서 천석고황은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것이 고질병이 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 되었는데 내가 바로 그 신세인 것이다. ​

 

막상 나가서 살려고 해도 집에 있는 책들을 다 갖고 갈 수 없으니 버려야 하는데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자연적인 조건이 그런 데다 그동안 쌓아놓은 삶의 껍데기들을 한꺼번에 다 버리고 가기 어렵다는 문제로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이 근처에서 다시 집을 구해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바로 이런 자신의 고질병에 대한 확인에 다름 아니라 하겠다.

 

 

퇴계 이황은 토계(兎溪) 근처에 터를 잡고 살면서 물의 이름도 퇴계(退溪)로 바꾸어 자신의 호(號)로 삼았다는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그렇게 가서 머물 공간을 만나거나 찾을 수 있던 그런 때는 아니다. 퇴계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서 3칸 자리 집을 하나 짓고는 각 칸마다 이름을 하나씩 붙였는데, 중간 한 칸은 완락재(玩樂齋)라 하였으니, 이는 주자(朱子)의 〈명당실기(名堂室記)〉에, “완상하여 즐기니, 족히 여기서 평생토록 지내도 싫지 않겠다.”라고 하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

 

또 동쪽 한 칸은 암서헌(岩棲軒)이라 하였으니 그것은 주자 운곡(雲谷)의, “학문에 대한 자신을 오래도록 가지지 못했더니 바위에 깃들여[巖棲] 조그만 효험이라도 바란다.”는 시의 내용을 따온 것이었다고 <도산기(陶山記)>에서 밝힌 바가 있는데 지금의 우리는 조그만 바위 위에 집을 지을 수도 없거니와 아무리 산수풍경이 좋아도 우리가 직접 터를 잡고 살기에는 보통 힘든 것이 아니기에 결국엔 지어놓은 집을 잘 골라 거기에 있는 방마다 멋진 이름을 붙이고 그것으로서 부족한 경치를 대신하는 지혜도 있다. ​

 

한자에서 한가롭다는 뜻의 ‘한(閒)’ 이란 글자에 대해 어떤 이는 달[月]이 대문(大門) 안에 들이비치는 것이라고 풀이한다는데 우리는 이제 아파트라도 조금 높은 층의 집을 얻어 거기에 동산에 떠오르는 달을 보게 되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얻고자 하는 한가로움에 의한 마음의 평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당나라의 시인 두목지(杜牧之)는 ​

 

“한가로운 사람이 아니고서야 한가로움을 얻을 수 없으니 / 不是閒人閒不得

이 몸이 한가로운 사람이 되어 이 속에 놀고파라 / 願爲閒客此間行”

 

라고 했다는데, 나도 그 사람처럼 스스로 한가로운 사람이 되어 이 자연 속에서 그냥 고질병을 지니고 사는 것이다. 강남 강동에 가서 돈을 몇 억 몇 십억을 더 번들, 그 돈을 남을 위해 쓰지 않으면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포로가 되는 법. 이곳에서 스스로 한가로운 사람이 되어 한가로움이라는 복을 다시 받기로 했다. 그 복을 받아야 내가 몸과 마음의 병을 얻지 않고 남은 삶을 바른 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

 

퇴계는 앞에서 말한 세 칸 집을 짓고 이를 도산서당(陶山書堂)이라는 편액을 붙이면서 시를 지었다. ​

 

순임금은 질그릇을 구워도 즐거움이 있었고 / 大舜親陶樂且安

도연명은 밭을 갈아도 즐거운 얼굴 / 淵明躬稼亦歡顔

성현의 심사를 내 어찌 체득하리오만은 / 聖賢心事吾何得

늘그막에 돌아와 은거하리 / 白首歸來試考槃

 

나 역시 감히 어찌 성현의 심사를 체득하리오만은 욕심을 버리고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방법이야 따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우리가 세속에서 살려 하거나 세속을 떠나려 하거나 간에 모름지기 조화(造化)의 기미[機]를 알고 멈추어, 조화와 맞서 권한을 다투려 하지 말고, 조화의 권한은 조화에게 돌려주고, 아들손자(兒孫)를 위해서는 복(福)을 심어 아들 손자의 복을 그들에게 물려준 뒤에 세상 밖(物外)의 한가로움에 몸을 맡기고 눈 앞의 맑고 깨끗함(淸淨)에만 유의할 일이다.

 

꽃을 찾고 달을 묻는 데 두셋이 함께 하면 되니, 단아(端雅)한 거동으로 차(茶) 달이고 향 피우며, 모임에는 약속이 필요 없고, 의식에는 겉치레가 필요 없고, 시(詩)에는 기교가 필요 없고, 바둑에는 승부가 필요 없으니 모든 일이 날로 감소되기를 구하고, 이 마음이 하늘과 함께 노닐도록 하여 경신(庚申)이니 갑자(甲子)니 하는 것을 분간하는 것도 망각해 버린다면 이 또한 진세(塵世)의 선경(仙境)이요 진단(震旦)의 정토(淨土)이다.”​​

 

라고 축석림(祝石林)이 말하였다는데. 이제 정말로 속세의 금전이나 물질적인 유혹에 욕심을 내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그동안 있던 이 일대에서 다시 집을 구해서 여기서 살아가는 것으로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없이 편하고 자유로워진다. 이것이 곧 천석고황의 고질병이 갖다주는 작은, 그러나 긴 기쁨일 것이다.